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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연산군과 아내가 간통하는 걸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문신]윤순 (尹珣)

윤순(尹珣) [? ~ 1522(중종 17)]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 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옥(伯玉), 호는 임심(臨深). 대사헌 윤번(尹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파천군(坡川君) 윤사흔(尹士昕)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윤계겸(尹繼謙)이며, 어머니는 김진손(金震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사과(司果)로 재직하던 중,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 한자급 올려받았고, 지중추부사로 1507년(중종 2) 주문사(奏聞使) 노공필(盧公弼)과 함께 명나라에 가 승습(承襲: 작위나 보위를 이어받음.) 주청(奏請: 아뢰어 요구함.)의 ..

[일제강점기 기녀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정칠성(丁七星)

정칠성 (丁七星, 1897년 ~ 1958년?)은 대한제국의 기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 운동가이다.[상세 해설 보기: ko.wikipedia.org/wiki/%EC%A0%95%EC%B9%A0%EC%84%B1 대구 출신으로 이명은 정금죽(丁錦竹)이다. 상경 후 남도 기생들이 중심이 된 한남권번(漢南券番)의 기생이 되었다. 1922년 일본 동경(東京)의 영어강습소에서 수학하고, 1923년 귀국한 뒤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했다. 10월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4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결성에 참여해 발기인·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경북 도 단위 사상단체인 사합동맹(四合同盟) 결성에 참여하였다. 같은 ..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항일 운동가]이관수(李觀洙)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관수(李觀洙)[1925~1951]는 1925년 10월 22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괘법리 827-5번지[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266-15번지]에서 태어났다. 1944년 결성된 항일운동 단체 순국당(殉國黨)의 당수인 차병곤(車炳坤)과 내외종간이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 동래중학교에서 김병현(金柄鉉)·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일규를 중심으로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1941년 겨울에 독서회를 강화하여 항일 학생 조직인 조선청년독립당을 결성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당은 1942년 봄에 남기명(南基明)의 집에서 2차 회합을 갖고 강령을 정하는 한편 항일 투쟁의 ..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항일 노동운동가]김형선( 金炯善)

김형선( 金炯善). 1904~1950) 개설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 이명은 김원식(金元植), 최명환(崔命煥). 어머니가 민족 사상이 격렬해 자식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고 한다. 여동생 김명시(金命時)와 남동생 김형윤(金炯潤)도 당대의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열 네 살에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공립간이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자금 부족으로 1학년 1학기만을 마치고 상점 점원 또는 부두 노동에 종사했다. 마산창고회사가 설립되자 사무원(서기)으로 5년간 근무하다가 직원 정리로 말미암아 실직했다.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마산청년회와 마산해륙운수조합 등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3년 8월에 결성된 마산의 사회주의 사상단체 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항일 여성운동가]이순금(李順今)

이순금(1912년~?)은 한국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공산주의 운동가이다. 월북하였다. 생애[편집] 경상남도 울산 출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1946년 정판사(精版社) 위조지폐 사건으로 미군정에 검거되어 1950년 6월 대전형무소에서 복역중 처형당한 이관술(李觀述)의 여동생이다. 이관술과 이순금은 어머니가 달랐다. 아버지 이종락은 울산군 범서면 입암리의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장자였다. 일찍 결혼한 첫 아내가 이관술을 낳고 죽자 재혼해 두 자녀를 두었는데 다시 주막집 주모와의 사이에 태어난 게 이순금이다. 술집 주모의 이름은 김남이로, 딸 하나를 가진 과부였다.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서울실천(實踐)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년 뒤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이효정, ..

