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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출신 시인]정초부(鄭樵夫)

Bawoo 2015. 12. 5. 23:57

 

정초부(鄭樵夫, 1714년1789년)는 조선의 노비 출신의 시인이다.

조선 후기 최고 시인들의 작품을 실은 '병세집'에는 정초부의 시가 무려 11수나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초부는 동원아집(東園雅集)과 같은 양반들의 시회에 초대받아 그들과 함께 시를 지었다.[위키 백과]

 

< KBS 역사스페셜, '노비 정초부 시인되다' >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시인의 남은 생애는 늙은 나무꾼 신세 / 지게 위에 쏟아지는 가을빛 쓸쓸하여라 / 동풍이 장안대로로 이 몸을 떠다밀어 / 새벽녘에 걸어가네 동대문 제이교를'
조선 정조시대 노비 정초부(鄭樵夫.1714∼1789)가 남긴 시다.

   KBS 1TV '역사스페셜'은 17일 밤 10시 '노비 정초부, 시인(詩人)이 되다'

를 방송한다.

   프로그램은 올초 발굴된 정초부의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를 조명한다.

   저자 '초부(樵夫)'는 글자 그대로 나무꾼으로, 조선 최하층 천민 노비였다. 정초부의 주인은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의 글공부에 함께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최고 시인들의 작품을 실은 '병세집'에는 정초부의 시가 무려 11수나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초부는 동원아집(東園雅集)과 같은 양반들의 시회에 초대받아 그들과 함께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 감명받은 양반들은 그가 살던 양근(지금의 양평) 월계협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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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도서관 소장 필사본 '초부유고'


안대회 교수, '樵夫遺稿' 찾아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그동안 이름만 전해지던 조선 정조시대 노비 정초부(鄭樵夫.1714∼1789)의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가 발굴됐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지 '역사비평' 2011년 봄호(통권 94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른 문헌을 통해 그 이름만 알려진 초부유고가 고려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 중이며 여기에 한시 90수 정도가 실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초부유고는 정초부를 포함해 정약용ㆍ박제가ㆍ이학규 등 4명의 시를 골라 묶은 필사본 시집 다산시령(茶山詩零) 안에 포함돼 있었다.

안 교수는 "노비였다가 양인이 된 홍세태(洪世泰.1653∼1725)를 비롯해 조선시대에 노비 시인이라 일컬을 만한 작가가 더러 보이지만 신분이 노비임이 확연한 이가 남긴 시가 이처럼 많이 담긴 한시집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된 그의 한시는 "서정적이고 조금은 우수에 찬 느낌을 준다"고 안 교수는 소개했다.

정초부는 글자 그대로는 정씨라는 성씨의 나무꾼이라는 뜻이지만 그의 실제 이름과 어느 집 노비였는 지 등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교수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다간 여춘영(呂春永.1734∼1812)이라는 사람의 문집으로 오직 규장각에만 1종이 확인된 헌적집(軒適集)을 함께 찾아내 이에서 정초부 관련 기록을 발굴, 그의 생몰연도를 확인하는 한편, 주인이 여춘영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여춘영은 조선후기 명문가 집안 중 하나인 함양 여씨다.

여춘영의 문집 '헌적집' 중 정초부 제문


헌적집에는 1789년 정초부가 76세로 사망하자 여춘영이 그를 추억하며 지은 만시(輓詩) 12수가 담겨있다.

그 중 한 시에서 여춘영은 "어릴 때는 스승, 어른이 되어서는 친구로 지내며, 시에서는 오로지 내 초부뿐이었지"(少師而壯友, 於詩惟我樵)라고 정초부를 추억하기도 했다.

여춘영은 그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짓기도 했다.

"저승에서도 나무하는가?(黃려<土+廬>亦樵否) / 낙엽은 빈 물가에 쏟아진다(霜葉雨空汀) / 삼한 땅에 명문가 많으니(三韓多氏族) / 내세에는 그런 집에 나시오(來世托寧馨)"

정초부가 나무하는 노비였음은 그 자신의 시에서도 확인된다.

"시인의 남은 생애는 늙은 나무꾼신세(翰墨餘生老採樵) / 지게 위에 쏟아지는 가을빛 쓸쓸하여라(滿肩秋色動蕭蕭) / 동풍이 장안 대로로 이 몸을 떠다밀어(東風吹送長安路) / 새벽녘에 걸어가네 동대문 제이교를(曉踏靑門第二橋)"

정초부는 실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초부유고에는 "정초부는 이름이 이재(彛載)다.

여씨가 노비문권(노비증서)을 불사르니 갈대울(지명)에 거주했다"는 구절이 보인다고 안 교수는 덧붙였다.

정초부는 나무를 하는 노비로 어린 시절 낮에는 나무를 하고 밤에는 주인집 자제들이 배우는 글을 어깨너머로 배웠으며, 이를 주인이 기특하게 여겨 한자를 가르친 것으로 전해진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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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정보- 책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자료수집- 위키백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