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美術) 마당 ♣/- 작품[作品]

앙리 제르베 - <롤라>,

Bawoo 2016. 2. 5. 18:12



 

[롤라] Rolla
Oil on canvas, 1878
Musee des Beaux-Arts, Bordeaux

 

 

이 작품은 1878년 살롱전에 출품되나 전시회 한 달 전에 돌연 전시를 거절당했다.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화면의 중앙을 점하는 당대의 파리장의 침대다. 침대 옆에 아무렇게 내팽

개친 지팡이와 모자, 페치코트, 우악스럽게 벗겨진 코르셋과 옷. 이 모두가 그 전에 있었을 격렬한

전희의 결과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만약 저 남녀에게 차라리 오리엔탈한 풍모를 부여했다면,

 아카데미 심사위원들도 그건 남의 나라 풍습으로 여겨 그냥 넘겼을터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남녀, 그것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남녀다. 

작품은 1878년 파리의 어느 갤러리에 공개되어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속의

'롤라'는 1830년대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알프레드 뮈세의 시 '롤라' 주인공 자크 롤라임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도시 자산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난 롤라.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중 모럴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러다 재산을 탕진하고 파리에서 "가장 타락한 남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생 낙오자가 된다. '마리'라는 소녀와의 사랑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도

 파산하자 그는 결국 음독자살을 택한다. 소녀 역시 사회의 낙오자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소녀 마리는 가난 때문에 매춘에 빠져들어, 결국 '마리온'이라는 이름의 창녀로

지금 저기에 누워 있다.

 

이 시(詩)에서 게르벡스가 선택한 것은 롤라가 돈을 주고 산 마리온과 하룻밤을 보내고 자살하기 직전 우울한 마음으로 그녀를 되돌아다보는 순간이다. 깨끗한 침대 시트 위에 천연덕스럽게 누워있는 마리온의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 거기에 솟아오르는 아침 해로부터 고개를 돌린 롤라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원작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 롤라는 고개를 돌려 마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이로써 두 사람은 모두 운명의 잔인함에서 벗어난다. 소녀는 잠 속에서, 사내는 죽음 속에서."

하지만 게르벡스의 그림은 뮈세의 원작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뮈세의 시가 묘사한 " 거리를 지나는 무거운 손수레의 소리" 가 들릴 것 같은 1830년대의 파리가 아니다. 화가가 택한 것은 1870년대의 파리, 그것도 부유하고 세련된 센 강가의 우측 대로변, 보 카르티에르(beau quartier)이다. 꾸밈없는 포즈로 잠든 마리온도 다 자란 성숙한 여인이지, 뮈세가 전하는 대로 앳된 소녀의 모습은 아니다. 도툼한 입술에다 커다란 코, 이마를 덮은 밤색의 기다란 곱슬머리. 이런 디테일들이 게르벡스의 마리온을 추상적인 문학 작품 속의 등장 인물이 아니라 개성있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제시함으로서 관찰자를 매료시킨다.

마치 오달리스크처럼 팔을 머리 위로 올린 마리온의 포즈는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세심하게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잠을 자면서도 얼굴은 관찰자 쪽을 향하고 있다. 왼발은 침대 아래로 내리고 오른발을 무릎을 굽혀 세운 상태다. 이로써 여인의 몸은 관찰자를 향해 열려진 자세를 취하게 된다. 게르벡스는 화면 중앙에 여성의 하복부를 배치함으로써 에로스를 강조한다. 그려면서도 침대보로 그 부분이 우연히 가려지게 배려한다. 은밀한 부분을 보여줄 듯 하다가 다시 감추어버리는 전통적인 수법이다.

에로틱은 어디 숨어 있을까?  앞에 벗어놓은 옷의 형태를 보라. 소파 위에는 하얀 바탕에 핑크빛 드레스, 그 위로 뒤집어진 코르셋이 보이고, 바닥에는 하얀 페치코트와 빨간색 가터가 놓여 있다. 여자의 드레스가 남자의 실크 모자와 지팡이 아래로 깔린 것으로 보아, 여자가 먼저 옷을 벗었나보다. 바닥에 흩어진 페치코트와 가터가 전희의 격렬함을 말해준다. 코르셋 아래로 빠져나온 스틱은 남자의 성기, 엎어진 실크 모자는 여자의 성기를 암시한다. 성적 은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후방에 두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게르벡스의 화면에 두 개의 세계를 공존하게 만든다. '그 전'과 '그 후". 밤의 어둠과 아침의 빛.

감상적인 롤라의 표정을 보라. 삶에 대한 미련일까? 아니면 영원한 이별의 슬픔일까.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표정이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이 작품은 1878년 살롱전에 출품되나 전시회 한 달 전에 돌연 전시를 거절당했다.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화면의 중앙을 점하는 당대의 파리장의 침대다. 침대 옆에 아무렇게 내팽개친 지팡이와 모자, 페치코트, 우악스럽게 벗겨진 코르셋과 옷. 이 모두가 그 전에 있었을 격렬한 전희의 결과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만약 저 남녀에게 차라리 오리엔탈한 풍모를 부여했다면, 아카데미 심사위원들도 그건 남의 나라 풍습으로 여겨 그냥 넘겼을터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남녀, 그것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남녀다. 살롱이 이 작품을 거절한 것은 누드신의 대담함때문이 아니다. 연출된 장면이 너무 당대적이었기 때문이다. 

