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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조반니 파이시엘로

Bawoo 2015. 4. 6. 11:10

 

조반니 파이시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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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파이시엘로의 초상화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년 5월 9일 ~ 1816년 6월 5일)는 치마로사, 페르골레시와 함께 이름난 18세기의 오페라 부파의 작곡가이다. 나폴리에서 활약하였으며 1776년 36세로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에 초빙되어 궁정 지휘자 및 이탈리아 오페라 감독이 되었다. 그동안 오페라 부파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했는데, 이는 로시니에 의한 동명의 명작이 쓰일 때까지 절대적 인기를 얻었다. 1784년 나폴리로 돌아왔으며 뒤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초빙되어 한동안 예배당 악장으로 일했다. 그 오페라는 성격묘사의 교묘함과 오케스트라의 극적 용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적이고 힘찬 오페라로 명성을 날린 나폴리 악파의 작곡가이다. 외과의사인 아버지는 그에게 법학을 전공시키려는 의도로 5세 때 그를 타란토의 예수회 학교에 입학시켰지만 노래에 대한 재능이 뚜렷이 보이자 나폴리의 산오노프리오 음악원으로 옮겼다. 초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교회음악이었고, 음악원 극장에서 공연할 목적으로 인테르메초들을 작곡했는데, 그중 하나가 주목을 끌어 2편의 오페라를 작곡하도록 요청받았다.

 

그중 하나는 볼로냐에서 공연된 〈눈동자 La Pupilla〉이고, 또 하나는 로마에서 공연된 〈Il Marchese Tulipano〉였다. 이 공연들로 명성을 얻게 된 그는 나폴리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일련의 오페라들을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776년 여제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고 그곳에서 8년간 머물렀다. 예카테리나 2세를 위해 작곡한 곡 중 하나인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1782)는 보마르셰의 희극 〈Le Barbier de Séville〉를 기초로 주세페 페트로셀리니가 대본을 쓴 것으로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1784년 러시아를 떠나 빈에 잠시 체류한 뒤 나폴리에 있는 페르난도 4세를 모시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15년간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물방앗간 처녀 La Molinara〉(1788)·〈니나 Nina〉(1789) 등 그의 최고 걸작 오페라들을 여러 편 작곡했다. 수차례에 걸친 정치적 격동이 지난 뒤 1802년 나폴레옹에 의해 파리에 초청받았고, 튈르리의 궁정음악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 청중들은 그의 오페라 〈프로세르핀 Proserpine〉(1803)에 대해 그다지 열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프랑스어 대본으로 된 오페라인 이 작품이 공연에 실패하자 그는 실망하여 나폴리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전에 조제프 나폴레옹과 조아생 뮈라(페르난도 4세를 추방하고 나폴리 공국의 국왕으로 들어옴)에 의해 임명받은 대로 원래의 지위로 복귀했으나 새로운 임무에 몰두하지 못했고 1815년 나폴레옹 일가가 몰락하게 되자 나폴레옹의 일가를 섬긴 죄로 모든 직책을 잃고 불행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Concerto in mi bemolle maggiore per mandol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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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편 정도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교회음악에는 40곡의 미사곡과 그밖에 여러 편의 소품들이 있으며, 기악곡에는 교향곡, 하프 협주곡 1곡, 현악4중주, 하프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등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세비야의 이발사〉와 〈물방앗간 처녀〉가 다시 복원되었고, 그밖에 수편의 오페라, 피아노 협주곡, 현악4중주, 건반음악곡들도 복원되었다.

Concerto for piano N.3 in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