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첼로협주곡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Sir Edward Elgar 1857∼1934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는 헨리 퍼셀과 조지 프리데릭 헨델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였다. 헨델의 경우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독일 태생의 작곡가였고, 퍼셀은 300년 전인 17세기의 작곡가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와 [수수께끼 변주곡],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유명한 엘가는 무엇보다도 20세기에 작곡된 첼로 작품 중 가장 비극적인 곡 [첼로 협주곡 E단조]를 남긴 작곡가다. 감정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비탄에 잠긴 첼로의 노래
일반적으로 협주곡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엘가는 교향곡과 같이 4개의 악장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이 작품은 1, 2악장과 3, 4악장을 서로 묶어서 휴식없이 연주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에서 위로를 받는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슬픔의 입자들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은 매우 특별한 체험을 제공한다. 엘가의 이 위대한 [첼로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은 ‘마음의 위로’에 있다. 이 음악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슬픔의 바다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한다. 꿈보다 오래된 기억처럼,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서 퍼져나오는 눈물 같은 조각들은 엘가의 한숨과 섞여서 흐른다. 첼로의 저음은 이토록 절절한 감정들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흔들린다.
엘가는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작품의 간단한 구조 안에 있다”고 말했는데, 삶에서 죽음 쪽으로 무너지는 인생에 대한 추억이 박혀있는 듯한 느낌은 [첼로 협주곡]의 흐름을 타고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구성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22일 영국의 햄스티드에서 엘가는 [첼로 협주곡]의 첫 번째 스케치를 쓰기 시작했다. 종종 대포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엘가는 부지런히 작곡을 계속했고, 마침내 7월에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던 사이사이 햄스티드의 야간 특별 경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엘가는 자신의 삶이 막바지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며 대작 완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해 여름의 대부분을 바이올린 소나타와 현악 사중주를 작곡하는 데 열중했고, 첼리스트 펠릭스 잘몬트와 [첼로 협주곡]에 대해 함께 의견을 교환한 이후 7월에는 촛대를 만드는 틈틈이 협주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손보았다. 엘가는 이 [첼로 협주곡]의 헌정을 오랜 친구였던 콜빈 부부에게 바쳤다. “당신과의 우정은 너무도 소중해서 우리들의 우정을 기념하고 싶습니다. 이 협주곡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작곡가는 몇 번이나 작품을 고쳤다. 8월 12일에는 일기장에 “나는 느린 악장의 마지막을 생각해내지 못할까봐 두렵다. 따로 연주한다면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텐테” 라며 작품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1919년 10월 27일 마침내 첼리스트 잘몬트와 엘가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협연으로 영국의 퀸즈 홀에서 곡을 초연했다. 청중의 반응은 썰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던져준 달콤함을 기대했던 것이다.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연습 부족도 문제였다. 악보의 출판도 2년 후에나 나왔는데, [첼로 협주곡]을 출판한 출판사의 사장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엘가의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원하지 않아. 다만 합창곡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엘가의 부인은 이 협주곡이 초연된 후 5개월 뒤에 사망했고 엘가의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졌다. 사실 엘가로 하여금 작곡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어둠 속에서 끌어올려준 존재가 바로 그의 부인이었던 캐롤린 앨리스였다.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결과물이다.
<비운의 첼리스트 뒤 프레의 혼이 담긴 격정적인 연주는 엘가 [첼로 협주곡]의 명연 중의 명연으로 남아있다> 잔잔한 슬픔으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하는 작품 이 첼로 협주곡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네 악장은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순환 형식을 따른다. 이 협주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은 독주 첼로의 첫 다섯 마디에 달려 있다. 아다지오-모데라토의 1악장은 넓은 음역에 걸친 더블스톱과 오케스트라의 현악 파트가 레치타티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클라리넷과 바순의 역할은 어둡고 침침한 사운드에 비극적인 색채를 더한다. 목가풍의 특징적인 병행 3도가 특징적인 파스토랄 악장인데, 1악장은 단순히 서두를 여는 역할 이상을 하고 있다. 2악장은 마치 스케르초처럼 들리는데, 1악장 보다 활기찬 특징이 있다. 2악장 알레그로 몰토에는 엘가의 유머가 섞여 있으며, 첼로의 노래하는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었다. 60마디 이상 이어지는 폭넓은 단선율은 고요함의 대지를 떠올리게 한다. 3악장 아다지오는 더없이 명상적이며 4악장으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4악장 알레그로-모데라토-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자유로운 론도이며 절망의 파도 속으로 한꺼번에 침몰하는 분위기다. 더없이 고독한 E음의 코다는 다분히 회상적이며 슬픔으로 범벅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듯하다.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신들린 듯한 유명한 연주 많은 사람들에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연결되어 있다. 1973년,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뒤 프레의 비극적인 인생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결혼 생활에도 위기를 가져오며 숱한 일화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첫 번째 엘가 레코딩은 거의 뒤 프레 자신과 동일시 될 정도로 유명한 음반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엘가 [첼로 협주곡]의 첫 번째 선택 음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가 존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60년대 연주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제일 처음 들어야 하는 음반이다. 이 연주에는 뒤 프레의 눈물과 한숨이 모두 녹아 들어가 있으며 오케스트라도 최상급 연주를 들려준다. 비극성의 확장과 거대한 스케일감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연주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음반보다도 바비롤리와 함께 협연한 첫 번째 녹음이야말로 뒤 프레의 모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을 예감하듯이 고통으로 가득 찬 울림으로 엘가의 슬픔을 인류의 슬픔으로 승화시켰다.
