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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 사회 관련] 숨겨진 미래 - 장세진

Bawoo 2019. 3. 12. 20:08

숨겨진 미래

숨겨진 미래 탈냉전 상상의 계보 1945~1972

[간독. 노작이긴한데 관심이 안 가는 내용이 많았다.]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글로벌한 대세였던 냉전의 흐름을 거스르고자 했던 일군의 사람들, 특히나 그들이 가졌던 크고 작은 생각의 차이들이 만들어낸 반전의 모멘텀을 한데 모은 책이다. 냉전과 그로 인해 한반도에 부설된 분단이라는 뒤틀린 질서에 어떻게든 출구를 내보려 했던 사람들, 혹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 질서의 괴물 같은 폭력성을 증명했던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저자 : 장세진
연세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상상된 아메리카와 1950년대 한국문학의 자기표상〉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인하대학교 한국학 연구소를 거쳐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45년 이후 미국이 개입해서 형성된 동아시아의 냉전 문화를 살펴보는 데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상상된 아메리카》, 《슬픈 아시아》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냉전문화론》 등이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는 《냉전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사상계〉》,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1부 개념의 분단, 적대의 기원

01_사라진 중도 자유주의의 상상력: 염상섭의 《효풍》을 통해 본 ‘중간파(남북협상파)’의 행방
해방 직후의 정치 지형도|‘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중간파’의 목소리들|바람이 멈춘 곳, 그리고 ‘중간파’의 행방
02_‘해방’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 빈곤 대중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해방’, 몫 없는 자들의 귀환|농민은 어떻게 정치화되는가|《농민주보》 혹은 치안으로서의 미디어|빈곤 대중의 존재론과 정치의 행방
03_한국식 냉전 주체의 기원: 포로수용소의 생명정치: UN군 관리 포로수용소 서사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포로라는 존재|UN포로수용소의 특이성singularities|포로란 누구인가: 남한 냉전 주체의 원형과 ‘증언’의 영역|자유로운 개인과 인권의 아이러니, 그리고 포로들의 글쓰기

2부 냉전이 만든 지식, 냉전을 넘어서는 지식

04_미국도 소련도 아닌 다른 길은 없는가: 반둥회의와 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상상(1955~1965)
반둥회의와 ‘제3세계The Third World’|1차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의(1955)와 아시아 상상|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1965)의 좌절과 아시아 상상의 행방|인터내셔널리즘으로서의 아시아는 불가능한가
05_원한, 노스탤지어, 과학: 월남 지식인들과 1960년대 북한 학지學知의 성립 사정
월남 지식인들의 북한 재현이라는 문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터부에서 실재로|노스탤지어의 종언과 지역연구area study와의 접속|“생은 다른 곳에”: 경계인의 운명과 내부 비판의 상상력
06_라이샤워와 전후 미국의 지역연구: 한국학의 위치는 어디인가
지역연구와 싱크탱크think tank|부활하는 전전戰前의 권력-지식: 트랜스퍼시픽의 미?일 네트워크|《동양문화사》의 표층 서사와 심층 서사|위계화된 내러티브와 한국학의 장소location|타자의 목소리, 비판의 새로운 전통을 위하여

3부 혁명의 정념과 데탕트d?tente의 힘

07_“우리는 시민이다”, 한일협정 반대운동과 《사상계》의 마니페스토
《사상계》의 변전, 그리고 운동으로서의 6?3|6?3세대와의 연대와 시민불복종|군사정권과 《사상계》의 민족주의 경쟁|‘실재’하는 미국과의 조우|시민과 ‘국민’ 사이에서
08_“식민지는 과연 사라졌는가”: 최인훈의 질문과 제3세계적 상상력
1960년대 일본 상상과 최인훈 텍스트|회귀하는 식민지: “일본이 다시 온다”|‘신식민주의’란 무엇인가: 제국 일본을 통해 바라본 서양|제3세계 내셔널리즘의 당대적 가능성
09_7ㆍ4 남북공동성명과 함석헌의 반反국가주의적 평화 개념
‘냉전-평화’와 데탕트detente의 도래|‘평화’와 ‘통일’의 결합은 가능한가|‘평화’의 상이한 기대지평들|함석헌을 넘어서-민중의 확장 혹은 ‘제3세계’의 ...발견

에필로그

글의 출전
주석
찾아보기



책 속으로


해방기에 실재했던 정치 세력으로서의 ‘중간파’는 기회주의적 노선과는 그 성격을 상당히 달리했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오히려 한국의 ‘중간파’ 세력은 정치적 신념에 입각한 일관된 특징을 견지했는데, 특히 그들이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남북의 통일 국가 건설이라는 아젠다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러했다. 여운형의 통찰을 참조해보면, “분열해 있는 것은 소위 지도자뿐”이고 민중의 의견은 오히려 공고히 “통일되어 있는” 편이었다(21쪽).

