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음악사(略史)>

고전파음악

Bawoo 2014. 8. 6. 10:43

 

고전파 음악

바로크 음악 시대의 최후의 완성자인 바하와 헨델이 복음악으로 바로크 양식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만년에는 한편에서 이에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대 중들은 복잡한 다성부 음악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간결하고 선명한 음악을 희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 음악은 간결하고 솔직한 선율을 택하게 되었고, 이것을 화성 적인 반주로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단음악 즉 호모포니(Homophony)음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은 선율이 그 진행이나 구조에서 기능적인 화성에 뿌리를 박게 되었고, 그 구조에서도 바로크 선율과 같이 자유분방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4마디로 악 구를 이루어 반마침을 하고 8마디로 완전마침을 해서 독립된 악절을 이룬다는 성격적이고 규칙적, 내지는 균형적인 구성방법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주도 대위법적 방법이 아니라 화성적인 것 또는 화음적인 것으로 펼친 화음과 같은 것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균형진 규칙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형식도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 하게 되었고 모든 형식이 어떤 일정한 논리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을 클래식(classic) 즉 고전 음악이라고 이른다. 클래식이라는 어휘는 원래 "고전적" 이라는 뜻보다는 "모범적" 내지는 "표준적" 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날 클래식이라는 말은 역사적인 또는 시대 적인 범주로 고전파음악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고전파 음악은 바하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난 무렵부터 더욱 융성을 보아 19세기의 30년경 까지 지배적인 세력을 갖고 음악의 모든 분야에 걸쳐 침투해서 실현을 보았다. 따라서 작곡 가들의 음악활동면에서 볼 때 고전파 음악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 약 80년간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커다란 업적이라고 한다면 화성음악의 확립,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발전, 기악의 확립과 발전 즉 교향곡, 근대적
협주곡,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등의 기악양식과 연주양식의 확립등이다.

고전파음악이란 말은 본래 당시 작곡가들이 붙인 말이 아니라 후세에 이르러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 그 이전의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말이다. 바로크시대의 사회적, 국가적 체제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적 왕권 아래 있었으나, 점차 신흥 시민 계급이 대두하면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회문화의 건설을 희망하는 계몽주의 철학의 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술분야도 과거 종교나 특정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수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이스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과 균형의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을 지향하게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위법적인 음악보다는 단순 명쾌한 선율을 지닌 화성음악을 선호하였고 개성적인 감각의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이 인기가 있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이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음악기법을 창안하는 노력이 필요하였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소나타형식(Sonata Form)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 시대의 형식의 범주안에서 단순명료하고 질서와 절제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음악이 주가 되므로서 종교음악 분야는 음악사상 처음으로 침체국면을 맞게 된다.

(1) 전기 고전파

전기 고전파는 바로크말기의 1720년경에서부터 고전 초엽의 1770년대의 음악을 가르킨다. 이 시기에는 당대한 바로크양식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단순 명료한, 그러면서도 가벼운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로코코(Rococo)양식이 나타난다. 감상적인 멜로디에 화성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독이 남부의 만하임악파에서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과 함께 4악장제의 교향곡의 정형을 완성하였다. 작곡가로는 만하임악파(Demenico Scarlatti, 1685∼1757), 소나타형식을 창시한 바흐의 아들 임마누엘 바흐(Cari,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등이 있다.

(2) 오페라의 개혁

18세기 전반을 주도했던 나폴리 오페라는 극적 사실을 경시하고 성악적 기교만을 강조하여 청중을 자극할 수 있는 감각 위주의 음악표현에만 치중하였다. 이러한 가수의 화려한 기교위주의 오페라는 극의 진행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막의 진행이 중단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욤멜리(N, Jommilli)와 트라에타(T. Traetta)와 같은 작곡가들에게 개혁의 의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루카(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0는 1762년 빈에서 새로운 구성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발표하여 오페라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이어서 많은 혁신적인 오페라를 발표하여 이러한 개혁정신은 얼마간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퇴색하여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페라에 있어서 극과 음악이 모두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글루크의 이상은 19세기에야 비로소 베버(C.M Weber), 바그너(W. R. Wagner) 등에 의해서 실현하게 된다.

(3)빈 고전파(Viennese Classics)

고전파음악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초에 걸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서 완성되고, 이어서 베토벤에 의해서 한층 더 충실하게 되고, 또 베토벤에 의해 또 다른 방향으로 인도되었다. 이 대가들은 주로 빈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 완성기의 고전파음악을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한다.

