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평설, 문화 91

[이징옥 장군 이야기]"듣거라 하늘아, 나는 大金의 황제니라" 외

[박종인의 땅의 歷史] 듣거라 하늘아, 나는 大金의 황제니라2017.05.24 | 조선일보 | 다음뉴스 친 수양대군파는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을 파면하고 서울 복귀 명을 내렸다. 다른 말이...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종성 판관 정종 무리가 이끈 자객들에 의해 온몸에 화살을... ---------------------------------------------------------------------------------------------- 이징옥 장군의 극적인 인생 스토리 수 없다고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김해부사 정종은 후에 함경도 종성부사가 되었고, 이징옥은 함경도 절제사가 되었다. 이징옥은 정종의 과거를 까맣게 잊어 버렸으나 정종은 과거지사가 탄로날까봐 늘 노심초사... www.yangsanil..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선비사회의 미움과 사랑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선비사회의 미움과 사랑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와 달리 역사 속에는 인간 심성이 알알이 박혀 있다. 임금에게 미움을 받으면 유배를... 집안과 영남의 의성김씨 집안 간 우애는 오백년 선비사회의 귀감이 되었다.◆향리 아들에게 베푼 사랑숙종 때...[영남 일보] [사진 자료를 보려면 위 제목을 누르십시요] 영남일보 실록에 '유배' 3200회 등장, 골치 아픈 신하는 섬으로… 개인의 원수는 가문의 원수 "혼인 말라" 대대손손 전해 고려·조선의 왕들은 중국 황제를 따라한다고 걸핏하면 신하를 귀양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 귀양이란 단어가 5천여회, 유배가 3천200여회 나온다. 사진은 유배떠나는 모형.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와 달리 역사 속에는 인간 심성이 알알이..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한음 이덕형과 노계 박인로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한음 이덕형과 노계 박인로[12시간전 | 영남일보] 해남의 거부였고 노계는 빈한한 집안의 영남선비였다. 어려움 속에서 주옥같은 글을...그를 기리고 있다. 여행작가·역사연구가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낮은 산자락에...[사진자료를 보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조선 최고 엘리트와 영천 초급관리의 우정…주옥같은 詩를 낳았다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낮은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작은 서원이 하나 있다.이곳은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한국가사문학의 3대 시성으로 불리는 노계 박인로 선생의 학문과 충효를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이 세운 도계서원이다. 옛사람들은 선비의 아름다운 만남을 '담수지교(淡水之交)'라 불렀다. 깨끗하고 담백한 선비의 교유를 '맑은 물의 사귐'이라 하..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정약용과 경상도1 [영남일보 ]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정약용과 경상도1 [영남일보 ] 논의가 일어난다. 1938년 신조선사에서 영남유림 등의 도움을 받아 활자본 여유당전서...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여행작가·역사연구가부인이 보낸 치마폭을 종이 삼아... 유람하며, 유배와서…茶山은 경상도 흠모하는 마음을 글로 남겼다 부인이 보낸 치마폭을 종이 삼아 적은 하피첩. 오랜 유배 끝에 고향 남양주 마재로 돌아온 다산은 아내와 함께 18년을 더 살다가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고전·경학 저술 230권, 시문 70권, 경세·목민·의약 저술 200여권을 남겼다. 정인보는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이라 했다. 조선 지성사에 우뚝 선 인물 다산 정약용. 경세, 고전, 경제, 의약, 국방, 천문, 지리 등 다방면에 통달했고 ..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낙남 명문가…禍 피해 영남으로 내려온 세 집안, 역경 딛고 명문가로 뿌리 내려

m.yeongnam.com/view.php?key=20201211010003910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낙남 명문가…禍 피해 영남으로 내려온 세 집안, 역경 딛고 명문 경상도는 따뜻하고 살기가 좋아 옛날부터 수도에 사는 선비들은 경상도 집안으로 장가 들어 처가고을에 세거했다. 조선 초 정난(靖難)이나 사화에 연루돼 가문에 위기가 닥치자 경상도로.. m.yeongnam.com 경기도 광주가 본관인 광주이씨는 조선 초 대표적인 훈구파 집안으로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서 당대 최고의 벌족으로 꼽았다. 성종 때 극자 돌림 사촌 8명이 당상관으로 어전회의에 참석해 '8극'으로 불린다. 하지만 갑자사화 때 멸문의 화를 당한다.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간 형방승지가 일족임에 발단돼 40여 명이..

