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102개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사 -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의 한국 현대사 기행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장소 102곳을 골랐다. 가야 할 현장은 점점 늘어나 모두 150여 곳이 됐다. 찾아가기 쉽거나 벌써 유명한 곳은 솎아내고 짐을 꾸렸다. 우리 땅 곳곳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열린 박물관(open air museum)’이었다. 승리와 환희보다는 패배와 죽음에 연관된 현장이 많은 탓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이름 없이 스러진 민초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런 정도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1, 2》은 한국 현대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현대사 기행이다. 라틴아메리카, 중국, 쿠바,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에세이를 낸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이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틈을 타 한국을 탐사했다. 2020년 6월부터 1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 150여 곳을 찾아 3만 5000킬로미터를 달렸고, 길을 나서기 힘든 이들에게 보여주려 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길을 걷고, 산을 올랐다. 서울과 부산을 40번 넘게 왕복한 셈이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도와준 덕분에 잘 안 알려진 역사적 장소를 중심으로 오늘의 발자국을 남겼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무게를 두기보다는 사회과학 이론으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설명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할렛 카의 저 유명한 말을 실감한 여정이었다.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은 모두 두 권이다. 한 권으로 담을 수 없는 만큼 많은 곳에 발자국을 남겼고, 해야 할 이야기도 넘쳐흘렀다. 먼저 나온 1권은 48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백꽃이 아름다워 더 슬픈 제주에서 시작해 호남과 영남을 아우른다. 곧이어 여름에 나올 2권은 54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충청, 강원, 경기, 서울을 종횡으로 훑으며 뿌리의 소리를 들으러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102개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사
-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의 한국 현대사 기행
윤석열 정부가 새로 만든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은 ‘프락치 특채’ 의혹을 받는다. 군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마음을 바꿔 ‘녹화 사업’에 협력한 대가로 출세한 이가 ‘자유’와 ‘공정’을 지고의 가치로 내세운 ‘민주주의’ 정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민주화된 한국에서, 왜, 지금도 반복될까?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2》는 4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친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발로 쓴 한국 현대사 기행이다. 라틴아메리카, 중국, 쿠바,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에세이를 낸 ‘길 위의 정치학자’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틈을 타 한국을 탐사했다. 2020년 6월부터 1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 3만 5000킬로미터를 달렸고, 길 나서기 힘든 이들하고 함께하려 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강을 건너고, 길을 걷고, 산을 올랐다. 서울과 부산을 40번 넘게 왕복한 셈이었다. 중요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장소 102곳을 골랐다. 가야 할 현장은 점점 늘어나 150여 곳이 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감옥에 갇힌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도 발견해서 ‘한국 현대사 기행 가이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다.
찾아가기 쉽거나 벌써 유명한 곳은 솎아내고 짐을 꾸렸다. 우리 땅 곳곳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열린 박물관(open air museum)’이었다. 승리와 환희보다는 패배와 죽음에 연관된 현장이 많은 탓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이름 없이 스러진 민초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런 정도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여러 전문가들이 도와준 덕분에 잘 안 알려진 역사적 장소를 중심으로 오늘 또 다른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무게를 두기보다는 사회과학 이론으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설명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끊임없는?대화’라는 에드워드 할렛 카의 저 유명한 말을 실감한 여정이었다.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은 모두 두 권이다. 한 권에 다 못 담을 만큼 많은 곳을 다니며 발자국을 남겼고, 해야 할 이야기도 넘쳐흘렀다. 48개 키워드를 골라 제주와 호남과 영남을 아우른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54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충청, 강원, 경기, 서울을 종횡으로 훑으며 뿌리의 소리를 들으러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찾아간다.