빈 고전파의 첫 번째 대가인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은 화성적 단성율 음악에 크게 성공했고 2개의 대립되는 테마를 제시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다시 테마를 반복 재현하는 소나타형식을 완성시켰다. 또한 교향곡에 있어서 제 3악장에 미뉴에트를 고정 배치하여 제 1악장 소나타형식, 제 2악장 가요형식, 제 3악장 미뉴에트, 제 4악장 론도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근대적 교향곡의 형태를 확립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104개의 교향곡, 83개의 현악 4중주곡, 24개의 오페라 《천지창조》를 비롯한 4개의 오라토리오, 14개의 미사곡, 20개의 피아노협주곡, 기타 수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 한결같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전형적인 고전파음악의 성격을 지닌 걸작들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넘치는 창작적 기지로 시종 일관되어 있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고전주의 오페라의 최고봉에 올라서 있다. 그리고 하이든이 확립한 소나타 형식에 풍부한 색채감과 음악다운 즐거움을 부여하여 자유분방하게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음악을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작품은 41편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600여곡이 넘는데 모두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며, 작곡의 중점을 오페라에 두었으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미사곡등 매우 광범위한 작곡활동을 하였다.

베토벤(Ludwing van Beethoven, 1770∼1827)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고전파음악에 풍성한 생명을 주어 알찬 열매를 가져오는 마지막 매듭을 지었으며 낭만파의 새로운 장에 문을 열어 준 교량적 역할을 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베토벤은 신체적 장애로 그의 창작세계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영원불멸한 그의 작품은 그의 생애를 더욱 빛내고 만민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음악의 전 분야에 걸쳐 작곡된 그의 작품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개발한 고전형식에서 발전부의 확대, 코다부분의 계속적인 장려한 음악진행, 악장편성의 자유로운 취급, 교향곡의 제3악장에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로의 교체, 강약법의 급변 등 여거 형태의 독창적인 음악적 수법을 창안하여 새로운 진보적 경향을 수립함으로써 낭만주의의 문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분류하여 일반적으로 작품시기를 3부분으로 구분한다.

제1기는 1802년경까지로서 이 무렵에는 주로 하이든, 모차르트의 양식을 따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시기로서,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번과 제2번》,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2기는 1815년경까지로서, 이 시기의 작품은 그 자신 특유의 힘차고 그 내용이 심각한 것으로, 그의 독특한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시기로서,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 《열정》등의 피아노 소나타, 《라즈모프스키》 현악4중주곡, 오페라《피델리오》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3기는 마지막 시기로서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후의 영감을 통한 창작의 시기로서,《교향곡 제9번》, 《장엄미사》, 마지막《현악4중주곡》등이 있으며 모두 깊은 사색과 인생을 달관한 종교적 색채가 깃들어져 있는 음악사상 최고의 예술이라 하겠다.



1)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Franz Joseph Haydn [1732-1809]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 Wolfgang Amadeus Morzart [1756-1791]

3)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 -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1)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Antonio Vivaldi [1678-1741]

하이든은 1732년 3월 31일 남부 오스트리아의 헝가리에 가까운 로라우라는 빈촌에서 태어나, 1809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77세로 세상을 떠난 고전 음악의 기초를 닦은 대가이다. 하이든은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익힌 사람이나, 가장 건실하고 자발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특히, 교향곡이니 협주곡이니, 혹은 현악 4중주곡이니 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여러 음악 양식을 처음으로 개척한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긴 작곡가이다.

하이든은 부친이 손수레의 수리공이었기 때문에 음악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라나 시골 음악 교사의 불완전한 지도를 받은 후, 8살 때 비인으로 나와 슈테판 교회의 아동 성가대에 들어 갔다. 17살 때 변성한 하이든은 이 합창대에서 나와 한때 빈곤한 생황을 보냈으나 이러 는 가운데에도 공부를 계속하며, 특히 에마누엘 바하의 소나타를 어렵게 입수하여 이를 분석 연구했다.

하이든은 23살때 처음으로 현악 4중주곡을 썼다. 이 곡들은 모르친 백작에게 인정되어 많은 후원을 받았으며, 이어 헝가리의 가장 권력있고 부유한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인정되어 1761년 그의 악단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얼마 후 그 악단의 책임자인악장이 되었다. 당시 는 귀족 전제 정치시대인 만큼, 누구나 그러하듯이 하이든도 귀족사회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또한 고용주를 위해 쉴 사이 없이 작곡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1791년과 1794년에는 영국으로 초청되는 등 외국여행도 잦아졌다.

