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인물, 단체 181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본인은 물론 동생, 노모, 어린 아들까지 처형당한 인물] 이발(李潑)

이발(李潑, 1544년 ~ 1589년 음력 12월 1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 본관은 광산이다. 제학 이중호(李仲虎)의 아들이며, 네 형제 중 둘째였다. 윤의중의 사위로 고산 윤선도의 고모부였다. 문과 알성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부제학에 이르렀고, 동생 이길(李洁)도 별시 을과에 아원(2등)으로 급제하여 응교에 이르렀으나,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둘 다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였다. 이발은 동인 강경파의 영수였고, 또한 북인에 속했다.[1] 정여립을 편들고 친하게 지낸 것이 기축옥사에 연루되는 원인이 되었으며,[2] 형제의 죽음에 이어 80대 노모와 어린 아들까지 고문으로 죽어 동인들이 원망하였고, 이는 동인의 남북 대립으로 이어졌다. [생애] 김근공(金謹恭)과..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박자혜(朴慈惠)

박자혜(朴慈惠, 1895년 12월 11일 ~ 1943년 10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12월 11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수유리(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기도 파주군 금촌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부친은 중인 출신의 박원순이고 모친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성부에서 자라던 그녀는 어린 시절 아기나인으로 입궁해 약 10여년 궁중생활을 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궁녀 신분을 벗어난 후 숙명여학교 기예과에 입학해 근대교육을 받고, 졸업 후 사립 조산부양성소를 다녔다. 졸업 후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조선총독부의원 산부인과의 간호부로 취업하였다. 1919년, 간호부 근무 당시 3·1 만세 운동으로 병원..

[한일합방에 분개하여 자결한 인물,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 선생의 아버지]홍범식(洪範植)

홍범식(洪範植, 1871년 9월 7일(음력 7월 23일) ~ 1910년 양력 8월 29일)은 구한말의 관료이다. 본관은 풍산. 충청북도 괴산 출생이며 아호는 일완(一玩)이다. 명문가 출신으로, 조부와 아버지 홍승목이 과거에 급제하여 고위 관직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학을 공부하여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902년부터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1907년 전라북도 태인군, 1909년 금산군에 발령 받아 군수로 재직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 병합 조약의 체결 소식은 금산군수로 근무하면서 듣게 되었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순종이 조약 체결을 공포하자 그날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어 자결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가계 -조부 : 홍우길(..

[세종 시대- 첩, 노비를 학대하거나 살해하여 처벌받은 문신]권채, 이명균, 오승 외

권채 1399~1438. 세종 시대의 문신이다. 시문과 경학에 뛰어나서 세종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후에 첩에게 행한 잔인한 행동을 듣고 세종이 "나는 권채를 성질이 안존(安存)하고 자세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가 그렇게 잔인했던가. 이것은 반드시 그 아내에게 제어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니"라고 놀랐다. 첩을 학대한 것 때문에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1년만에 복직하였고 대사성, 우승지 등 주요 직책을 담당하였다. 훗날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가담한 인물인 유자광의 고모부이다. namu.wiki/w/권채 나무위키 -----------------------------------------------------------------------------------------------------------..

[러시아 국적의 공산주의 계열 여성 독립운동가]김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 킴]

알렉산드라 킴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킴(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1885년 2월 22일 ~ 1918년 9월 16일)은 러시아의 고려인 사회주의 운동가, 혁명가다.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혁명의 시기에 급진혁명파인 볼셰비키에 가담하였다. 1917년에 러시아 공산당(소련 공산당의 전신)에 입당했으며, 러시아 내전 시기인 1918년에는 극동 지역 인민위원회의 외무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당시에 그녀는 연해주 일대에서 중요한 볼셰비키 지도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하바로프스크를 점령한 일본군과 러시아 백군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에 열성적이었으며,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공산당이 ..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세력에 의해 참형을 당하는 등 공보다 과만 부각되었으나 후대에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 우리나라의 3걸(을지문덕, 이순신, 정인홍)중 한 분으로 평가받는 등 재평..

