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Op.48)
Bawoo2014. 2. 19. 09:31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Yevgeni Svetlanov, conductor
USSR Symphony Orchestra
Moscow, 1970
Yevgeni Svetlanov/USSR SO -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이 사랑스러운 작품은 ‘세레나데’의 장르적 이미지 때문에 종종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차이콥스키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가 각별히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아울러 ‘러시아적 우수와 정한(情恨)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차이콥스키가 남긴 가장 밝고 쾌적한 관현악곡으로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곡의 제목은 우리를 18세기 유럽의 어느 궁정 또는 정원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세레나데’라는 명칭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고전파 음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모차르트를 깊이 존경하고 흠모했는데, 이것은 그런 그가 모차르트 시대의 양식을 ‘의식적으로 모방하여’ 쓴 곡이다.
차이콥스키의 ‘모차르트 사랑’은 아주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있어서 모차르트는 바흐, 베토벤, 바그너, 브람스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런 그의 모차르트를 향한 마음은 거의 종교적 숭배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 번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너무나 천사와 같은 존재, 아이처럼 순수한 존재였다. 그의 음악에는 도달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맺혀 있어서 예수처럼 숨 쉬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일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에서 음악적 아름다움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함의 최정상 꼭대기에 이르게 된다는 게 내 절대적인 확신이다. 누구도 모차르트만큼 나로 하여금 그토록 흐느끼게 할 힘이 없으며 우리가 진심으로 이상향이라 부를 수 있는 바에 내 자신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황홀해서 몸을 떨게 할 힘조차 없게 된다.”
러시아 클린(Klin)에 있는 차이콥스키가 마지막에 살았던 집. 현재는 차이콥스키 박물관으로 운영 중.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이 세레나데는 1880년 가을(9~10월)에 <1812년 서곡>(9~11월)과 나란히 작곡되었는데, 그 무렵을 전후하여 차이콥스키는 서유럽의 음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그는 자주 서유럽을 여행하며 독일, 프랑스, 이태리에 걸친 다양하고 광범위한 음악들을 접했고, 특히 바로크 모음곡의 양식 및 고전파의 간결한 어법과 명쾌한 형식에서 많은 자극과 영향을 받았다.
사실 처음 이 곡을 착수할 때 차이콥스키는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그 중간 형태인 현악 합주곡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그처럼 고민했던 이유는 아마도 ‘독일적인 형식’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평생 동안 ‘형식’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세레나데’에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형식을 취할 수 있으므로 작업을 좀 더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 곡에서 차이콥스키는 이전에 발표했던 교향곡들보다 한층 더 탄탄한 유기성과 만족스러운 균형미를 달성했다. 즉 현악만에 의한 순수한 조직과 형식, 적절한 정돈과 균형을 통해서 드러난, 고전미에 대한 그의 진지한 추구가 여기서 하나의 아름다운 결정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와 관련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레나데는... 내면적 충동에 따라 작곡했고,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되었으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쓴 바 있다.
낭만적 세레나데
고전파 세레나데의 악장 수는 적게는 3개부터 많게는 7~8개까지로 다양하지만, 이 곡은 4개의 악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역시 초기 구상이 교향곡 또는 현악 4중주였던 사실에 기인하는데, 결과적으로 교향곡 또는 현악 4중주의 구성미와 세레나데의 유연성을 절충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첫 악장에서 소나타 형식보다 단순한 ‘소나티네 형식’을 취한 점, 춤곡 악장에 고전적인 미뉴에트 대신 왈츠를 도입한 점 등에서 이 곡에 임했던 작곡가의 발상과 자세가 ‘낭만주의자’답게 한결 자유로웠음을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차이콥스키 특유의 정서적 악상이 담긴 완서악장은 이 곡이 단순히 고전파 세레나데의 모방작이 아니라 다분히 ‘낭만화된 세레나데’임을 말해준다.
Sir John Barbirolli/LSO -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Sir John Barbirolli,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Kingsway Hall, London
1964.09
1악장: 소나티네 형식의 소품. 안단테 논 트로포 – 알레그로 모데라토
C장조, 6/8박자. 첫 악장은 안단테 논 트로포의 서주와 소나티네 풍의 주부로 이루어져 있다. 서주는 전체 합주로 힘 있게 시작되는데, 두터운 화음을 수반한 선율이 첫머리의 A단조와 이후의 C장조 사이를 흔들거리듯 움직이다가 주부로 진입한다.
주부는 싱커페이션이 포함된 우아한 제1주제와 아기자기하고 리드미컬한 제2주제가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쾌활하고도 우아하게 진행되며, 발전부 없이 제시부의 클라이맥스에서 곧바로 재현부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코다에서는 서주의 선율이 다시 등장한 후 마무리된다.
2악장: 왈츠. 모데라토, 템포 디 왈츠
G장조, 3/4박자. 앞서 말했듯이 ‘왈츠’로 진행되는 춤곡 악장이다. 차이콥스키는 훗날 발표한 교향곡 5번에서도 ‘왈츠’를 배치한 바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풍의 빈 왈츠가 가진 우아함과 들리브 풍의 프랑스 발레가 가진 화려함, 그리고 차이콥스키 특유의 미묘한 센티멘털리즘이 결합되어 우아하고 세련되며 농밀한 풍미를 자아낸다.
어거스트 배리 <마빌의 왈츠>, 19세기경.
3악장: 엘레지. 라르게토 엘레지아코
D장조, 3/4박자. ‘엘레지’로 명명된 완서악장. 3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가 D장조로 일관하며, 주부에 비해 중간부의 길이가 4배에 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편이 야상곡 풍의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달콤 쌉싸래한 칸타빌레 선율이 온화한 춤곡 풍의 리듬에 실려 유장하게 펼쳐지는 중간부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동경과 우수, 탐미로 가득하다.
4악장: 피날레. 안단테 -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러시아 주제에 의한’ 피날레로서 안단테의 서주(G장조)와 알레그로(C장조)의 주부로 구성되며, 주부는 론도 풍의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차분한 서주에서는 약음기를 단 악기들에 의해 잔잔한 선율이 번지듯이 흘러나오는데, 이 선율은 '목장에서'라는 러시아 민요에서 차용한 것이다.▶구스타프 클림트 <사과나무 II>, 1916년.
그런가 하면 주부에서는 ‘푸른 사과나무 아래서’라는 민요에서 취한 명랑한 선율이 등장하며, 제1주제부는 이 선율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제2주제도 민요풍이며, 발전부는 제1주제와 제2주제를 합성하여 진행된다. 코다에서 제1악장의 서주가 중후하고 찬란하게 부각되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며, 마지막에는 다시금 활기찬 분위기로 돌아가 마무리된다.
한편 이 세레나데는 완성 직후인 1880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열린 사적인 음악회에서 처음 연주되었는데, 그 음악회는 음악원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차이콥스키의 음악원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서 준비한 ‘깜짝쇼’의 일환이었다. 그런가 하면 공식 초연은 그 이듬해인 1881년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두아르드 나프라브니크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차이콥스키는 특히 존경했던 안톤 루빈스타인의 찬사에 크게 고무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천음반
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 네빌 마리너(지휘)/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인더필즈. Decca
3. 유리 바슈메트(지휘)/모스크바 솔로이스츠. Onyx
4. 필립 앙트르몽(지휘)/빈 체임버 오케스트라. Naxos
5. 다니엘레 가티(지휘)/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HMF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