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패(夏侯霸, ? ~ 259년 이전)는 중국 삼국 시대의 위나라와 촉한의 무장이다. 자는 중권(仲權)[1]이며, 하후연(夏侯淵)의 차남(연의에서는 하후연의 장남). 백부는 하후돈(夏侯惇)이다.
생애
황초 연간에 편장군이 되었고, 조진(曹眞)의 촉 정벌에 선봉으로 참전했다.[1] 정시 연간에 토촉호군우장군이 되어 옹주의 수비를 맡았고, 박창정후에 봉해졌다.[2] 위략에서는 먼저 우장군이 되었고, 사졸을 잘 기르고 서융과 화합하였으며, 정시 연간에 하후유를 대신해 정촉호군이 되어 정서장군 하후현 아래에 속했다.[1] 가평 원년(249년) 조상(曺爽)이 사마의에게 주살되자, 조상과 두터운 관계에 있던 하후패는 신변에 위험을 느껴 촉한으로 망명했다.[2] 당초 조상이 주살된 후 사마의가 하후현을 중앙으로 소환하자, 하후패는 하후현에게 가지 말 것을 권했다.[1] 이 사건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던 차에, 옛날 곽회(郭淮)가 옹주자사로 있을 적에 사이가 나빴는데, 그 곽회가 하후현의 후임으로 정서장군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촉한으로 망명했다.[1] 연희 12년 정월이었다.[3]
촉한에서의 하후패는 그 여동생 하후씨가 장비(張飛)의 아내였기에(유비가 원소, 관우가 조조에게 의탁할 당시 장비는 하후패의 사촌여동생을 납치하여 강제로 아내로 삼았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경애황후와 장황후), 촉한에서 조운(趙雲)이 살아생전에 받았던 예우 못지않은 예우를 받았다.[1] 하후패는 그곳에서 강유(姜維)의 도움으로 고락을 같이하며 위의 공세를 막았다.
260년, 조운이 시호를 받았을 때 이미 그 전에 하후패의 시호를 내렸다.[4]
《삼국지연의》에서의 하후패
사마의의 천거로 제5차 북벌에서 아우들과 함께 출전했다. 262년, 북벌 당시 조양성에서 등애(鄧艾)와 싸우다 활에 맞아 죽었다.
같이 보기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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