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127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단상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단상 대통령 선거 열기가 뜨겁다. 정권 교체 여론이 더 우세하다는 매스컴의 여론 인용 보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정권 교체가 우세한 듯 싶어 보인다. 여기에 큰 몫을 하는 게 나처럼 1950년 대 초기 한국전이 끝나기 전에 태어난 70대 이상의 노년층일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50년대 생과 60년대 생들도 어느 정도는 가세하고 있을 테고. 아이러니한 건 이 세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을 10, 20대에 고스란히 겪은 세대라는 점이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까지 포함하면 30대까지 해당한다. 그런데도 굳건한 보수층이 된 이유는? 난 그 답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만큼 경제대국이 되는데 초석을 놓아준 박정희 전 대통령 ㅡ이하 박통으로 표기ㅡ에 대한 고마운..

내 불알친구 대영이

내 어릴 적 불알친구 대영이! 중학교 2학년 시절까지 같이 구슬치기, 시계불알놀이하며 놀았는데, 나 다른 동네로 이사가면서 중학교 졸업 후 얼굴 못 본지 어언 60여 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언제인가 다른 동창이 보내 준 동창 모임 동영상에 모습이 보였다. 너무 반가워 연락해 만나보니 몸은 늙었지만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어린 시절 같이 뛰놀던 추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철 없이 마냥 순진무구하기만 했던 시절이. 이 불알친구 대영이! 군대 제대한 후 20중반에 누나들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70이 넘은 지금까지 50여 년째 살고 있단다. 60여 년만에 한 번 만난 뒤 바로 헤어졌으나 카톡이란 좋은 통신 수단이 있어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띄어쓰기, 맞춤법이 엉망인 거에 질리지만 ..

붕어빵

1958년 서울에서 살던 내 나이 9살 국민학교 3학년 어릴 적 시절, 겨울이 되자 동네 골목길엔 붕어빵 장사가 나타났다.노릇노릇하게 구어진 빵에는 하얀 설탕가루가 유혹하듯 뿌려있었다. 난 그 붕어빵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어머니한테 사달라고 졸랐으나 돌아온 건 까만 고무줄이 회초리로 쓰인 매였다. 어머니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든 매. 어머니는 맞은 종아리를 부여잡고 우는 나를 보며 속으로 더 쓰라린 울음을 삼키셨을 것이다. 금쪽같은 새끼한테 그깐 붕어빵 한 개 못사주는 당신의 가난이 서러워서. 그 어머니 이제 세상을 뜨시려고 한다. 97년을 사시는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농촌으로 시집가 단 하루도 편치 못했을 나날들. 끼니를 거르고 산 적은 없으나 자식..

죽을 때는 영화 속 마론 브란도처럼

청소를 끝내고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창가 의자에 앉았다. 요 며칠 글 쓴다고 무리해서인지 몸이 상당히 힘들다. 특히 눈이. 청소하다가 몸이 핑돌아 잠시 의자에 앉아있기도 했다. 심장약을 먹는 이후로 걷는 속도도 빨라졌는데 몸을 구부렸다 일어날 때 핑 도는 증세는 여전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까 늘 궁금한데 문득 영화 "대부"에서 마론 브란도가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 정원의 의자에 앉아 손자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평안한 모습으로 죽는. 몸이 늙어 마론 브란도 나이가 되니 새삼 영화 속 마론 브란도가 부럽다. 나도 폰으로 이 글을 쓰는 자세로 이렇게 죽고 싶다. 조금만 더 오래 살다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서 잠들 듯이 그렇게. [2022. 01. 09 13: 33분에]

세월: 아내의 미용용 아령

언제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령 두 개가 아내 손에 들려 집에 들어왔다. 겉이 분홍빛으로 포장된 보기에 꽤 예뻐보이는 모습을 하고서. 호기심에 들어보니 엄청 가벼웠다. 아내에게 "이리 솜뭉치같이 가벼운 거 뭐하러 사왔냐"고 물으니 "미용용인데 당신도 늙으면 요긴하게 쓰게 될지도 모르니 잘 모시라"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무게를 달아보니 한 개에 650g이었다. 두 개 합해봤자 고작 1.3kg. 그때 나는 한 개에 1.5kg짜리를 애용하고 있었다.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 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자만하지 밀아요.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잖아요." 라고 힐책하듯 말하지 않는가. 그 뒤로 어김없이 세월은 흘러갔다. 한 해, 두 해, 세 해 그렇게. 아내의 미용용 아령..