뿌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 다 다른 지역과 사건과 사람들이 다다른 진실
손호철은 평생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친 정치학자이지만 이번에는 책보다 길 위에서 더 많이 배웠다. 뿌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속의 사람들이 들려준 진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4부 ‘충청’은 망이·망소이의 난으로 알려진 ‘명학소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우금치’의 비극이 벌어진 곳이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한 ‘김옥균’과 ‘박헌영’의 자취가 남아 있고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학살’과 사상범의 유배지 ‘대전형무소’의 흔적도 뚜렷하다. 손호철의 발자국은 ‘녹차라테’로 가득한 ‘4대강’을 지나 ‘산재 왕국’의 문을 연 ‘경부고속도로’를 끝으로 강원도에 이어진다. 5부 ‘강원’은 접경지대다. 전쟁과 분단의 흔적은 반공 영웅 ‘이승복’과 ‘베트남 파병’의 현장을 거쳐 ‘평화의 댐’으로 완성된다. 지하자원의 보고인 만큼 산업화 과정에서 ‘사북 탄광 항쟁’을 비롯한 노동자의 저항이 벌어지고 ‘땅 위의 세월호’라 할 수 있는 ‘산업 재해’도 빈발했다. 또한 민주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정의구현사제단’이 태동하고 한살림 운동을 이끈 ‘장일순’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6부 ‘경기’는 현대사를 장식한 굵직한 사건 현장을 곳곳에 품은 땅이다. 수원에서 ‘여자도 사람이외다!’고 외친 신여성 나혜석을 만난 뒤 ‘여운형’의 고향 양평을 거쳐 ‘임진각’과 연천 ‘38선’에서 분단을 생각한다. ‘71년 성남 항쟁’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현장을 거쳐 투쟁하는 양심들의 안식처 ‘모란공원’에 다다라 민주화의 역사도 되새긴다. 부평 ‘대우자동차’와 구리 ‘원진레이온’에서 실업과 산재를, ‘효순·미선 사건’이 일어난 양주와 새 미군 기지가 들어선 평택 ‘대추리’에서 미국과 평화를 고민한다.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는 차별받은 우리가 저지르는 또 다른 차별을 돌아본다.
현대사의 모순이 응축된 7부 ‘서울’에서 손호철은 가장 많은 키워드를 찾아간다. 미군정 사무실이 있던 ‘조선호텔’, 김구가 잠든 ‘효창공원’, 실패한 친일 청산을 상징하는 ‘반민특위’에서 해방 공간의 아픔을 되새기고, 조봉암이 잠든 ‘망우리공원’을 비롯해 ‘4·19민주묘지’와 ‘이화장’에서는 반공 대통령 이승만을 기억한다. ‘문래근린공원’과 ‘장충체육관’, 남산 ‘중앙정보부’와 ‘삼청동’, ‘서대문형무소’에 들러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거쳐 지금도 이어지는 ‘역사 전쟁’의 의미를 돌아본다. ‘구로공단’과 ‘평화시장’에서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한 뒤 ‘민주노총’ 앞에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고민한다. 6월 항쟁의 함성이 아련한 ‘명동성당’, ‘한국판 드레퓌스’라 불린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벌어진 ‘서강대학교’, 학생운동의 몰락을 재촉한 ‘연세대학교’를 지나, 민주화 이후 권력 감시자에서 새로운 권력 기관이 된 ‘시민운동’과 진보 정당의 황금기를 대표한 ‘민주노동당’을 돌아, ‘촛불 집회’의 현장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나긴 여정을 끝마친다.
피, 땀, 눈물
-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찾아가는 ‘열린 박물관’ 기행
한국은,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은, 가슴 아픈 현장이 곳곳에 자리한 열린 박물관이다. 길 위의 정치학자 손호철은 현장성, 사실, 관점, 서사라는 화두를 붙잡고 팬데믹과 고통스런 삶에 신음하는 이 땅을 톺아본다. 사건 현장을 두 번 세 번 발로 찾아가고, 진영 논리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하되, 진보적 시각과 관점에서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며,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전통적 서술을 넘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려 노력한다. 그리고 현장성과 역사성을 제거한 채 형식과 외형만 강조하는 역사의 토건화를 경계해야 하고, 개발 바람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역사 지우기를 멈춰야 하며, 사건 관련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진실을 밝히고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과 화해는커녕 상처만 덧내는 신임 경찰국장을 둘러싼 논란처럼, 지금 우리 역사를 만든 이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또다시 왜곡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손호철의 발자국을 따라 역사를 만든 이들을 만나러 가자.
목차
들어가며|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1부 제주
1. 서귀포|이재수의 난 정당한 항쟁인가 천주교 탄압인가
2. 제주|4·3 사건 세계에서 가장 큰 행불자 묘역
3. 서귀포|국민보도연맹 “죄를 지을지 모르니 미리 죽인다!”
