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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항일 운동가]이관수(李觀洙)

Bawoo 2020. 7. 9. 20:55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관수(李觀洙)[1925~1951]는 1925년 10월 22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괘법리 827-5번지[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266-15번지]에서 태어났다. 1944년 결성된 항일운동 단체 순국당(殉國黨)의 당수인 차병곤(車炳坤)과 내외종간이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 동래중학교에서 김병현(金柄鉉)·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일규를 중심으로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1941년 겨울에 독서회를 강화하여 항일 학생 조직인 조선청년독립당을 결성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당은 1942년 봄에 남기명(南基明)의 집에서 2차 회합을 갖고 강령을 정하는 한편 항일 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 준비에 착수하였으며, 이때 이관수도 참가하였다. 이관수는 행동반으로서 첩보 수집, 간첩 테러 등의 임무를 맡았다. 그 후 당원들은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거듭하면서 행동 방략을 협의하다가 1943년 졸업과 동시에 실제 행동을 개시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당원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암호를 사용하여 연락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당원들은 1944년 8월 1일에 양중모의 집에 모여 그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한편 군사 기밀 탐지, 일본군 탄약고 폭파, 군용 열차가 통과할 때 구포 다리 폭파 계획 등을 세웠다. 그리고 거사가 실패할 경우에는 일본군에 입대한 후 연합군 진영으로 탈출하여 중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대비책도 세워 놓았다.

한편 조선청년독립당은 항일 결사 자일회(紫一會), 순국당 등과도 연계하면서 항일 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하려 하였다. 특히 순국당은 1944년 5월 1일 결성된 때부터 이관수가 조직을 지도하였기 때문에 행동 내용, 조직 등이 조선청년독립당과 거의 같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청년독립당의 세포당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1944년 7월에 순국당의 조직이 일본 경찰에 탄로 나면서,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조선청년독립당의 조직이 발각되고 말았다. 이관수는 8월 8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는 동래중학 조선청년독립당 사건을 매우 엄중하게 여겨, 가족 면회도 금지한 채 조사를 하였다. 이관수는 1년간 검찰에 계류된 채 구류되어 있었으나 구류 기간이 만기된 1945년 8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해방을 맞아 8월 16일 출옥하였다. 1951년 12월 25일 사망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평산 저수지 옆에 이관수 지사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987년 9월 5일에 이관수 지사 묘비 제막식이 개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동래고등학교 100년사』(동래고등학교 동창회, 2002)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인터뷰(구술자 광복회 부산지부장 박정오(순국당 부당수로 활동), 2011. 7. 8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정보-책:철도원 삼대-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6.5.

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꿰뚫는 『철도원 삼대』. 이 작품은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