‘중간파’가 과소 재현된 문제는 실재했던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구조적 ‘착시’ 현상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착시 현상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해방기의 ‘중간파’가 대한민국 수립 이후 독자적 조직을 가진 현실 정치 세력으로 계속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거기에 보태어, ‘중간파’라는 명칭이 은연중 풍기곤 하는 불가피한 뉘앙스, 즉 좌와 우의 대결 사이에 끼어 부유浮游하는 소수파라는 이미지 역시 적지 않은 요인으로 보인다(24쪽).

김규식과 김구가 중심이 된 1948년 4월의 남북협상 당시 이 협상을 지지하는 문화인 108명이 모여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전?현직 언론인들이 참여했다. 성명서에는 염상섭 외에도 설의식(《동아일보》 주간 겸 편집인), 배성룡(《세계일보》 이사 겸 주필), 오기영(언론비평가), 이갑섭(《조선일보》 조사부장 및 주필), 김기림(《현대일보》 편집국장), 정지용(《경향신문》 주필), 신영철(《신민일보》 발행인) 등의 이름이 보인다(27쪽).

‘해방’이란 어떤 면에서는 사실상 이 ‘노동자적-농민’이라는 방대한 빈곤 실업인구,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몫 없이 배제된 자”들의 동시다발적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64쪽).

미군정은 200만 명이 훨씬 넘는 다수의 귀환-빈곤 대중이 조선공산당과 연계해서 조직화되거나 독자적으로 정치 세력화되는 사태를 몹시 우려했다. 미군정은 귀환자들을 지원하는 남한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원호 루트들을 통제하고 여타 단체들을 불법화하는 가운데 지원 창구를 미군정 산하의 공식 단체로 단일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91쪽).

한국전쟁은 포로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이들이 자신의 국적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한 이른바 ‘자원 송환Voluntary Repatriation 원칙’이 국제적 논쟁 끝에 도입된 최초의 전쟁이었다(101쪽). 

내전으로 한국전쟁을 파악할 경우 전투를 담당하다 포획된 이들은 합법적인 전쟁 수행자로 승인되지 않으며, 이들은 ‘정통성’을 가진 자국 정부에 반하는 ‘반도叛徒’ 내지 ‘폭도’로 규정될 터였다(106쪽).

“우리를 석방하라! 우리를 반공전선으로 보내라!”라는 반공포로들의 일치된 구호에는 실상 생존을 위한 ‘자기 증명’을 초과하는 차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전장의 위험 속으로까지 스스로를 절박하게 내...모는 ‘과잉’이나 ‘잉여’의 주체 구성 영역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다(124쪽).

한국은 아시아?아프리카의 29개국이 대거 회동하는 이 자리에 아예 초대를 받지 못한 몇몇 예외적인 나라들(북한, 타이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스라엘) 중 하나였다.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과 인종차별주의, 호전성 등이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환대를 받을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이었다. …… 일본 역시 반둥회의에 초대되었다는 점을 환기한다면, 한국인들에게 이 회의는 굳이 언급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던 것으로 보인다(152쪽).

1960년대 《사상계》에 실린 북한 관련 담론을 주도했던 것은 기존 일 세대 월남 지식인 그룹에 더해 소위 새로운 유형의 ‘월남 귀순자’들이 합세한 형태였다. …… 전자의 경우는 《사상계》의 핵심 편집위원 그룹에 속해 있었던 이들로, 특히 김준엽이나 양호민 등이 대표적이다(190쪽).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었던 이 ‘월남 귀순자’ 집단은 일 세대 월남 지식인 그룹과 긴밀한 협업 관계 속에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북한통의 자격으로 1960년대 공론장에서 북한의 정치, 경제, 외교, 문화, 교육 그리고 연애와 가정생활 같은 일상 영역에 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다(191쪽).

내외문제연구소는 독립된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대외적으로는 민간연구소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공보부 조사국의 산하 단체에 가까운 기관이었다. 이 연구소의 주된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조사국에서 제공하는 북한 관련 최신 자료들을 객관적 ‘지식’의 이름으로 언론에 주기적으로 유포하는 일종의 미디어 창구 역할이었다(198쪽).