4. 제주|5·16도로와 국토건설단 아름다운 숲 터널과 강제 노동 수용소
5. 제주|조작 간첩 만들어진 간첩이 만든 ‘수상한 집’
6. 제주|의인 김만덕 ‘변방’에서 만난 나눔의 여성 시이오
7. 서귀포|강정 해군 기지 ‘뿌리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하는 자주국방
2부 호남
8. 강진|다산초당과 사의재 정약용, 마키아벨리, 로베스피에르
9. 정읍|동학농민혁명 죽창 든 개미들의 짓밟힌 꿈
10. 정읍·고창|전봉준과 김개남 19세기 조선의 변혁론 논쟁
11. 정읍|무성서원과 의병 숭고하지만 때늦은 애국
12. 군산·목포|부잔교와 동척 ‘색맹’ 뉴라이트의 환상과 착취 유산
13. 신안|암태도 한 자루의 감자들, 뭉쳐서 승리하다
14. 광주|광주학생독립운동 “조선의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
15. 화순|노동자 자주관리운동 너릿재에서 생각하는 산업 민주주의
16. 여수·순천|‘여순 사건’ 항쟁과 반란 사이, ‘아, 여순이여!’
17. 남원|이현상과 빨치산 ‘다름 알기’와 공존의 가르침
18. 구례|화엄사 토벌대의 두 얼굴, 차일혁과 김종원
19. 여수·영암·영광|좌익의 우익 학살 우익이 흘린 피도 붉다
20. 함평|함평 고구마 항쟁 유신을 뒤흔든 고구마 한 자루
21. 해남|김남주 유신의 심장을 쏘려 강도가 된 시인
22. 광주|5·18광주민주화운동 ‘탈진실 시대’의 5월
23. 영광|핵발전소 반대 운동 굴비 말고 반핵
24. 진도|팽목항 우리들의 불안하고 위험한 미래, 세월호
25. 부안|새만금 개발과 환경 사이 길 잃은 갯벌
3부|영남
26. 경주|최부자댁 갑질 챌린지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27. 안동|혁신 유림과 독립운동 유림의 중심, 독립운동의 성지
28. 진주|형평사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를 향해
29. 밀양·부산·영양|의열단과 여성 무장 독립 투쟁 역사가 된 싸우는 여성들
30. 함양·경산|보광당과 결심대 죽창 들고 싸운 ‘원조 빨치산’
31. 대구·경산|10월 항쟁 ‘진보 도시’ 대구의 추억
32. 대구|2·28 민주운동 한국 민주 혁명의 진짜 원조?
33. 대구|인혁당 재건위 18시간 만에 저지른 ‘사법 살인’
34. 대구|박정희와 전두환 지역주의가 만든 보수 텃밭
35. 영천|국민방위군 예산 빼돌려 12만 명 죽인 희대의 부정부패
36. 산청|정순덕 마지막 빨치산이 된 문맹의 산 소녀
37. 산청·함양·거창|민간인 학살 ‘작전 명령 5호’로 시작된 피비린내
38. 부산|부산 정치 파동 임시 수도에서 시작된 의회 정치 압살
39. 부산|부마 항쟁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민주’여
40.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 반미 무풍지대에서 움튼 반미 태풍
41. 창원|3·15 의거와 부마 항쟁 하나가 된 두 도시 이야기
42. 울산|산업화 피, 땀, 눈물, 그리고 노동자
43. 울산|노동자 대투쟁 87년 7·8ㆍ9 투쟁을 동지여 기억하는가
44. 통영|윤이상과 동백림 사건 ‘상처받은 용’이 잠든 곳
45. 구미|박정희 죽은 박정희 살려내는 개혁 정부들?
46. 부산|형제복지원 운 없으면 끌려간 사설 강제 노동 수용소
47. 구미·김천|페놀 사태 페놀 없는 낙동강은 얼마나 깨끗한가
48. 성주|사드 사태 참외의 땅에서 미친 짓을 참회하라
2권
4부|충청
49. 대전|명학소 민중 봉기 우리의 현재를 빚진 저항의 씨앗
50. 공주|우금치 동학혁명의 정신을 되살린 5·16과 유신?