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제 1악장 모데라토(Adagio Moderato)
첫머리를 위엄 있는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연 다음, 단순한 ABA 리드 형식의 1악장이 펼쳐진다. A는 9/8박자로 비올라가 주제를 시작하면 이어 첼로가 받아 단조롭게 노래 부르다 결국 E단조 상행음계로 폭발하듯 솟구친다. 토르틀리에는 이 부분을 겉은 표정 없이 냉정해 보이나 속은 열정으로 끓고 있는 영국인들의 기질 같다고 했다. 반대로 B는 12/8박자로 애교 있는 주제가 계속되는 변주로 여러 가지 표정을 꾸미고 있다.
기타적 효과를 노리는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시작되는데,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되었다. 몰아치는 첼로의 스파카토와 이에 대응하는 목관과 투티가 점화법으로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제 3악장 아다지오(Adagio)
단지 60마디로 되어있지만 명상적인 분위기를 구축하며 협주곡의 중심을 이룬다. 영국 에어풍의 멜로디를 느린 속도로 최대한 확대하고 전조를 수단으로 하여 낭만적이며 서정적 아름다움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은 마치 질문을 던지듯 V7화음을 페르마타로 길게 울린 다음 곧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제 4악장 알레그로(Allegro)
투티에 의한 주제가 제시되면 '레치타티보처럼' 이라고 지시된 첼로 솔로가 주제를 느리고 자유롭게 이끌다가 간단한 카덴차로 일단락 짓는다. 그 다음 유머러스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자유로운 론도 형식을 꾸며간다. 끝으로 가면서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2/4박자에서 4/4박자로 바뀌면서 3악장의 분위기가 되 살아난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듯 보이다가 결국 3악장 주제를 재현하고, 이어 1악장의 레치타티보를 엄숙하게 토로한 후 알레그로 몰토로 힘차게 피날레를 장식한다.
엘가 첼로협주곡 E단조 이 곡의 특징은 먼저 독특한 구성에 바탕을 두고 지극히 간결하게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전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앞의 1, 2 악장과 뒤의 3, 4 악장을 묶어 거의 휴식 없이 진행한다. 레치타티보는 각 악장의 첫머리를 장식할 뿐 아니라 곡 중간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동기나 주제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3악장의 주제가 4악장에서 교묘하게 취급된다거나 마지막에 1악장의 레치타티보를 다시 가져오는 등 구성에서 뛰어난 독창성을 보인다. 첼로 독주의 기교적인 부분이 관현악과 더불어 과장됨 없이 간결하게 정수만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실내악적이다. 한편 반음계적 전조로 화성적 색채를 짙게 하는 양식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듯하며, 감정의 내면적 성향에 있어서는 슈만이나 브람스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중후한 영국인다운 품격을 갖추고, 적당히 낭만적 서정성을 내포하며, 담담하고 애잔한 우수를 띤 곡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시대를 벗어나는 노 대가의 최후의 대작에 걸 맞는 곡이다.
Jacqueline du Pre, Elgar Cello Concerto 1967
엘가 (Sir Edward Elgar 1857∼1934)
영국 작곡가. 우스터 근교 브로드힐 출생.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로부터 음악 기초를 배웠으나, 작곡은 독학으로 익혔다. 초기에는 지방음악가로 활동했으나, 곧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관현악곡 《에니그마 변주곡(1899)》, 오라토리오(聖譚曲) 《제론티우스의 꿈(1900)》 등으로 지위를 확립했으며, R. 슈트라우스의 칭찬으로 유럽대륙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엘가의 본래 영역은 합창을 이용한 오라토리오·칸타타 등이었으나 교향곡·협주곡 등 관현악작품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음악은 후기낭만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친숙해지기 쉬운 선율과 장인적(匠人的) 기교로써 고귀한 인간감정을 표현하여 영국 국민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행진곡 《위풍당당》의 5곡 가운데 1902년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서 사용한 제 1 번곡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음악 감상실 ♣ > - 에드워드 엘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dward Elgar - The Severn Suite (0) | 2015.11.10 |
---|---|
Edward Elgar - 작품 모음 (0) | 2015.11.10 |
에드워드 엘가 Edward Elgar (0) | 2014.12.10 |
Edward Elgar- Introduction and Allegro, Op. 47 (0) | 2014.12.10 |
[스크랩]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Elgar, 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Op.39) (0) | 201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