하이든은 선배들의 작품에 내재한 지배적인 공허한 감상을 버리고 그 자신의 주장을 강력 히 내세워 건실하고 순수한 예술을 창조하였다. 그의 음악에는 발랄한 생기와 독창성이 있고, 신선한 자연미가 흐른다. 하이든은 같은 시대의 모짜르트가 만하임악파의 영향을 받은것과 는 달리, 주로 에마누엘 바하의 <클라비어 소나타>에서 작곡기교를 배웠다. 대부분의 4중주 곡이 가장 과 교향곡, 그리고 최후의 오라토리오 <전치창조> <4계>등은 영원한 명작으로서 하이든의 음악성을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주요작품> 교향곡 6번 D장조 "아침" [1761]

교향곡 45번 F#장조 "고별" [1772]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 [1791]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1794] / "천지창조" [1798] / "황제 4중주곡"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 Wolfgang Amadeus Morzart [1756-1791]

모짜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의 잘쯔부르크에서 태어나 1791년 12월 5일 역시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35세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이다.

고전음악의 대가 모짜르트의 위대한 업적을 여기서 새삼스럽게 들추어 볼 것까지도 없지만 음악 역사상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 그의 많은 공적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소나타등 여러 음악형식과 교향곡이나, 협주곡이나, 현악 4중주곡 등의 실내악 등, 기악의 연주 양식을 개척하여 선배인 하이든은 물론 베에토벤 등에 영향을 주었을뿐더러 근대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형식의 기틀을 닦았다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모드들 모짜르트를 천재의 모델 케이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일찍부터 천재적인 소질이 발휘되어 4살 때부터 잘쯔부르크 대사교, 즉 영주의 궁정악단 단원으로 있던 부친으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작곡을 배워 이미 6살 때부터는 비인을 비롯 각 지를 순회하며 연주를 했고, 7살때에는 파리를 방문, 그리고 다시 런던을 거쳐 신동이란 경탄과 찬사를 받고 10살에야 고향에 돌아왔다. 모짜르트는 다시 13살 때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떠나 15살에 뀌국할 때까지 여러곳에서 천재의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그러나, 고향인 잘쯔부르크의 영주로부터 냉대를 받아 그는21살 때 새로운 일터를 찾아 파리로 갔었지만 여기서도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나 여건은 찾지 못해 신동이란 지난 날의 화려했던 연주경력을 가진 모짜르트도 실의를 안고 1770년 잘쯔부르크로 돌아왔다. 그러나, 1781년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나 비인으로 가서 거기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작곡과 연주, 그리고 교수로 나날을 보냈다. 그는 작곡가로서 또는 연주가로서 성공을 했고 사회적인 지위도 확고할 만큼 생활은 항시 곤란했고 끝내는 빈곤과 과로로 35살이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짜르트는 그 비극적인 짧은 생애에 600곡이 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기악, 성악을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썼고 또 거의가 불멸의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의 규모가 큰 작품은 물론, 독주악기로서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중요한 작품을 쓰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이 많은 작품의 양식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융합되어 있다. 이것은 모짜르트가 어렸을때 부터 연주 여행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각양각색의 작품에 접했고 여러 가지 양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리여행때 만하임에서 새로운 기악양식을 익혔고, 이탈리아 여행에 서 오페라 양식을 영국에서 요한 크리스찬 바하로부터 새로운 피아노 작곡법을 그리고 파리에서 만하임파인 쇼오버어트로부터 새로운 실내악양식을 계시 받았었다.

또한 비인에서는 하이든으로부터 실내악 특히 "현악4중주곡"의 작곡법에 중요한 암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짜르트는 이러한 요소를 막연하게 도입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동화하고 순화시켜 여기에 깊은 감정과 정서를 넣어 독자적인 양식을 수립한 것이다. 그의 선율은 무한히 아름답고 풍부하며 그의 형식은 명쾌하고 간결할뿐더러 화성은 밝고 섬세하다. 모짜르트 의 음악이 일반적으로 명랑하고 쾌활하다는 것은 정평이지만 그 저류에 흐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서정미 는 때로는 절망감마져 느끼게 한다.

<주요작품>

"피가로의 결혼" [1786] / "돈 조반니" [1787] / "마적" [1791] / "41번 쥬피터 교향곡" [1788] / "진혼곡" [1791,미완성] / "호른 협주곡 3번" / "대관식" [1779]


3)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 - Ludwing van Beethoven [1770-1827]

베에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독일 본에서 태어나 1827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57세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이다.

