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stakovich, Jazz Suite No.2 'Waltz II'
쇼스타코비치 재즈 모음곡 2번 ‘왈츠 II’
Dmitrii Shostakovich
1906-1975
André Rieu, conductor
Johann Strauss Orchestra
Maastricht Concert, Netherlands
2012
André Rieu/Johann Strauss Orchestra - Shostakovich, Jazz Suite No.2 ‘Waltz II'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은 음악에 관해서라면 무엇에든 호기심을 보였던 그가 소련을 방문한 서방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접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 사회에서 재즈 음악이 점차 퍼져 나가자 이를 우려한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재즈 음악이 서방 부르주아 문화의 소산이라는 비판적 시선으로 지켜보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서 그는 재즈의 기법을 배우는 데 열성을 쏟았다. 그러다가 마침 1934년에 재즈경연대회 참가를 결심하고는 <재즈 모음곡 1번>을 작곡하였다. 이어서 4년 뒤인 1938년에 크누셰비치키가 이끄는 재즈국립악단을 위해 <재즈 모음곡 2번>을 완성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두 곡에서 의도적으로 정통 재즈 어법을 감추고 그가 영화나 극장용 음악을 작곡할 때 사용했던 경음악 어법을 도입함으로써 당국과 세인의 비난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재즈’란 명칭을 달고는 있지만, 쇼스타코비치만의 관현악법다운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돋보이는 반면 재즈의 본령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재즈 모음곡 2번>을 좋아했는데, 그중 1번 ‘행진곡’이 붉은 군대의 활기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많은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의 우수가 담긴 왈츠
‘왈츠 II’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에 들어 있는 곡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통해 재즈와 왈츠의 매력을 한 작품 안에서 다 표현하려고 했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왈츠라고 하기에는 조금 느리면서 어둡고, 재즈라고 하기에는 그 웅장함이 관현악에 가까운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재즈라 하기에도 왈츠라 하기에도 조금 부족한 듯한 이러한 독특한 개성이 이 곡을 더욱 매력 있게 하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블라디미르 페르부넨스키의 작품 <왈츠에 빠지다> 2005
왈츠는 춤곡이다. 하지만 경쾌한 세 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둡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화려한 빈 풍이 아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답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태생적으로 모더니스트였던 것 같다. 내성적인 그는 줄담배를 즐겼고, 표정은 언제나 딱딱했다. 공개석상에서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곤 달랑 한 장뿐인데 그것도 아주 희미한 웃음일 정도이다.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데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그리고 행간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수가 어린 서정적 주제 선율을 왈츠라는 흥겨운 춤곡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감추고자 했던 슬픔을 오히려 더욱 드러내주는 듯하다.
금관악기의 대표라고 하면 역시 화려한 음색을 내는 트럼펫일 것이다. 재즈 음악에서도 트럼펫이 애용되고 있다. 트럼펫은 찬란하고 낭랑한 음으로 남성적 매력을 뿜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으로 여성적 애수에 찬 느낌도 전해준다. 아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의 주제 선율만큼 이러한 트럼펫의 두 가지 음색을 잘 드러내는 곡은 없을 듯하다.
Riccardo Chailly/Berliner Phil - Shostakovich, Jazz Suite No.2 ‘Waltz II'
Riccardo Chailly,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Waldbühne 2011
영화음악으로 자주 사용된 ‘왈츠 II’
<재즈 모음곡 2번> 8곡 중 여섯 번째 곡 ‘왈츠 II’는 <아이즈 와이드 셧>,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영화에 쓰이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되었다.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질끈 감은 눈’, 1999)은 실험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 된 작품으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가 주연한 영화이다.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까지 한 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 박자의 묘하게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다. <텔 미 썸딩>(1999)은 장윤현 감독의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는 바흐의 <푸가 G단조>와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6번,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를 들을 수 있다.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에서는 해변에서 여주인공(이은주)과 남주인공(이병헌)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왈츠 II’가 흐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전지현의 샴푸 광고에 BGM(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 ‘왈츠 II’가 우리 귀에 더욱 익숙해졌다 하겠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왈츠 II’가 흐르는 장면.
아이즈 와이드 셧
경쾌한 정통 왈츠와는 좀 다르게 러시아 특유의 장중함과 우아함이 강조된 쇼스타코비치의 이 유명한 곡은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며 영화 전체에 격조를 부여한다. 그러나 영화 앞부분에서 상류층 부부의 평온한 일상을 보여줄 때 흐르던 이 완벽한 화음의 관현악은 부부가 속으로만 생각하거나 혹은 애써 부정해 온 성적 일탈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기괴한 불협화음의 피아노 음악으로 대체된다. 마지막에 위기를 넘긴 뒤 다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흐르지만 마냥 아름답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왈츠 II’가 흐르는 장면.
번지점프를 하다
반면 다소 경망스러운 휴대폰 벨소리로 시작되어 과거의 연인 태희의 허밍으로 옮겨졌다가 마침내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이어받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쇼스타코비치 왈츠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쿵짝짝 쿵짝짝’ 3박자의 리듬은 첫눈에 반한 뒤 드디어 가까워지는 연인들의 떨리는 심장박동 소리에 대응되고, 중저음의 관악기로 출발하는 감미로운 선율은 두 사람이 앞으로 속삭이게 될 사랑의 밀어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노을 지는 소나무 숲에서 왈츠를 추는 두 사람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영상은 환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