51. 아산|김옥균 재주는 비상하지만 ‘상식’을 모른 자의 비극
52. 제천|친일 문학 두 얼굴의 문학, 반야월과 ‘종천 친일파’ 서정주
53. 예산|박헌영 한반도의 저주받은 자
54. 대전|전시 작전권 ‘전작권 없는 대한민국’의 시작
55. 영동|노근리 학살 ‘미라이 학살’ 예고편, 쌍굴다리의 비극
56. 대전|대전형무소 ‘사상범의 유배지’에서 생각하는 사상과 이념
57. 영동|경부고속도로 고속으로 지은 고속도로는 산재 왕국으로 달리고
58. 청주·청송|사회안전법 한국의 알카트라즈, 격리와 보호 사이에서
59. 공주|4대강 사라진 ‘녹차라테’와 반‘그린 뉴딜’
5부|강원
60. 강릉|허난설헌과 허균 중세 조선의 근대인 남매가 꿈꾼 세계
61. 평창|이승복 반공 영웅의 신화 뒤에 숨겨진 이야기
62. 춘천|베트남 파병 ‘용병의 나라’와 한강의 기적
63. 원주|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64. 원주|장일순 생명사상과 한살림 운동의 선구자
65. 정선|사북 탄광 항쟁 어용 노조에 맞선 ‘사북의 봄’
66. 태백|산업 재해 4104, 아무도 찾지 않는 ‘땅 위의 세월호’
67. 화천|평화의 댐 ‘평화의 댐’인가, ‘사기의 댐’인가
6부|경기
68. 강화|개항과 척화 조선 양반과 일본 사무라이가 가른 운명
69. 수원|나혜석 ‘여자도 사람이외다!’고 외친 신여성
70. 양평|여운형 세 발 총탄에 쓰러진 ‘제3의 길’
71. 연천|38선 분단의 현장에서 생각하는 남침과 북진
72. 성남|71년 성남 항쟁 죽지 않으려 저항한 도시 빈민들
73. 부천|부천서 성고문 사건 경찰서에서 시작된 ‘원조 미투 운동’
74. 부평|대우자동차 아이엠에프 사태와 헬조선
75. 양주|효순·미선 사건 ‘소파’는 가구가 아니라 불평등한 한-미 관계다
76. 구리|원진레이온 산재의 또 다른 얼굴, 직업병
77. 남양주|모란공원 전태일부터 백기완까지, 투쟁하는 양심들의 안식처
78. 파주|임진각 월남 실향민은 발로 투표했다고?
79. 평택|대추리 미래형 미군 기지와 미래의 평화 세상
80. 안산|국경 없는 마을 글로벌 도시 속 보이지 않는 국경
7부|서울
81. 종로|조선호텔 미군정과 ‘좋은 제국주의’
82. 용산|효창공원 최고의 국가 비전을 제시한 ‘나의 소원’
83. 중구|반민특위 좌절된 꿈, 친일 청산
84. 용산|한강대교 가짜 뉴스 내보내고 서울 버린 대통령
85. 중랑|망우리공원 비운의 진보 정치인, 조봉암
86. 강북|4·19민주묘지 새 4·19기념탑은 광화문광장에
87. 종로|이화장 민족은 없고 반공만 있던 어느 대통령
88. 영등포|문래근린공원 우리 동네 공원은 역사 전쟁의 현장
89. 종로|평화시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못 다 이룬 꿈
90. 중구|장충체육관 99.9퍼센트 독재자는 미니스커트를 싫어해
91. 구로|구로공단 벌집 살며 칼잠 잔 여공들의 피, 땀, 눈물
92. 중구|중앙정보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 남산
93. 종로|삼청동 푸르고 서늘한 서울의 봄, 삼청교육대와 녹화 사업
94. 서대문|서대문형무소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이어준 역사의 학교
95. 중구|명동성당 민주화 운동의 결절점, 6월 항쟁의 빛과 그림자
96. 마포|서강대학교 ‘한국판 드레퓌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97. 서대문|연세대학교 사태와 항쟁 사이, 몰락한 학생운동
98. 종로|시민운동 새로운 권력 기관인가, 권력의 감시자인가
99. 영등포|이태영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 제자리 찾기
100. 영등포|민주노동당 여의도에서 시작해 킨텍스에서 끝난 어떤 실험
101. 중구|민주노총 자주적 노동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102. 종로|촛불 집회 광장을 밝힌 촛불은 어디로
마치며|역사의 토건화, 역사 지우기, 진실과 화해
나는 우리의 뿌리인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현장 102곳을 다녀온 뒤 이 책을 썼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한국 현대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정치학자가 쓴 기행이다. 그런 만큼 역사적 사실이라는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과학 이론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 5쪽
제주도에 가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인 5·16도로 숲 터널을 달려보자. 잠깐 차를 세우고 5·16도로 표지석도 찾아보자. 굳이 찾지 않더라도, 5·16도로를 달릴 기회가 되면, 아름다운 숲 터널을 지나갈 때면, 이 아름다운 도로를 만드느라 강제 노역을 하다가 죽어간 청년들의 명복을 빌자. 목숨을 잃지 않은 대신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빼앗긴 희생자들을 위해 분노하자. 어떤 개발이든 반인권적인 방법을 쓰면 안 된다고 다짐하자. - 42쪽
제주도청 앞에는 제주 제2공항과 도로 공사를 반대하는 플래카드와 농성 천막이 가득했다. 성산으로 향하는 비자림로에는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다며 숲을 베어낸 흔적과 일방통행식 행정에 항의하는 플래카드들이 긴장을 더했다. 나무에는 ‘근음’이라는 글씨를 써 매달아놓았다. ‘뿌리의 소리’, 곧 숲을 파괴할 때 나무뿌리가 내는 신음, 뿌리가 내는 울음소리를 들으라는 항의였다. - 61~62쪽