[손호철의 발자국]"색맹" 뉴라이트 환상깨는 일제의 거대한 금고를 보라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일본으로 수탈해갈 쌀 등을 보관했던 군산부두의 한 창고. 벽에 그려진 안중근의사의 손바닥 벽화가 눈에 띈다. 손호철 교수 제공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쫘르르 쏟아져 버리면서/강은 다하고,/강이 다하는 남쪽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는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눈물.” 말년의 친일활동으로 빛..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영남선비들의 아름다운 '낙향'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영남선비들의 아름다운 '낙향' 2020.11.20 | 영남일보 등이 도산서원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영남일보 DB〉징비록을 짓고 풍전등화의 위란...정탁의 유장한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는 예천 읍호정.이도국 (여행작가·역사연구가) [사진 자료 보기]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영남선비들의 아름다운 '낙향' 2020-11-20 류성룡, 낙향해 징비록 쓰고…정탁은 이순신 구하고 예천으로 지난해 4월21일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걷기행사에 참석한 이철우경북도지사와 권영세 안동시장 등이 도산서원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영남일보 DB〉 수도에서 관리 생활을 마치고 혹은 물러설 때를 알아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을 '낙향'이라 한다. 오천년 역사에 낙향..

[손호철의 발자국] 국가보안법의 단초가 된 "여순사건"의 비극

여순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 여인들. 칼 마이던스 미국 기자의 사진을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2019년 '라이프 타임'지와 협의해 책으로 엮어 공개했다. 여수·순천(여순)과 제주. 모두 남쪽에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남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 두 지역은 한국현대사에 아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두 지역의 대표적 비극인 제주의 4·3과 ‘여순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애국병사 여러분! 우리가 총부리를 같은 형제인 제주도민에게 겨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동족상잔과 제주도 출병을 결사반대해야 합니다.” 1948년 10월 19일 밤, 제주도 출병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여수 14연대 병사들은 갑자..

[손호철의 발자국] 좌익의 우익 학살 또한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전남 여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여순 사건 당시 좌익의 무분별한 학살로 두 아들을 잃었지만,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아들로 삼으며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선행을 그린 벽화. 손호철 교수 제공 ‘손동신, 순천중학생 18살.’ ‘손동인, 순천사범대학교 기독교학생회장 23살.’ 여수공항 근방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앞에는 손 목사에 앞서 순교한 두 아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들은 여순 사건 당시 좌익 학생들에 의해 ‘친미예수쟁이’라고 인민재판에 회부돼 총살형을 당한..

교장과 사환 월급이 같은 학교, '빨갱이'로 몰려 죽은 설립자

교장과 사환 월급이 같은 학교, '빨갱이'로 몰려 죽은 설립자 교장과 사환 월급이 같은 학교, '빨갱이'로 몰려 죽은 설립자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1930년대 중반 강성갑-오중은 부부(출처: 홍성표) ⓒ 박만순 "조카, 느그 아버지 시신이 발견됐데이.""정말입니꺼?" 큰아버지 강갑이의 연락을 받은 강성갑의 아 news.v.daum.net 김해 진영의 '나눔의 철학' 교육가 강성갑.. 추모 동상만 덩그러니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1930년대 중반 강성갑-오중은 부부(출처: 홍성표) ⓒ 박만순 "조카, 느그 아버지 시신이 발견됐데이." "정말입니꺼?" 큰아버지 강갑이의 연락을 받은 강성갑의 아들 강흥철은 부리나케 시신이 발견된 현장으로 내달렸다. 시신은 학살 현장인 낙동강변 수산다리에서 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