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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 거란유종의 침입과 관련된 기녀]자운선[紫雲仙]

[생몰년 미상] 기생 출신이다. 무신집권자 이의민(李義旼)의 아들 이지영(李至榮)을 섬겼다. 이지영이 삭주(朔州) 분도장군(分道將軍)이었을 때 본래 부역의 의무가 없던 흥화도(興化道)와 운중도(雲中道)의 양수척(楊水尺: 水尺·禾尺·무자리라고도 하며, 변경지대에 주로 살았고 水草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사냥과 柳器를 만들어 파는 것을 업으로 삼은 천민집단)을 자신의 애기(愛妓)였던 자운선에게 소속시켜 공물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이에 자운선은 양수척의 명단을 호적에 올린 후 끊임없이 공물을 징발하였다고 한다. 최충헌(崔忠獻)이 이지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자 자운선을 첩(妾)으로 삼아 총애하였다. 이후 자운선은 더욱 심하게 사람 수를 따져 공물을 징수하였다. 이로 인하여 양수척들이 크게 원망하였으며, 거란유종(契..

[조선 후기 - 순조의 외숙]박종경(朴宗慶)

박종경(朴宗慶, 1765년 ~ 1817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회(汝會), 호는 돈암(敦巖)이다. 본관은 반남. 호는 돈암. 아버지는 판서 준원이고, 어머니는 원경유의 딸이다. 누이가 순조의 생모인 수빈(綬嬪)이다. 1790년(정조 14) 진사시에 합격한 뒤 음보로 등용되어 동몽교관·순안현령·충훈부도사를 지냈다. 1800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라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이듬해 홍문관부수찬으로 기용되었다. 그해 식년문과에 급제해 교리로 승진했다. 그뒤 홍문관제학·승지·참찬 등을 거쳐 판서를 지냈다. 1811년 평안도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훈련대장으로 있으면서 군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진정시키기에 힘썼다. 1812년에는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왕의 외숙이라고 위복을 누리며 뇌..

[조선 전기 - 미투 사건을 일으키고도 승승장구한 인물]최한경[崔漢卿]

조선전기 첨지중추부사, 이조참의,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언보(彦甫). 최계운(崔繼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첨로(崔添老)이고, 아버지는 최문손(崔文孫)이며, 어머니는 이은(李垠)의 딸이다. 장인은 조육(趙育)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4년(세종 26)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출사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郞)을 거쳐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이 되고, 1454년(단종 2) 직강으로서 기주관(記注官)이 되어 『세종실록』의 수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4월 호조정랑(戶曹正郞) 재직 중에 몰수한 최습(崔濕)의 가산을 월권으로 나눠 지급한 일로 자자(刺字)한 후 장리안(藏吏案)에 올리고 태장(笞杖)에 처해야 한다고 논죄되었으나 집정인..

[고려 말- 처제를 강간해 아이를 낳게한 패륜아]이승로[李承老 ]

본관은 합천(陜川)이다. 충목왕 때 밀직사사(密直司使)로서 과거를 관장하였고, 뇌물사건에 관련되어 영해의 수령으로 좌천되었다.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죽자 우대언 윤택(尹澤) 등과 함께 공민왕을 추대하는 글을 원나라 중서성에 올려, 충정왕의 미움을 받고 다음해 선주로 좌천되었다. 1354년(공민왕 3) 지밀직사사에 이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승진, 사소한 사건으로 한때 태안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강양백(江陽伯)에 봉해지고 1360년 축성감독사로서 수안·곡주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일찍이, 처제와 간통(강간)하여 아들을 낳은 사실이 발각되어 중모(中牟: 경상북도 상주)에 유배되고 적몰당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채널

[조선 후기- 29년 긴 유배생활보다 순애보로 더 유명한 인물]조정철 (趙貞喆)

조정철(趙貞喆)1751년(영조 27) ~ 1831년(순조 31) 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 조영순(趙榮順)이며,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부인은 홍지해(洪趾海)의 딸이다. [활동사항]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별검(別檢)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강용휘(姜龍輝) 등이 정조를 시해하고 그의 이복동생을 옹립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죄가 참형에 해당되었으나 우의정 조태채의 증손임이 참작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781년(정조 5) 할아버지 때부터 원수지간이던 소..