 

 

Henri Gervex

 

Henri Gervex (Paris 10 December 1852 – 7 June 1929) was a French painter who studied painting under Alexandre Cabanel, Pierre-Nicolas Brisset and Eugène Fromentin.

Biography

"Rolla", 1878

His early work belonged almost exclusively to the mythological genre, which served as an excuse

for the painting of the nude, but not always in the best of taste. His Rolla of 1878, based on a poem by Alfred de Musset, was rejected by the jury of the Salon de Paris for immorality, since it depicted a scene from the poem of a naked prostitute after having sex with her client.

Gervex afterwards devoted himself to representations of modern life and achieved signal success with his Dr Péan at the Salpétrière ("The Operation"), a modernized paraphrase, as it were, of Rembrandt's Anatomy Lesson

 

 

알프레드 드 뮈세

알프레드 드 뮈세(프랑스어: Alfred de Musset, 1810년 12월 11일 ~ 1857년 5월 2일)는 프랑스시인, 소설가, 극작가이다.

파리 태생으로, 20세에 대담 분방한 시집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이야기〉(1830)로 문단에 데뷔하여 낭만파의 청춘 시인으로서 사교계의 총아가 된다. 그러나 점차 낭만파 동향에 비판적이 되어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1833년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와 사랑에 빠졌으나 이듬해에 헤어지고 연애의 번뇌와 고통을 노래하며 시인으로 크게 성장한다.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30세를 넘긴 후부터는 재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1852년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나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죽었다. 분방한 상상력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항상 신선하고 솔직하게 사랑을 노래한 뮈세는 낭만파 시인 가운데 가장 시인다운 시인이라 일컬어진다.

작품

뮈세의 극작이 시대조류에 항거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로는 그의 작품이 상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쓰여졌다는 외적 조건이 있다. 최초의 극작인 <베니스의 밤>은 1830년 오데온 극장에서의 첫 상연일에 주연여우의 과실도 있고 해서 야유와 욕설 가운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극작을 단념하지 않고 다음에 출판한 시집에서는 <술잔과 입술> <처녀는 무엇을 꿈꾸는가>의 두 운문극을 시도하여 '안락의자에서 보는 연극'이라는 제명을 붙였다. 이 작품으로 극작에의 방향을 확인한 그는, 그 후 세계평론지(世界評論誌)에 상연을 고려하지 않는 많은 극작품을 발표했다. 1833년의 <앙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를 비롯하여 <마리안의 변덕(Les Caprices de Marianne)>, 1834년의 <판타지오(Fantasio)>, <사랑을 장난으로 하지 말아라(On ne Badine pas avec l' Amour)> <로렌자초(Lorenzaccio)> <종마(種馬)>, 1837년의 <바람기(Un Caprice)> 등이 극작집 <희극과 격언극(格言劇)>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은 상연상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한층 자유로운 형식이나 여유있는 시정(詩情)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마리브식(式)의 정밀한 심리주의를 계승하여 프랑스 연극의 전통을 확대, 강화했음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사극(史劇) <로렌자초>는 셰익스피어풍 규모와 문체의 화려함을 갖춘 낭만주의극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뮈세의 극은 1846년에 <바람기>가 여배우 알랭에 의해 상연된 이후 그 연극적 가치가 재평가되었으며 잇따라 각광을 받았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연극에서 시정을 되찾으려는 자크 코포의 운동 후 처음으로 참다운 이해를 받았다고 하겠다.

시는 〈초기시집〉(1829-1835)과 〈신시집〉(1836-1852)에 수록되어 있으나 유명한 4편의 〈밤〉(1835-1837)에는 상드와의 연애 고뇌에서 나온 훌륭한 서정시가 담겨 있다. 장편소설 〈세기아(世紀兒)의 고백〉(1836)도 같은 괴로움에서 생긴 것이지만 여기에는 동시에 샤토브리앙의 〈르네〉따위의 흐름인 '세기병'을 역력하게 읽어볼 수 있다. 기타 〈두 사람의 애인〉(1837), 〈미미 팡송〉(1845) 등 10편이 넘는 소설이 있고 또 현재에 한층 높이 평가되기 시작한 〈장난으로 사랑하지 않을 것〉(1834), 〈로렌자치오〉(1834)〔〈희극과 격언극〉(1854)에 수록〕 등 극작품도 많다.

 

[뮈세가 나와있는 그림]

 

 

요셉 단하우저는(1805.8.19.-1845.5.4.)는 오스트리아의 화가로이름 자체는 생소하지만 "피아노 앞의 리스트"라는 그림은 음악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그는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발트뮐러피터 펜디등과 함께 비더마이어 시기의 중요한 화가로 손꼽힌다도덕적 주제를 다룬 그의 그림은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지만결혼 풍속도로 친숙한 윌리엄 호가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피아노 앞의 리스트라는 그림속 인물들은 좌측부터 각 알프레드 뮈세 혹은 알렉상드르 뒤마조르주 상드프란츠 리스트마리 다구뒤에 서 있는 인물들은 헥토르 베를리오즈 또는 빅토르 위고니콜로 파가니니조치아노 로시니이다잘 보이지는 않지만 벽에 걸린 초상화는 바이런의 것이며한번에 알아차리긴 어렵지만 리스트의 시선이 가 있는 곳은 베토벤의 흉상이다단하우저가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로 유명해서 흉상도 그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흉상은 안톤 디트리히의 것이다.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

 

 

 

 

[출처: 정보- 책관능미술사/ 자료 수집-검색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