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세월: 동태탕

Bawoo 2022. 1. 17. 12:35

아내가 동태탕을 끓였다. 며칠전 방송에서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하길래 그걸 보고 생대구탕 먹고 싶다고 했더니. " 지금 먹고있는 꼬리 곰탕 다 먹으면 냉동실에 동태 있으니 그거 우선 끓여먹읍시다"하더니 그게 바로 오늘이었나보다. 동태탕은 맛이 좋았다. 음식솜씨 좋은 아내가 끓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엔 재료가 더 들어간 것 같았다. 특별히 새우가 눈에 뜨였다. 국물맛을 더 진하게 해준다는 아내의 설명.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태의 큼직큼직한 살을 먹을 때는 아무 문제없이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는데 느닷없이 잔가시가 씹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전날 꼬리곰탕 먹으면서 뼈를 잘못 씹어 앞니 하나가 아직도 시큰거리는 참이라 겁이 덜컥났다. 이는 윗니 몇 개 덧씌운 정도라 치과의사도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면서 감탄(?)했는데 말이다. 몸이 늙어가는데 이라고 무사할 리가 있겠는가. 한창 나이일 때야 이까짓 작은 소꼬리뼈 한 번 씹었다고 이가 상할 걱정을 할 리 있었겠는가. 이젠 나이가 나이인지라 겁이 덜컥 난 것이다. 주변 내 나이 또래인 사람들 중에 임플란트 한두 개 안 한 사람이 없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에 이가 부러졌다면? 앞니이니 틀림없이 뽑고 새로 해넣자고 했을 것 아닌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아직도 이가 시큰거리긴 하지만 일단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동태 잔가시다. 잘 못 발라내면 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잇몸 아니면 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 잔가시를 힘들게 골라내며 아내의 눈치를 쓰윽 살폈다. 그러다가 "어제 잘못해서 소꼬리뼈를 깨물었는데 아직도 이가 시큰거린다고, 이젠 동태 잔가시가 신경쓰인다"고 그랬더니 아내의 안색이 확 변하면서 조심해서 잘 골라내란다. 아차하면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늙은 몸으로 병원 왔다갔다 하는 일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가 말이다. 몸이 더 늙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전까진 피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 아니겠는가.

 

아내는 "이젠 가시나 뼈가 있는 재료는 쓰지 말아야 겠네."란다.

사실 내가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속이 부실해서 맵거나 짜거나 단단하거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몸에 안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물이 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젠 뼈나 가시가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도 조심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매정한 세월이란 놈 탓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소꼬리는 어쩔 수 없으니 굳이 안 먹으면 될 테고, 생선은 가시를 다 발라내서 파는 것도 있으니까

그걸 사 먹으면 돼."

"응? 그렇게도 만들어져 나와?"

" 그럼. 가격이 좀 비싸서 그렇긴 한데 가시 잘 못 씹어 병원 신세 지는 것만 하겠우? 생선을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가시 없는 종류 위주로 먹다가 가끔 생각날 때 사 먹으면 돼.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으니 세월에 순응해서 살아야지 뭐." 이러면서 아내는 입가에 쓰디쓴 웃음을 머금는다.

"망할 놈의 세월 어디 가서 콱 뒈져버려라"는 표정으로.^*^ (2022. 0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