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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를 보호하려다가 영조에게 미움을 사서 유배당했던 문신] 윤숙(尹塾)

Bawoo 2019. 12. 25. 20:28


윤숙 (尹塾)1734(영조 10)~1797(정조 21)



본관은 파평. 자는 여수.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으나, 다음해 사도세자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영의정 신만과 좌의정 홍봉한 등을 비판하다가 영조의 미움을 사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이듬해 병조정랑·교리를 지냈다. 1783년(정조 7) 대사간을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김종수의 모함을 받아 황해병사로 좌천되었다. 그뒤 판중추부사에 올랐으며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아내에게 바치기 위해 국문으로 쓴 〈정경부인이씨제문〉이 전한다. 시호는 충숙이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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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수(汝受).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 윤번(尹璠)의 후손이며, 윤집성(尹集成)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식(尹植)이고, 아버지는 윤명훈(尹命勳)이며, 어머니는 남덕훈(南德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에 동궁이 역모를 꾀한다는 나경언(羅景彦)의 상변(上變)으로 영조가 장헌세자(莊獻世子: 思悼世子)를 친국하여 상황이 급박하게 되자, 임덕제(任德濟) 등과 함께 장헌세자를 구명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영의정 신만(申晩) 등 대신들이 힘써 막지 않는다고 책망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강진으로 유배당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이듬해 병조정랑에 제배되고, 교리에 특제되었다. 이어 계속 승진하여 1783년(정조 7) 대사간을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김종수(金鍾秀)의 시기를 받아 황해병사로 나갔다가 발병하여 8년간 실명하였다. 그 뒤 판중추부사로 올랐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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