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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가제 명령을 거부한 항공대장]시가 요시오 [志賀淑雄]

Bawoo 2020. 12. 20. 22:04

1938, 13 air Group, Nanjing Base

 

시가 요시오 (志賀淑雄)

 1914, 도쿄시~2005. 11. 25.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 당시의 일본 해군 파일럿이자 비행대 지휘관이다. 파일럿으로서는 활약상이 크게 알려져지 않은 비교적 마이너한 인물이지만, 종전 당시 미군 사이에서 가장 유명했던 일본의 파일럿이었으며 특히 당시 동료 파일럿들의 증언상으로는 지휘관으로서 대단히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겐다 미노루와 사이가 돈독했던지라 겐다 미노루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중에 '그 시가 요시오가 믿고 따랐던 사령관이다'라는 것이 있을 정도이다.

자신의 격추수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단독격추수는 6기입니다. 그리고 협력격추수는 그보다 더 많습니다. 어느 정도 공격해놓고나서 아직 격추기록이 없는 신참들에게 격추시키게 하거든요'라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답. 실제로도 '일본 해군에는 에이스 파일럿이라는 칭호가 없다. 모두 공동전과로 치는 것이 전통이다.'라며 특정 파일럿이 영웅시되는 풍조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적어도 공식석상에서 그를 비판한 것은 그와 완전히 반대노선의 인물이자 잠시나마 그의 직속부하였던 사카이 사부로가 유일하다. 이유는 '지휘관으로서는 너무 물러터졌다'라고 한다. 반면 시가 요시오는 사카이 사부로가 자신의 부하로 있었을 당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다녔다는 모양이다.

파일럿로서의 가장 큰 전과는 준요의 비행대장으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공격대를 이끌고 엔터프라이즈에 손상을 입히고 호넷을 격침에 이르게 한 일이다. 이후 과달카날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그의 안부를 걱정한 동기가 그를 신형 기체 개발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추천하고 이것이 승인되면서 시덴렛푸의 기체개발에 참가하게 된다. 기체개발이 끝나고서 시덴을 주력함재기로 한 시나노의 비행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시나노가 완성전 격침되면서 무산. 이후 343 해군항공대의 비행대장으로 임명되며 파일럿으로보다는 지휘관의 길을 걷게 된다. 시가 자신은 직접 출격하여 부하들과 함께 싸우길 원했으나, 부하와 상관, 동료들의 설득으로 지휘와 지원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는 모양. 한마디로 그의 모든 주변인들이 그가 전장에 나가 죽길 원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부각되는 일화는 343 해군항공대에 비행대장으로 있었을 당시 상부에서 떨어진 카미카제 명령을 거부한 에피소드다. 사령부로부터 카미카제 명령을 받은 343 항공대의 사령관 겐다 미노루가 시가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제가 선두로 출격하죠. 병학교 출신자도 전부 출격시키겠습니다. 예비사관은 출격시켜선 안되겠죠. 겐다 사령관님은 마지막에 와주십시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명령을 내린 사령부의 참모가 저와 함께 선두에서 출격한다면 343 항공대는 하겠습니다"라고 대답. 이 말을 들은 겐다 미노루는 '당연한 소리다'라고 맞장구[1]. 그리고 겐다 미노루가 이 말을 사령부에 전하자 이후 단 한번도 343 항공대에 카미카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완강한 거부는 아니지만 군인으로서의 패기와 사령관에 대한 예우와 부하들을 생각하는 마음씀씀이가 모두 묻어나는 격식있는 거부라는 평. 이후로도 "자폭공격에는 절대로 반대다", "지휘관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너희들 죽으러 가라면서 자기들은 죽지 않겠다는 것은 명령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등 카미카제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After promotion to Lieutenant Commander, Shiga was assigned as air officer to the 343rd Air Group which was engaged in homeland defence in Japan, based at Matsuyama Air Base, in December 1944. He is famous for his strong objection against the tactic of suicide attack (Kamikaze) and saved many lives of Japanese young pilots.]

이후 일본항복을 선언하고 상관들이 모두 중앙사령부로 소집되자 비행대에서 남아있는 부하들을 이끌고 마지막 단체 연습비행을 행한 뒤 공식적인 군인으로서의 활동을 종료. 이후 겐다 미노루의 추천을 받아 황실 경호작전[2]에 참가. 이후 쇼와 덴노의 장례에도 구 일본 해군 대표 중 한명으로 참석. 구 일본 해군 파일럿들의 모임인 '제로센 탑승원회'의 회장으로 지내기도 했다.

전후 많은 동료들이 자위대로 복귀하는 가운데 그는 경찰에게 방탄복이나 곤봉 등을 납품하는 공장을 경영하며 생활한다. 그에게 어째서 복귀하지 않느냐고 묻자 '수많은 부하들을 전사시킨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명복을 비는 것과 살아남은 전우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입니다. 전투중 적기에게 꼬리를 잡혀서 드디어 죽는건가 싶었을 때 부하가 사이에 끼어들어 대신 맞아주고는 불에 타오르며 제게 경례를 하곤 떨어져갔습니다.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요.'라고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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