[추억] 고마운 동창생 이야기

1969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55년 전 얘기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2년 째 투병생활 중이었다. 입시공부를 거의 못했지만 초조한 마음에 예비고사 시험을 보려고 예비 소집장에 갔었다. 목표한 대학에 들어갈 실력에 한참 모자라는 걸 알았지만 예비고사에 합격할 정도는 되는가 알고 싶어서였다. 이날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을 만났다. 3년동안 같은 반 한 번 해 본 적은 없지만 안면도 있고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런 동창. 원래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런 것 아닌가. 굳이 이성이 아닐지라도 동성간에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 법이다. 이 동창이 그랬다. 체형도 나와 엇비슷했고 내향적인 성향으로 보이는 것까지 같아서였을 것이다. 반전은 있다. 이 동창의 이후 살아온 삶을 보면 나하고는 정반대이면서 요식업으로 ..

세월: 동태탕

아내가 동태탕을 끓였다. 며칠전 방송에서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하길래 그걸 보고 생대구탕 먹고 싶다고 했더니. " 지금 먹고있는 꼬리 곰탕 다 먹으면 냉동실에 동태 있으니 그거 우선 끓여먹읍시다"하더니 그게 바로 오늘이었나보다. 동태탕은 맛이 좋았다. 음식솜씨 좋은 아내가 끓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엔 재료가 더 들어간 것 같았다. 특별히 새우가 눈에 뜨였다. 국물맛을 더 진하게 해준다는 아내의 설명.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태의 큼직큼직한 살을 먹을 때는 아무 문제없이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는데 느닷없이 잔가시가 씹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전날 꼬리곰탕 먹으면서 뼈를 잘못 씹어 앞니 하나가 아직도 시큰거리는 참이라 겁이 덜컥났다. 이는 윗니 몇 개 덧씌운 정도라 치과의사도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

백신 접종 유감

백신 3차 접종 3일째. 1, 2차 때도 그렇긴 했지만 이번 접종이 가장 두렵고 맞기 싫었었다. 주변 또래들이 다 맞았다고 그러기에 용기를 내 맞기는 했지만 매스컴의 한두 건 부작용 사례 보도에 내가 해당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이틀 째인 어제는 많이 힘들었다 주사 맞은 부위 통증도 그렇지만 뭔가 하려는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잠은 또 왜 그리 쏟아지는지. 나이가 있으니 뇌건강이 나빠지는 징조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늘 두려운 마음이다. 노년에 가장 무서운 질병이 뇌쪽 질병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3일 째인 오늘은 운신도 좀 자유로워 산책, 그림 그리기 의욕이 조금은 솟는다. 아직은 침대에 비스듬이 앉아 이 잡문을 쓰고 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갈 것이다. 바우야, 힘내자.으랏차..

새해 단상

또다시 맞이하는 새해. 어느덧 73세. 언제부터인가 약으로 버틴 세월. 덕분에 큰 병치레는 안 했다. 앞으론 어찌될까? 삶이 무한할 수는 없으니 언젠간 터질 텐데. 욕심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늦게 터졌으면. 적어도 80까진(?). 아마 이도 욕심일지 모른다. 그래도 어느덧 고래희란 70고개를 세 번째 맞이하고 있으니, 주변 또래들도 아직은 건강한 사람이 더 많으니 희망을 갖고 우선 오늘부터 무탈하게(?)^*^. [2022년 새해 아침에 그냥 누운 상태로 끄적끄적]

음악감상실 "카르페 더 뮤직"이라는 곳을 다녀오다

얼마 전에 친한 대학동기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양평에 기가 막히게 좋은 음악감상실이 있다고 또 다른 동기가 추천하니 날 잡아 뜻 맞는 동기들 모두 모여 한번 같이 가자고.' '헐~ 음악 감상이라니 그것도 멀리 양평까지 가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감상실 가 본 기억이라곤 본격적인 직장 생활하기 전인 20대 중반에 명동에 있는 '필하모니'에 토요일 오후에 가끔 가서 몇 시간씩 죽치고 있어 본 것이 전부이고 직장에 들어간 이후론 피로에 지쳐 음악 감상을 하기보다는 그냥 쉬는 것이 더 좋은 몸 상태가 되어 자연스럽게 멀리해 왔는데 60 중반인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음악 감상실이라니. 더군다나 멀리 양평까지 가야 하고 목요일은 정기 테니스 모임도 있는 날인데..... 그렇지만 나를 생각하는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