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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노동운동가] 강주룡[姜周龍]

강주룡[姜周龍] 1901년(고종 38) ~1931년 8월 13일 개설 평양 소재 평원(平元)고무공장의 여공으로 1931년 동맹파업을 벌였다. 을밀대(乙密台) 고공투쟁으로 여론을 환기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단식 투쟁 끝에 30세에 요절하였다. 생애 190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강주룡은 14세 때 ..

[동학혁명 관련- 동학군과 내통한 혐의로 초토사 홍계훈에게 참형당한 인물]김시풍[金始豊]

김시풍[金始豊](? ~1894, 고종 31년): 개항기 전주감영영장을 역임한 무신. 목차접기 생애 및 활동사항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북도 전주 출신. 전주감영(全州監營)의 장교로 일찍이 동학교도 탄압에 공을 세웠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60세 가량의 기골이 장대한 노인으로 전주감영의 영장(營將)으로 있었다.동학농민군을 막아 내라는 임무를 띠고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에 임명된 홍계훈(洪啓薰)이 5월 11일 전주성에 입성하여, 동학농민군의 승승장구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관군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하여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과 의논, 전주성내에 동학농민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사람 60여 명을 체포하였다.이때 전주감영 수교(首校) 정석희(鄭錫禧) 등과 같이 체포되었다. 같은 달 15..

[동학 혁명 시기 대원군과 손자 이준용에게 살해당한 친일 개화파]김학우(金鶴羽)

김학우(金鶴羽, 1862년 ~ 1894년 10월 3일)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고(子皐), 함경북도 경흥의 토반 출신.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김인승(金麟昇)을 따라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뒤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6년에 일본에 건너가 약 1년반 동안 동경에서 우치무라[內村直義]의 무급(無給) 어학교사 자격으로 머무른 일이 있었다. 또 만주의 길림(吉林)과 중국 북경에도 드나든 적이 있어 비교적 해외사정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일본어·중국어에 능통하였다.1878년과 1880년 두 차례에 걸쳐 변경 사무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되었던 함경도 경성(鏡城) 출신 관리 장박(張博)의 주선으로 서울에서 정계에 진출하였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기기국..

[동학 혁명 당시 전라감사로 동학군에 협조 , 일제 강점기엔 작위를 받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자]김학진[金鶴鎭 ]

김학진 [金鶴鎭]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천(聖天), 호는 후몽(後夢). 병자호란 때 청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예조 판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병교(金炳喬)이다. 1887년(고종 24) 이조 참의, 한성부 소윤,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1892년(고종 29) 외무아문 협판, 1893년(고종 30) 이조 참판, 1894년(고종 31) 승정원 도승지, 형조 판서와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전라도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기하자 김문현(金文鉉)의 뒤를 이어 전라 감사로 내려갔다. 1894년 4월 27일~5월 8일 관군과 동학군이 전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전주 화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김학진은 동학 농민군 대표인 전봉준(全琫準)과 전주 회담을..

[사도세자 구명 상소를 올렸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당해 죽은 문신] 박치륭[朴致隆]

박치륭[朴致隆]1692년(숙종 18) ~1766년(영조 42)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승(汝升), 호는 유곡(楡谷). 할아버지는 박두익(朴斗益)이고, 아버지는 박태흥(朴泰興)이며, 어머니는 홍만겸(洪萬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6년(영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740년에 사헌부지평..

[사도세자를 보호하려다가 영조에게 미움을 사서 유배당했던 문신] 윤숙(尹塾)

윤숙 (尹塾)1734(영조 10)~1797(정조 21) 본관은 파평. 자는 여수.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으나, 다음해 사도세자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영의정 신만과 좌의정 홍봉한 등을 비판하다가 영조의 미움을 사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

[사도세자를 보호하려다가 사형당한 인물]조재호(趙載浩)

조재호 영정, 〈한국명인초상대감〉 조재호(趙載浩, 1702년 , 숙종 28~ 1762년, 영조 38)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효장세자의 비 현빈 조씨의 친오빠이며, 정조의 양 외삼촌이다. 당색은 소론으로 좌의정과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본관은 풍양으로,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아들이자 풍원부원군 조현명의 조카이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조동호의 7대 방조이다. 생애당색은 소론이나 당론이 해결된 다음에 관직에 오르겠다며 번번히 사직소를 제출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홍봉한, 홍인한 등 처족과 정후겸, 홍계희, 김한구 가문 등 노론계 외척들의 감시를 받던 사도세자는 그에게 비밀리에 도움을 청했다가, 이를 빌미로 영조에 의해 위리안치되었다가 사형당했다.[위키백과]-----------------..

[일제 강점기 밀정]김달하(金達河)

김달하 (金達河) 평북 의주 출신 일제의 고급 밀정이다. 1925년 3월30일 박용만의 귀순공작을 시도한 혐의로 다물단과 의열단에 의해 피살됐다. 김달하는 외아문(통리아문) 주사 출신으로 1906년 관서지방 출신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서우(西友)학회가 조직되자 참여했다.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서북학회 총무를 지냈는데, 안창호, 이갑, 박은식, 이동휘 등이 주도한 서북학회는 기존의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해 창설했다. 회원은 서북 사람으로 국권 회복을 원하는 2300~2500명이 참여했다.[1]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1913년 조선총독부 밀정이 돼 북경에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는 초기 중화민국 총리를 지내기도 한 북양군벌의 거두 단기서의 비서로 있으면서 또 다른 고급 밀정 정운복(..

[병자호란 때 처를 비롯 5명이 죽고 아들 세 명이 납치되는 비극을 겪은 문신]이성구[李聖求]

이성구[李聖求] 출생 1584(선조 17) 사망1644(인조 22) 국적 조선, 한국 목차펼치기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汾沙). 아버지는 〈지봉유설 芝峯類說〉을 지은 수광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었고, 1608년(광해군 즉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광해군 때 검열·감찰·예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