같은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 산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는 다산이 스물일곱 살이던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에 참여해 왕정을 타파하고 민중이 주인 되는 민주 공화국을 세우려 노력했다. 프랑스 국민의회가 채택한 헌법의 전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는 구절이 담겼다. 다산이 유배를 가기 10년 전 일이다. 왜 다산은 같은 시대에 산 로베스피에르, 나아가 프랑스 인권 선언 같은 급진적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 73~74쪽
더불어민주당 등 자유주의 진영은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개혁 독재’의 유혹을 버려야 한다. 정의당이나 민주노총 같은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제일주의’와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우익 학살이라는 비극을 가져왔고, 이런 학살에 대응한 보복으로 우익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됐다. ‘5·18 북한 특수 부대 개입설’ 같은 허황된 주장을 하는가 하면 다른 의견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가는 극우 세력을 보면 울화통 터지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킬링 필드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을까? - 161쪽
영광에서 반핵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주민들은 노후한 1호기와 2호기 출력 증가 반대, 사용 후 핵연료 대책 마련, 온배수 저감 장치 설치를 요구하며 오늘도 싸운다. 2025년에 수명이 다하는 1호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백전노장 반핵운동가 김용국은 말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근거로 시뮬레이션을 해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핵발전 사고는 사소한 실수부터...
책 속으로
반란으로 치부되던 동학의 명예를 회복시킨 사람도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자 경북 선산 지역의 접주로 동학혁명에 가담한 뒤 간신히 살아남은 아버지의 뜻을 살려 ‘동학난’을 ‘동학농민혁명’으로 승격시켰고, 1963년에는 황토현에 최초의 동학 기념물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세웠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동학혁명군 위령탑을 세울 수 있게 지원했다. 박정희가 동학 재평가에 크게 기여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5·16 쿠데타와 유신을 정당화하는 데 역사를 이용한 행동은 잘못이었다. 또한 박정희가 갑자기 동학을 띄우자 학계도 허겁지겁 동학 재평가 작업에 들어가면서 기초 연구 없이 일본군이 작성한 공초 문서 등에 의존한 바람에 동학 연구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지기도 했다. - 20쪽
대전형무소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상범을 가두는 특별 형무소이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1920년대에 대전형무소를 지을 때부터 장기수와 사상범을 가둘 특별 감옥으로 설계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은 뒤 형이 확정되면 이곳으로 내려와 감옥살이를 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을 거쳤다. 안창호와 여운형이 2년 반 동안 대전형무소에 갇혔고, 고문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김창숙은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아 손수레에 실려 대전형무소를 나왔다. 망루 옆에는 자유총연맹 대전지부가 운영하는 자유회관이 있다. 이곳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대전형무소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전시물과 유적이 나온다. ‘기억의 터’에는 안창호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와 신영복이 쓴 여름 감옥살이 글 등을 전시해놓았다. - 60~61쪽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서 북쪽으로 10여 분 달리면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나타난다. 이무기가 엎드린 모습 같다고 해서 교산蛟山이라 부르는 이 언덕은 허균의 외갓집이자 허균이 태어난 곳이다. 허균은 교산을 호로 삼는다. 빌라 공사장을 지나 숲속을 한참 헤매니 낡은 비석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너무 누추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라네’로 끝나는 허균의 시를 새긴 ‘교산시비’다. 서얼이 차별받는 시대에 서얼들하고 어울리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허균은 ‘시대의 서얼’이라고 한 어느 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중세 조선이라는 시대를 앞서간 ‘시대의 서얼’이었다.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 신분제를 타파한 프랑스 혁명, 이 혁명에서 획득한 시민권을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라고 요구한 마르퀴 드 콩도르세의 〈여성의 시민권을 위한 청원〉 같은 초기 페미니즘 운동보다도 200년 전 시대를 산 허난설헌과 허균은, 신분제와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향한 비판 의식을 지닌 ‘근대인’이었다. - 93~94쪽