정인홍(鄭仁弘, 1535년 9월 26일 ~ 1623년 4월 3일)은 조선중기,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선조·광해군 대에 북인과 남명 조식학파(曺植學派)를 이끌며 정국을 주도했으며, 조식의 수제자이자 남명 학파의 지도자였다. 당색으로는 동인이었다가, 정철의 처벌을 놓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는 강경파로 북인이었다. 자(字)는 덕원(德遠), 호는 내암(來庵),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1573년(선조 6년) 학문과 덕행을 인정받아 황간현감으로 발탁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제용감정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합천에서 의병을 모아 합천, 성주, 대구 등지에서 활동하며 왜병을 격퇴하여 영남 의병장의 호를 받았다. 조식의 수제자로서 최영경, 오건, 김우옹, 곽재우 등과 함께 경..

[숙종 시기- 남인 숙청을 주도한 인물]김익훈(金益勳)

김익훈[金益勳, 1619년(광해군 11) ~ 1689년 3월 11일(숙종 15)]은 충청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낸 조선의 외척이며 문신이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종조부이다. 본관은 광산, 자(字)는 무숙(懋叔)이고 호는 광남(光南)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부총관 등을 거쳐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보사공신 2등으로 광남군(光南君)에 봉군되었다. 서인 중진이자 척신 계열의 정치인으로 남인을 공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복창군·복선군(福善君)·복평군(福平君) 등이 허견(許堅)과 모역을 꾀한다는 고변으로 경신대출척을 일으켜 김석주와 더불어 남인들을 몰아내는 데 적극 가담하였다. 허견의 비리와 부패행위 정보를 입수하여 사건을 확대, 숙종의 외당숙 김석주와 함께 역모 사건을 날조하여 남인들을 일망 타..

[조선- 자선사업가]박잉걸(朴仍傑)

모은(慕隱) 박잉걸(朴仍傑) 1676년 칠보면 백암리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웅(汝雄)이다. 북면사무소에서 칠보로 가는 길, 백암초등학교 앞 도로는 '걸치기'로 불린다. '무언가'를 '걸친다'는 말에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이 바로 가진 이와 없는 이 모두가 더불어 함께 잘사는 공유의 세상을 이루려던 그의 따뜻한 혼이 지금도 느껴지는 곳이다. 그는 당시 군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막(幕)을 치고 언제나 누구든지 입고 신을 수 있도록 옷과 신발을 걸어 두었다. 그러자 가난한 사람들이 먼 곳에서까지 찾아 와 옷을 갈아 입고 신발을 걸어 두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걸치기'라 불렀다. 지금도 이곳은 '걸치기'로 불리고 있다. 그는 칠보와 산내의 교류를 위해 지금 구절초 축재가 열리는 곳인..

[일제강점기-밀정,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종형(李鍾馨)

이종형(李鍾馨, 1895년 4월 20일 ~ 1954년 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본명(本名)은 이종영(李鍾榮)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 만주 지역에서 관동군 촉탁 밀정 활동으로 악명이 높다. 밀정 활동 중에는 권수정(權守楨)이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강원 정선에서 출생하였으며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어린 시절 함남 원산에 유학하여 원산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 보통청강과정을 다니다가 1918년 중퇴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와세다 대학교 학적 퇴학 명부에서 찾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복역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또한 본인의 주장일 뿐 사료 가운데..

[구한말 여류시인] 오효원(吳孝媛)

오효원[吳孝媛] [1889(고종 26~미상)] 본관은 해주(海州). 경상북도 의성(義城) 출생. 초명은 덕원(德媛), 호는 소파(小坡)·수구(隨鷗). 아버지는 당시 관리였던 수양산인 경금옹(慶今翁) 오시선(吳時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9세부터 남자의 복장을 하고 글방에 다녔으며 얼마 되지 않아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1898년(광무 2)에는 의성과 이웃 두 군에서 실시하는 백일장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1902년(광무 6) 14세 때 공금을 사사로이 쓰는 일으로 인해 수감된 아버지를 용서받고자 홀로 상경했다. 판서(判書) 김종한(金宗漢)·민영선(閔泳璇) 등에게 울며 애걸해 부녀 결연과 사제 의리를 맺어 아버지를 구했다. 이때부터 시 모임에 나가기 시작해 당시의 유명했던 구로회(九老會)까지 출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