북한이 제도적 지식 생산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과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김준엽이었다. 그는 평북 강계 태생의 서북 출신으로, 1960년을 전후하여 《사상계》 주간을 맡고 있었다. 더욱이 그가 소장으로 재직하던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가 …… 포드재단으로부터 28만 5천 달러라는, 1962년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거액의 원조자금을 받아 도약할 수 있었던 데도 그의 공헌이 역시 지대했다. …… 하버드대학 체류 시절을 통해 미국 내 동아시아학의 거물급 창설자들, 예컨대 중국학의 존 페어뱅크나 일본학의 에드윈 라이샤워 등과 두터운 인연을 쌓은 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까닭이다(206쪽).

1963년 말 무렵부터 시작된 6?3 한일협정 반대 국면을 통과하는 가운데 《사상계》가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방식, 나아가 민족주의의 내용 역시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변모했고, 그 결과 《사상계》가 매체로서 지향하는 방향성 자체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변모는 군사정권이 표방하는 민족주의와의 경쟁과 분화 속에서 이루어졌다(275쪽).

민정 이양 선거 직후 《경향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에 참석한 10여 명의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장들 역시 제3공화국의 ‘민족적 민주주의’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289쪽).

이제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 문제로 논점이 뒤바뀔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령, 협정 체결 이후 “공무원은 일본어에 대하여 주체 의식을 갖고 의연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든지 “간부급 공무원들이 일본인을 접할 때는 일본어가 아닌, 반드시 국제어나 통역을 통하라”는 요지의 공식 담화들이 쏟아졌던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324쪽).

《회색인》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일본에 의한 재식민화를 우려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식민화가 당연히 전제하는 식민의 종식 상태 자체를 의심하는 텍스트였다. 달리 말해, 우리가 언제 식민지인이 아닌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가 아닌가라는 급진적인 회의로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경우이기 때문이다(326쪽).

북한과 비교해 경제적 열세가 아직 분명한 상황에서, ‘평화’-‘통일’의 개념적 결합은 통치 권력에게는 여전히 위태로운 것이었다. 실제로, 4?19의 혁명 공간에서 집권한 민주당은 ‘선건설 후통일’론을 고수했다(365쪽).

함석헌에 따르면, 7?4 공동성명은 통일 문제를 현실 정치, 직업 정치의 영역으로 전적으로 환원시키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적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국가주의’란 “국가지상주의 혹은 정부지상주의”와 동일한 것이었는데, 함석헌 식 평화 이해에 의하면, 이 국가지상주의야말로 “평화의 진정한 방해 주범”이었다(376쪽).

인식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책 차원에서도 함석헌은 평화통일을 위한 점진적 단계들을 제안한 바 있어 주목할 만하다. 1) 남북한 불가침조약을 맺고, 2) 군비 축소를 시행하며, 3) 평화를 국시로 삼자는 그의 이른바 3단계론은 미?소의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비켜난 ‘중립노선’을 선택한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379쪽).



출판사서평


냉전의 흐름을 거슬러 그 너머를 상상한
대한민국 현대 지성사의 계보

이 땅에 남은 ‘일본 총독’이 본 통일 해법

지난 7월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최인훈 선생이 살아 있다면, 과연 요즘 무슨 말을 했을까.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데도, 여전히 북한을 조금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미국의 정보기관과 언론을 두고 말이다.
1970년대 그가 쓴 소설 《총독의 소리》에는 해방 이후 한반도에 몰래 남아 제국 일본의 부활을 꿈꾸며 행여 한반도가 통일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일본 총독이 등장한다. 그는 밤마다 지하방송을 내보내는데, 여기엔 현재 우리가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남북 양 체제를 각각 극도로 합리화시키는 경지로 통일을 표현한 대목이 바로 그렇다.
“통일의 가장 쉬운 길은 남북이 군비 경쟁을 버리고 각기 체제의 합리성을 높여가는 길입니다. …… 통일은 민족의 힘의 합리화에 비례하고 전쟁에 반비례한다. …… 총독부는 반도인들이 이 같은 해답에 다가서는 길을 막아야 합니다.”
42년 전에 쓰인 이 소설에는 그로부터 24년 후 공식화된 6?15 남북공동선언을 연상시키는 데가 분명 있다. 도통 멀게만 느껴지는 통일문제를 이런 식으로 일찌감치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38선 이북 태생인 소설가의 직관에 가까운 통찰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한반도 전환기를 맞아 냉전과 분단이 빚어낸 뒤틀린 질서와 씨름했던 한국 현대 지성들의 발자취를 지금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와 의의는 분명하다.

