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령 두 개가 아내 손에 들려 집에 들어왔다. 겉이 분홍빛으로 포장된 보기에 꽤 예뻐보이는 모습을 하고서. 호기심에 들어보니 엄청 가벼웠다. 아내에게 "이리 솜뭉치같이 가벼운 거 뭐하러 사왔냐"고 물으니 "미용용인데 당신도 늙으면 요긴하게 쓰게 될지도 모르니 잘 모시라"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무게를 달아보니 한 개에 650g이었다. 두 개 합해봤자 고작 1.3kg.
그때 나는 한 개에 1.5kg짜리를 애용하고 있었다.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 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자만하지 밀아요.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잖아요." 라고 힐책하듯 말하지 않는가. 그 뒤로 어김없이 세월은 흘러갔다. 한 해, 두 해, 세 해 그렇게. 아내의 미용용 아령은 내 안중에 없이 그렇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1.5kg짜리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아내가 오래 전에 사온 미용용 아령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호기심에 집어들어 보니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오래 전 처음 들어봤을 때는 전혀 못느꼈던 무게감. 나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여보! 이게 이젠 가볍지가 않네" 그랬더니 "거봐요.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른댔잖아요"라고 답하며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이날부터 아내의 미용용 아령은 내가 애용하는 물건이 되었다.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하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쉬면서 어김없이 찾는. 대신 그동안 애용했던 1.5kg짜리 아령 두 개는 창고로 들어갔다. 아마 내 대에선 다시는 햇볕을 보지 못하게 될 운명이리라. 노쇠해가는 내가 다시 찾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애용하는 아내의 미용용 아령과도 헤어져야 할 날이 언젠간 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리 멀지는 않은 세월에 반드시. 그때는 더 가벼운 아령을 찾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삶이 거의 끝나가는 때일 것이기에. 어쩌면 가벼운 숟가락조차도 들지 못할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때를 미리 생각하니 엄청 슬프다.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알면서도. 나 역시 그리 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알기에. ㅠ*ㅠ
[2022. 01. 31. 명절 하루 전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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