[고려말 - 흥왕사의 변을 일으킨 간신]김용(金鏞)

? ~1363(공민왕 2년)1363년에 흥왕사의 변을 일으킨 주범 고려후기 순군만호, 찬성사, 순군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안성(安城). 공민왕이 원자(元子)로서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할 때, 시종한 공로로 여러 차례 승진해 대호군이 되었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응양군상호군이 되었으며, 원나라로부터 행성원외랑(行省員外郎)의 관직을 받았다. 권신 조일신(趙日新)과는 반목했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 일등에 봉해졌고,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된 뒤 수충분의공신(輸忠奮義功臣)의 호를 받았다. 조일신의 난 때, 궁중에서 숙직하면서도 적을 막지 않고 홀로 무사하여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354년 원나라의 요청으로 장사성(張士誠..

[명나라 선덕제의 후궁]공신부인 한씨(恭愼夫人 韓氏)

공신부인 한씨(恭愼夫人 韓氏, 1410년 음력 4월 9일 ~ 1483년 음력 5월 18일)는 조선 출신의 명나라 후궁이다. 조선에서 명나라에 바친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다. 한확의 누이이며 소혜왕후(인수대비)의 고모이다. 이름은 계란(桂蘭)이다. 생애 1410년(태종 10년) 음력 4월 9일 청주 한씨 한영정(韓永矴)과 그 부인 김씨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1] 공신부인의 어머니 김씨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승녕부사(承寧府事)를 지내고 양소공(襄昭公)의 시호를 받은 의성 김씨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한편 한확은 공신부인의 오빠이며, 한확의 딸로 의경세자(덕종)의 부인이자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는 공신부인의 친조카이다. 또 공신부인의 친언니도 일찍이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져 영락제의 후궁..

[백제 -의자왕을 체포하여 당나라에 투항했다고 추정되는 인물]예식(진)[禰寔(進)]

예식진(禰寔進, 615년 ~ 672년)은 남부여 의자왕 때의 대장군이자 당나라의 '좌위위대장군(左威衞大將軍)'이다. 2006년에 그의 묘지명이 낙양의 시장에 나타났으며, 2007년 길림성의 격월간 역사잡지인 에 기존의 다른 남부여 유민들의 묘지명과 함께 처음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더불어 예식진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개요 처음 묘지석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이 시안(西安, 당나라 시기 수도)서 발굴되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발굴 시기와 지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묘지석은 가로 세로가 각각 57cm에 두께가 15cm인 개석(蓋石)과, 가로 세로가 각각 58.5cm에 두께 13cm인 지석(志石)으로 나뉘어 있는데, 겉면에는 '대당고좌위위대장군예식진묘지지명'이라는 제액이 4행으로 새겨져..

[조선 - 연산군과 아내가 간통하는 걸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문신]윤순 (尹珣)

윤순(尹珣) [? ~ 1522(중종 17)]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 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옥(伯玉), 호는 임심(臨深). 대사헌 윤번(尹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파천군(坡川君) 윤사흔(尹士昕)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윤계겸(尹繼謙)이며, 어머니는 김진손(金震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사과(司果)로 재직하던 중,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 한자급 올려받았고, 지중추부사로 1507년(중종 2) 주문사(奏聞使) 노공필(盧公弼)과 함께 명나라에 가 승습(承襲: 작위나 보위를 이어받음.) 주청(奏請: 아뢰어 요구함.)의 ..

[일제강점기 기녀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정칠성(丁七星)

정칠성 (丁七星, 1897년 ~ 1958년?)은 대한제국의 기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 운동가이다.[상세 해설 보기: ko.wikipedia.org/wiki/%EC%A0%95%EC%B9%A0%EC%84%B1 대구 출신으로 이명은 정금죽(丁錦竹)이다. 상경 후 남도 기생들이 중심이 된 한남권번(漢南券番)의 기생이 되었다. 1922년 일본 동경(東京)의 영어강습소에서 수학하고, 1923년 귀국한 뒤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했다. 10월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4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결성에 참여해 발기인·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경북 도 단위 사상단체인 사합동맹(四合同盟) 결성에 참여하였다.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