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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관련: 일본 본토 결전을 주장했으나 항복으로 결정나자 항목 문서에 서명하고 자결한 인물]아나미 고레치카(阿南 惟幾)

Bawoo 2021. 8. 27. 20:43

아나미 고레치카(일본어阿南 惟幾1887년 2월 21일1945년 8월 15일)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육군대신을 지냈다.

오이타현 다케타시 다마라이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 (18기, 1905년) 와 육군 장교의 출세 코스인 육군대학(1918년)을 졸업하였다. 이후 야전에 종사하다가, 1925년 주재무관으로 프랑스에 파견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야전과 행정직을 거쳤다. 1929년에는 궁정에 근무했는데, 이때 훗날 수상이 되는 스즈키 간타로 시종장 밑에서 시종무관을 지냈다.

1935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이후 1938년 잠시 사단장으로 중일전쟁에 참전하지만 1939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육군성에서 근무하였다. 1941년에는 다시 중국에 파견되어 제11군을 지휘했고, 후에 만주의 제2방면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1943년 대장으로 승진하고 1944년 일본으로 돌아와 육군 항공총감에 취임했다. 1945년 4월 스즈키 간타로 내각이 출범하자 육군대신으로 입각했다.

1945년 스즈키 간타로 수상은 포츠담 선언의 수용이 불가피함을 역설했지만, 아나미는 군부를 대변하여 무조건 항복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원폭 투하와 소련의 대일참전 이후에도, 그는 유리한 항복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본토결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에 동의하자, 그는 어쩔수 없이 이에 순응하였고, 군부에도 이에 따를 것을 명령했다. 8월 14일 천황의 서명이 담긴 항복문서에 그는 다른 각료들과 함께 서명하였고, 8월 15일 새벽에 "나는 천황폐하께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유언장을 쓰고 할복자살하였다. 그가 자살할 때 입었던 제복과 유언장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중이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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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그의 시신은 도쿄 다마 공동묘지(多磨霊園)[1]에 안장되었다. [[1] 도고 헤이하치로야마모토 이소로쿠 등 유명한 군인과 각료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2015년작 일본영화 일본 패망 하루전에서는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배우는 야쿠쇼 코지. 항복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존황주의자이기 때문에 천황의 결정에 복종하고,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강경파 장교들을 저지하고자 한다. 마지막에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할복자살하는데, 극중 묘사된 아나미는 상당히 미화된 모습이라는 비판이 있다. [나무위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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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일억 국민 쓰러져도.." 일본 군인이 지키고자 했던 것 [일본史람]

[일본史람] 천황제 유지 위해 항복 반대하고 쿠데타까지 벌인 사람들

몽강국이 붕괴되던 상황이 지도에 드러나있다. ⓒ wiki commons 취임 이래 지속적으로 결사항전을 주장해왔던 육군대신 아나미 레치(阿南惟幾) 대장은 당시의 어전회의에서 육군 측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련은 불신(일소불가침 조약을 배신하고 대일...[오마이뉴스 2021.08.14 다음뉴스]

 

[정보] 책-일본 내면 풍경:저자 유민호 | 살림 | 2014.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