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醉後(취후) - 정지상(鄭知常)

Bawoo 2014. 12. 31. 22:41

醉後(취후)

                                                                          - 정지상(鄭知常)

 

   桃花紅雨鳥喃喃(도화홍우조남남) : 복사꽃 붉은 비에 새들은 재잘재잘

       繞屋靑山間翠嵐(요옥청산간취람) : 집 두른 푸른 산엔 여지저기 아지랑이

一頂烏紗慵不整(일정오사용불정) : 이마에 오사모 귀찮아 그냥 두고

             醉眠花塢夢江南(취면화오몽강남) : 술 취해 꽃동산에 누워 강남땅을 꿈꾸노라.

 

제1행의 ‘도화홍우(桃花紅雨)’― 복숭아꽃 붉은 비란 무엇인가?
붉은 복숭아 꽃잎이 마치 비가 내리듯 바람에 분분히 떨어져 내리는 정황이리라.
도화가 지는 때이니 이른봄은 이미 지난 시절인 것 같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풀잎들은 파릇파릇 돋아나고, 새들도 춘흥을 못 이겨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제2행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풍경이다.
작품 속의 인물이 기거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집은 병풍 같은 청산 속에 싸여 있다.
그곳은 여항간(閭巷間)이 아니라 어쩌면 선경(仙境)을 연상케도 하는 신성한 자연이다.
‘취람(翠嵐)’―비취빛 이내가 그것을 암시하고도 있다.

제3행은 인물의 묘사다. ‘오사(烏紗)’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관직에 있는 사람 같다.
오사는 벼슬아치가 쓰는 검은 색 비단 모자라고 하니 그렇지 않는가.
그 관모를 이마 한 귀퉁이에 비스듬히 걸치고 있으면서도 귀찮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4행 역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그는 춘흥에 젖어 기울인 술잔이 좀 과했던가 보다. 드디어 자연과 술에 취해 꽃피는 언덕에 누워 잠이 든다. 강남을 꿈꾸면서―.

어떻게 보면 시 속에 등장한 주인공은 성실치 못한, 건방진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료의 신분으로 관청에 나가지도 않고 봄날 꽃에 취해 술이나 마시고 낮잠이나 자고 있으니 그렇지 않는가.
요즈음 같으면 직무유기로 파면을 면치 못할 짓을 하고 있다.
그 시절에도 어찌 그런 징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관직 같은 것에 연연해하는 인물 같지 않다.
꽃이 지는 봄날에 빈둥거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용부정(慵不整)’(관모 바로 쓰기를 귀찮아 함)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꿈꾸는 강남몽이란 무엇인가?
강남은 추운 겨울도 따스하게 지낼 수 있고 사철 오곡백과가 풍성한 축복의 땅인 것만 같다.
지금 몸담고 있는 도화청산도 무릉에 가까운데 도대체 그가 꿈꾸는 강남은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이 작품은 작자의 실제 체험을 노래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정지상의 꿈의 기록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게 생각되는 까닭은 정지상이 지방 관리로 자연을 즐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의 혁신적인 성향으로 미루어 보아 작품 속의 주인공과 같은 유유자적한 삶을 누렸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조정에 몸을 담고 있다보니 탐관오리며 간신배들이 날뛰는 일이 얼마나 마음을 괴롭혔겠는가.
특히 군주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질시하는 무리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았겠는가.
정치적인 삶이란 바로 이러한 무리들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면 충신이요 지면 역적이 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모함과 술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살았을 것이다.

마음의 영일이 없는 그런 각박한 삶에 어찌 회의가 없었겠는가.
그래서 그가 꿈꾼 것이 자연 속의 유유자적한 삶이었으리라.
그의 꿈은 꿈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강남의 꿈’으로 이어진다.
강남은 그가 실현코자 하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작품 속의 도화 청산은 그가 꿈꾼 개인적인 낙원이라고 한다면 강남은 그의 정치 이념이 실현되는 민중의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상상 속에서나 꿈꾸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릇 모든 시는 꿈의 기록이다.
인간의 모든 언술이 소망의 기록이거늘 시가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시는 어떠한 유형의 언술보다도 몽상적이다.
시인은 현실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 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유인이므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원로시인 임보님의 평 >

정지상(鄭知常, ?~1135)은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종 7년(1112) 진사과에 장원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간 후 뛰어난 시문으로 군주의 신임을 얻는다.
특히 인종의 총애를 얻은 그는 간관(諫官)의 직책을 역임하면서 국가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당대의 권신이던 이자겸(李資謙)을 축출하고, 분별없이 날뛰던 척준경(拓俊京)을 탄핵 제거한다.
그는 주체성이 강한 진보적인 정치가로서 고려도 왕을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새로이 제정하자는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을 주장하기도 하고,
국력을 신장하고 서울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자는 서경천도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인 정치 이념은 보수적인 세력과의 충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인종 13년 묘청의 난이 발발했을 때 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김부식(金富軾) 등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정지상의 시는 겨우 20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정치적 수난을 겪으면서 많이 인멸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많지 않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은 확고하다.
특히 이별의 노래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大同江」(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은 역대 수많은 소인묵객들의 입에 회자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