1960년대 중반 한명희라는 청년 장교가 평화의 댐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다. 하루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 한국전쟁 때 전사한 어느 무명용사의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했다. 한명희는 무덤 주인이 자기하고 비슷한 청년이라는 생각에 시를 지었고, 이 시를 본 작곡가 친구가 곡을 붙였다. 평화의 댐에 가면 이 〈비목〉을 기념한 비목공원을 덤으로 볼 수 있다. 평화의 댐 왼쪽 끝에 비목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비목〉에 얽힌 사연하고 가사를 새긴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이 나타난다. - 141쪽
1968년 서울시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 350만 평을 개발해 50만 명이 살 수 있는 자족 도시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토지 분양과 일자리 보장을 약속하고는 주택과 도로 등을 갖추기도 전에 판자촌 주민들을 광주대단지 허허벌판으로 쫓아냈다. 1971년 여름에 이르면 성남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2만 5000여 가구에 12만 명을 넘어섰다. 도로는 물론 전기, 수도, 화장실도 제대로 없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생지옥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 행상이나 일용직 노동 등으로 생계를 버는 주민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짓기로 한 공장은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았고, 서울로 출퇴근하려 해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농촌 버스 몇 대가 전부였다. 천막촌에는 굶주림에 지친 산모가 사산한 아이를 삶아 먹더라는 괴소문까지 나돌았다. - 177쪽
2003년 문을 연 녹색병원은 외관부터 밝다. 원장실은 볕도 잘 안 드는 지하 2층에 넣고 가장 전망 좋은 7층에 재활치료실을 만들어 직업병 노동자들이 쾌적한 분위기에서 치료를 받게 배려했다. 초대 원장을 지낸 양길승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장이 병원 임직원들은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녹색병원은 직업병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서 48일 동안 단식 농성을 하다 쓰러진 ‘세월호 최후의 생존자’ 김성묵 등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련된 이들에게 의료 지원도 하고 있다. - 208쪽
2019년 12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집 앞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녹화 사업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을 하라고 요구하는 자리였다. 전두환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남성 대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강제 징집은 박정희 때도 있던 일이라 새롭지 않았지만, 문제는 녹화 사업이었다. 녹화 사업이란 회유, 협박, 고문을 수단으로 학생운동 참여자들을 전향하게 하는 한편 학생운동 관련 정보를 수집하라고 강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84년 국회에서 문제가 돼 폐지됐지만, 선도 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1989년까지 계속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한 조사에 따르면 선도 공작을 뺀 녹화 사업 피해자는 1192명이다. 프락치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학생 정성희 등 9명이 의문사를 했다. 제대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도 적지 않다. 전두환이 남긴 비극은 너무도 컸다. - 324~325쪽
“가족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오백 년 묵은 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고 말해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1989년 제3차 가정법 개정 뒤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태영은 이렇게 말했다. 이태영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노력한 덕분에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 3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