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처’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소나타로 평가된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 덕분에 ‘크로이처’라는 부제는 이 곡에 더욱 신비스럽고 강렬한 이미지를 던져주지만, 사실 ‘크로이처’란 다름 아닌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이다. 베토벤이 이 소나타를 그에게 헌정했기 때문에 이 소나타는 ‘크로이처 소나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처음부터 이 소나타를 크로이처에게 헌정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이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고 그에게 헌정하려 했었다. 브리지타워는 아프리카 출신의 아버지와 유럽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로 화려한 연주 스타일과 뛰어난 기교를 지니고 있어 일찍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베토벤은 그의 연주 스타일을 아주 좋아해서 그를 위해 이 소나타를 작곡하여 함께 연주했고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곡을 헌정 받은 크로이처는 ‘무식한 곡’이라고 비난했다
연주회 당시만 해도 베토벤과 브리지타워의 관계는 무척 우호적이었고 브리지타워 역시 베토벤을 음악적으로 매우 존경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건 여자 문제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한 여인 때문에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토벤은 1805년에 그의 새로운 바이올린 소나타를 출판하면서 엉뚱하게도 이 곡을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로이처에게 헌정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되어 ‘크로이처’라는 별칭을 얻었다.
베토벤으로부터 소나타를 헌정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크로이처는 당시 바요, 로드와 더불어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삼총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음을 짧게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 주법보다는 음과 음 사이를 연결해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을 선호했던 전형적인 프랑스 악파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특히 정확한 인토네이션을 구사하는 뛰어난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베토벤과는 1804년에 교류가 있었는데, 이때 베토벤은 크로이처의 가식 없고 자연스러운 연주에 큰 감명을 받고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크로이처에게 헌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크로이처 자신은 이 소나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베토벤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증언에 따르면 크로이처는 그 자신에게 헌정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 평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곡이 ‘크로이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David Oistrakh/Lev Oborin - Beethoven, Violin Sonata No.9 'Kreutzer'
David Oistrakh, violin
Lev Oborin, piano
Salle Pleyel, Paris
1962.06.19
추천음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의 음반으로는 전통적인 명반으로 꼽는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음반이 유명하고, 젊은 시절의 이차크 펄만과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듀오 음반 역시 깊은 감명을 준다. 그러나 좀 더 강한 추진력을 원한다면 이차크 펄만과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함께 연주한 실황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활화산 같은 피아노와 생동감 넘치는 바이올린의 이중주가 불꽃 튀는 전투를 연상시킨다. 오귀스탱 뒤메이와 마리아 호앙 피레스가 함께 하는 ‘크로이처 소나타’ 연주 역시 두 악기의 숨 막히는 전투를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