고전주의 음악의 최후의 그리고 고금을 통한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고 한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베에토벤의 음악이 역사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인류의 정신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음악사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에서도 베에토벤은 드물게 보는 역사의 창조자로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고, 위대한 업적을 우리 인류문화에 남겨준 음악가라고 하겠다.

오늘날 온 인류가 베에토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정신적인 영향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악성으로 추앙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음악이 아름답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 높은 우리 인류의 공통된 철학 세계를 추구하고 숭고한 인간 정신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에토벤의 작품들은 곧 그의 사상의 표현이며 동시에 생활의 반영이다. 따라서 그 의 전 작품은 베에토벤의 전 생애를 장식한 그의 역사인 동시에 그의 인간과 사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베에토벤의 생애를 불행한 일생이라고 한다. 사실 역사상 베에토벤처럼 고르지 못한 환경에서 일생을 보낸 음악가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그가 가난했다거나 귀머거리가 되었다거나,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거나 하는 것으로만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일생이 오직 인간의 공통된 운명과 대결하고 그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끝냈다는 심각한 정신 환경이 더욱 불행했을지 모른다. 베에토벤은 서부 독일의 본 시에서 태어나 그가 22세 때 비인으로 가기까지 어린 시절을 여기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선제후 예배당의 가수로 있었으나 성질이 난폭하고 대단한 호주가여서 가정이 평온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환경에서 자라난 베에토벤은 서너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 이론을 아버지의 가혹한 지도 밑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그는 궁정 오르간주자인 에덴을 비롯 파이퍼 그리고 네에페에게 지도를 받아 일곱 살 때 공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고, 열살 때에는 벌써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천재적인 재능과 역량을 일찍부터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여러곳으로 순회연주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였고 자신의 기술도 닦아서 더욱 천분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술에 빠진 아버지가 나태한 탓으로 집안 신구들은 어린 베에토벤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 뒤 17살 때에는 선량한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19세때에는 아버지가 실직하는 바람에 가족은 더욱 어려워지고, 베에토벤이 동생들을 데리고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경에서도 그는 꾸준히 연구와 작곡에 정진하였다.

7세때에는 비인을 방문하여 모짜르트를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22살때에 아버지마 저 여의게 되어 온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도 지게 되었다. 그 후 비인으로 옮겨 귀족사회에도 출입하면서 피아노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1796년경 즉, 26살 때부터는 작곡도 인정을 받아 음악계에 확고한 지위를 잡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게는 치명적인 운명이 닥쳐왔다. 그가 28살 때 귓병을 앓아 청각을 점차 잃게 되었다.

32살때에는 절망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베에토벤은 자결을 결심하고 비인 교외인 하이리겐시타트에서 비통한 유서를 쓰게 되나, 다시 생각을 돌리고 "나에게 신으로부터 내린 모든 사명을 다 할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된다." 하고 결심한 그는 그 가혹한 운명과 싸우면서 작곡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이와같이 베에토벤은 가족적으로나 일신상으로나 불행이 겹친 데다가 빈곤과 고난과 번민속에 살아 나왔고, 한편 이를 극복하고 그의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베에토벤은 남달리 인간애가 풍부하였고 고독과 절망에서도 항시 환희와 희열로써 곤경을 극복해 갔다.

베에토벤은 또한 풍부한 감수성과 자유분방한 개성, 섬세한 감정과 생활의식 등을 내재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코 자기 사생활에 근거를 두지 않고 언제나 현대적이고 역사적인 인류개혁에 치중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귓병과 빈곤 등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현대를 의식하고 전 인류적인 인생관과 사고를 음악적 창작에 결부시켰다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의 창작활동의 이념은 개인적인 감각이나 음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 통하는 고민과 희열이 그것이다. 그의 예술의 특징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환희와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보편성에 있다고 본 다.

그의 위대한 업적을 본다면 선배인 하이든, 모짜르트의 뒤를 이어 고전음악의 주요소인 형식을 한층 확장 완성 시켰고, 연주양식의 개척과 작곡 수법이나 관현악법에 있어서도 결정 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상적으로는 낭만주의의 가장 특징인 자주성과 개성의 확립을 꾀하였고, 진취적이고 과감한 태도로써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에 임했다.

<주요작품> 교향곡 제3번 "영웅" [1803]/교향곡 제5번 "운명" [1808]/교향곡 제6번 "전원" [1808]
교향곡 제9번 "합창" [1824]/피델리오 [1805]/피아노 소나타 "비창"/피아노 소나타 "월광"

 

                                         

                                               <출처: 다음 '오픈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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