해방기의 ‘중간파’에서 제3공화국 시절 함석헌까지 이 책은 한국의 지성사에서 최인훈과 같이 일찌감치 냉전의 본질을 꿰뚫어 본 인물들, ‘글로벌한 대세’였던 냉전의 흐름을 거스르며 길 없는 곳에 감히 길을 내고자 분투했던 시도들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 모은, 일종의 ‘계보 만들기’ 작업이다.
해방기에 ‘중간파’ 혹은 ‘남북협상파’라 불렸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설가 염상섭이 이 계보의 첫 번째 순서에 놓였다. 서울 중산층들의 삶을 그린 소설가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염상섭이지만, 해방기의 그는 ‘남북협상파’를 적극 지지했던 명민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을 적敵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현실 판단이 무모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역시 거부했던 중도변혁적 세력의 편에 서 있었다. 무엇보다, 당국의 가혹한 검열 환경 속에서도 그는 그런 자신을 닮은 인물들을 이 시기 소설 속에서 자주 그려 내었다.
이 책은 해방기의 염상섭으로부터 시작해 정치인 여운형과 조봉암을, 1960년대의 최인훈과 이호철, 동양사학자 김준엽, 민두기를 그리고 1970년대의 장준하, 함석헌, 리영희와 같은 인물들을 지금?여기로 다시금 불러내었다. ‘인물’뿐만이 아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64년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운동, 1955년의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와 같은 ‘사건’도 이 책이 특별히 주목하는 포인트다. 미국과 소련 양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모임이었던 반둥회의는 이후 ‘제3세계’라는 새로운 정치 개념과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각자의 한계를 안은 채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되는 과정도 이 책에서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어느 지점에서 현저하게 빛났고, 또 어느 지점에서 허망하게 삐끗하며 결국 무너져 버렸는지,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하고 복기한다는 것.
결국 계보를 만드는 일이란, 그것이 사건이든 사람이든 앞선 시간과의 영향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냉전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을까. 채 싹을 틔우지 못해 과거에는 비록 명백한 실패의 형상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들은 우리 안에 문화적?상징적 유전자로 각인되어 단절적으로든 격세유전隔世遺傳의 형태로든 이미 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일 역사학자 코젤렉의 ‘개념사’ 틀에 빚진 구성

냉전과 냉전의 ‘결을 거스르는 움직임’이란 주제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이 책은 개념사의 틀을 빌려왔다. 냉전을 거스르는 힘이란, 바로 동일한 개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의지, 당대와는 다른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코젤렉의 개념사가 이미 주류가 된 정치, 사회 개념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던 개념들에 주로 주목했다. 원래 마이너한 개념들이었다기보다는 냉전을 둘러싼 국제, 국내 정세에 따라 급격히 주변화되거나 심지어 금기taboo시 되었던 개념들인 셈이다. 해방기의 ‘중간파’(1장), ‘농민’(2장), 한국전쟁기의 ‘포로’(3장), 1960년대의 ‘동양/아시아’(4장, 6장) 및 ‘북한’(5장), ‘식민(지)’(8장) 그리고 1970년대 초반 ‘평화’(9장)와 같은 개념들이 그것이다.

이 책이 갖는 현재적 의의

남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域內 그리고 북미 관계의 대전환을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평화를 이야기하는 즈음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평화를 ‘위장’ 내지 ‘기만’, ‘거짓’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대등한 핵 보유를 통한 공포의 균형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서만 평화를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상당수 존재한다. 결국, ‘진영논리’로 뭉뚱그려 부를 수 있는 이 현상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개념이 단지 사유의 영역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불러 모은 탈냉전적 상상의 계보들은 그저 먼지 묻은 아카이브 속에서 잠자는, 아무래도 좋을 과거가 아니다. 오늘의 한반도에 불어오는 시대정신Zeitgeist이 화해와 평화라면, 부디 “지금 시간으로 충전된 과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목록들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더 많이 갖게 될수록 ‘한반도의 봄’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비관론’에 대해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비관론’이 어디서 발원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국면 전환’에 관해 쏟아지는 미국 내 대다수 소위 한국 ‘전문가들’과 그에 편승한 한국 사회 일각의 ‘트랜스내셔널한’ 비관론에는 아무래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종류의 비관은 스스로 한 말을 번복하고 있으며, 그 뿌리가 결코 깊지도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의 모순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냉전 종식의 세계적 전환기를 떠올려 보자. 당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부상했던 슬로건은 바로 ‘역사의 종말’이었다. 드디어 ‘자유민주주의’가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야 말았다는 자신감, 영원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숙적의 라이벌에게 승리했다는 기쁨. 그리하여 인류는 역사의 최후 종점에 다다랐다는, 그토록 의기양양하게 울려 퍼졌던 선언 말이다. 커다란 국면 전환기에 사람들이 느끼게 마련인 근본적인 불안에 대해, 그 책의 저자가 누차 언급했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 하나를 떠올려 보자.
현명한 사람들은 자주 비관론에 끌리지만, 그것이 반드시 지혜로운 판단은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적 교훈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