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nsky, Piano Trio No.1 in D minor
아렌스키 피아노 3중주 1번
Anton Arensky
1861-1906
Anne Akiko Meyers, violin
Bion Tsang, cello
Anton Nel, piano
2012.10.20
아렌스키는 이름이 그다지 귀에 익은 작곡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들어보면 그가, 동시대를 산 드보르자크에 못지않은 감성의 작곡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악장 ‘엘레지’를 들어보라. 그 절절하게 아름다운 선율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이며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의 스승
아렌스키의 아버지는 의사이면서 첼리스트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에게 처음 음악을 가르친 선생은 어머니였다. 아렌스키는 9살에 이미 몇몇 가곡과 피아노 소품들을 작곡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1879년 18살이 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다. 음악원에서 그의 작곡 선생은 림스키코르사코프였고 대위법과 푸가 선생은 요한센이었는데, 그를 지도한 선생들은 아렌스키의 특별한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학생들 가운데 단연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21살 되던 1882년에 금메달을 받고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아렌스키는 곧바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가 음악원에서 가르친 과목은 화성학과 대위법이었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이 이 클래스의 학생이었다. 차이콥스키와 타네예프 등과 교류하면서 지냈지만 그의 경력은 그리 길지 못했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도박에 빠져 있던 아렌스키는 건강을 해치고 마흔다섯 한창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아렌스키는 100곡이 넘는 피아노곡을 포함하여 무려 250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썼다.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양자’라고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차이콥스키의 창조적 능력이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렌스키가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아 조명되기는 했어도, 그의 작품을 통틀어 피아노 3중주 1번이 가장 유명할 뿐 그 외의 작품은 거의 잊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남긴 피아노 3중주 D단조 Op.32 한 곡이 피아노 3중주 영역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렌스키는 피아노 3중주 1번 Op.32에서 러시아의 서정과 비가를 절절하게 읊었다.
비록 아렌스키가 서양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이 작품 하나로 아렌스키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유명 작곡가들의 이름과 함께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이 작품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다. 아렌스키의 피아노 3중주 1번은 얼핏 들으면 그 분위기가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 1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성이 D단조로 멘델스존의 곡과 같기는 하지만 아렌스키의 독창적인 기법이 잘 드러나 있고, 구성이 대단히 튼튼하며 패시지 곳곳에서는 아렌스키 특유의 서정적 선율이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첼리스트 다비도프를 추모하며 쓴 엘레지 풍의 실내악곡
피아노 3중주 1번은 아렌스키가, 1889년에 세상을 떠난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원장을 역임했던 카를 다비도프(Karl Davidov, 1838-1889. 차이콥스키는 다비도프를 ‘첼로의 차르’라고 불렀다)를 추모하며 1894년에 쓴 작품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대음악가가 타계하면 그를 추모하여 친구나 후배 음악가들이 피아노 3중주를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죽자 ‘한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를 붙여 피아노 3중주 A단조를 썼고,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애도하며 엘레지 풍의 피아노 3중주 2번을 썼다.
아렌스키의 피아노 3중주 1번은 특유의 러시아 서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곡으로서의 치밀한 구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피아니스트로서도 탁월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던 작곡가의 영향으로 피아노 파트는 도처에 기교적인 악구와 리듬으로 빛을 발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후배인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Borodin Trio - Arensky, Piano Trio No.1 Op.32
Rostislav Dubinsky violin
Yuli Turovsky, cello
Luba Edlina, piano
Essex Layer Marney Church
1986.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