[일제강점기- 공산주의계열 항일 독립운동가 겸 국문학자]김태준(金台俊)

김태준(金台俊, 1905년 ~ 1949년)은 일제강점기때 활동한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다. 한문학자이자 국문학자이다. 한국 문학사의 기초를 닦은 연구자였다. 일제강점기말 경성콤그룹에서 활동했다. 호는 '천태산인'(天台山人). 한국 최초로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조선소설사〉와 〈조선한문학사〉를 썼다. 생애 평안북도 운산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국문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20대이던 1931년 ‘조선소설사’와 ‘조선한문학사’를 발표한 그는 경성제대 최초의 조선인 강사로 문학을 가르쳤고 1940년 여름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발굴했다. 김태준은 제자 이용준에게서 “우리 집안에 훈민정음이 가보로 내려오고 있다”(엄밀히 자신의 집안이 아니고 자신의 처가인 광산김씨 종가,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

[일제 강점기 항일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박진홍(朴鎭洪)

박진홍(朴鎭洪, 1914~ ? )는 일제하 1930년대 노동운동,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 사회정책 연구위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다. 생애 박진홍은 함경도 명천 출신이다. 가난을 못이겨 고향살림을 접은 부모를 좇아 서울로 온 것은 1928년이니, 15살 때였다. 천도교에서 세운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는데 입주 가정교사로 학자금을 대었다. 동덕여고는 3·1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학교’다. 작가를 꿈꾸는 문학소녀였다. 공부도 잘했다. 박진홍은 줄곧 전교 1등을 해 ‘개교 이래 최고의 수재’로 불렸다'. 동덕여고 동기생이자 친구였던 이효정과 함께 사회주의자로 항일의 걸을 걸었다. 경성 관훈동, 지금의 안국동 교차로 남..

[조선 중기 - 주인의 원수를 살해한 충비]갑이(甲伊)

[야사] 충비 갑이는 조선 중기 문신 류관의 노비이다. 류관이 을사사화 때 처형 당하고 본인은 병조판서 정순붕의 노비로 들어가게 되자 기회를 잡아 정순붕이 역질에 걸려 죽게 만들었다. 안산역사] 충비(忠婢) 갑이(甲伊)의 무덤 2010.06.22 [안산역사] 충비(忠婢) 갑이(甲伊)의 무덤 [가는길] 안산2교(안산 IC입구사거리)에서 면허시험장 방향으로 직진하다 보면 공원묘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300m정도...[blog.daum.net/solhouguli/51] 류관(柳灌, 1484년 ~ 1545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관지(灌之), 호는 송암(松庵). 인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성품이 곧고 강직하여, 이조판서로 있을 때 병조판서 이기의 전횡을 탄핵했는데, 이기와 대립을 했고..

[한국전쟁(6.25 전쟁) 시 대전 교도소 재소자 및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인물]심용현

심용현(1918년 8월 30일 ~ 1986년 7월 20일)은 군인이며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6.25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 및 대전·충남지역 보도연맹원 3200명을 즉결처형한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생애1918년 8월 30일 생으로 서울 용산구 한강로가 주소지였다. 그는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5년제)를 나온 후 육사 8기로 1949년 2월 입대해 3개월의 교육을 받고, 1949년 5월 23일 소위로 임관했다. 그가 헌병 주특기(9110)를 받고, 대전에 있던 2사단 헌병대에 배치를 받은 것은 1949년 7월 7일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 5월 1일 중위로 진급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복역수, 예비검속자, 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1950년 7월..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항일운동가]이관술(李觀述)

이관술 (李觀述) 동덕여자고등학교 교사 시절 이관술 1900년 4월 26일(1900-04-26) 대한제국 강원도 울도군 울릉도 (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도) 1950년 7월 3일(1950-07-03) (50세) 골령골 남성 대한제국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교육자 이관술(李觀述, 1900년 4월 26일[1] - 1950년 7월 3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노동운동가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한 노동운동가이며, 해방 직후에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의 간부였다. 박헌영의 최측근이기도 했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1900년 울릉도 출신이고, 울산에서 성장 후, 일본에 유학하여,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 이종락은 울산군 범서면 입암리의 유서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