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쌍(王雙, ? ~ 228년)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이다.
행적
223년, 유비(劉備)와 육손(陸遜)이 싸우는 것을 틈타 위나라는 조인(曹仁)에게 오나라를 치게 했으나 주환(朱桓)에게 패하였다. 이때 왕쌍은 오군에게 사로잡혀 무창(武昌)으로 보내졌는데, 어떻게 위나라로 돌아왔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228년, 2차 북벌에 나섰던 제갈량(諸葛亮)이 진창을 포위했으나, 학소(郝昭)가 굳게 지켰기 때문에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때 왕쌍은 촉군을 추격했으나, 제갈량에게 패하여 전사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왕쌍
삼국지연의에서는 왕쌍이 적도(狄道) 출신이며, 자가 자전(子全)인 것으로 나와 있다. 제갈량을 막기 위해 출정하는 조진(曹眞)이 조예(曹叡)에게 천거하여 촉군과 싸우게 되었다. 키가 아홉 자에 달하고 60근이 넘는 칼과 유성추(流星鎚)를 잘 다루는 것으로 나온다. 조예는 왕쌍을 믿음직하게 여기고 호위장군(虎威將軍)에 임명했다.
진창에서 고전하는 촉군을 공격하여 사웅(謝雄)과 공기(龔起)를 죽이고, 장억(張嶷)에게 부상을 입혀 촉군의 사기를 꺾었다. 때를 놓쳤다고 판단한 제갈량은 조진을 격파한 후 촉으로 퇴각했다. 왕쌍은 조진의 명을 받자마자 촉군을 뒤쫓다가 위연(魏延)에게 죽임을 당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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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보기]
왕쌍 - 나무위키 2020.08.17.
장억도 부상을 입힌다.[2] 이에 촉군은 사기가 꺾이게 되면서 결국 제갈량은 퇴각하지만 그 뒤를 쫓던 왕쌍은 복병에 걸려 위연에게 죽고 만다. 특이한 이름에다가 엄청난 포스로 등장해 대단한 활약을 하고 몇...
[정보] 책 - 결국 이기는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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