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일본 >

[청일전쟁시 평양성 문을 열어 군신 호칭(1호)을 받은 인물]하라다 주키치

Bawoo 2020. 8. 22. 22:24

 

 

 

하라다 주키치는 평양명승사진그림엽서에 청일전쟁영웅으로 그 이름이 명시되어 시, 공간을 넘어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환기된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머슴살이를 하다가 청일전쟁 때 일개 병사로써 큰 공을 세워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전쟁영웅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의 미디어는 그의 공적을 미화하여 대대적으로 현창함으로써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부추기는 멸사봉공, 충군애국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생활고 끝에 유랑예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몰락한 영웅"으로 표상되었다. 한동안 대중들로부터 잊어지고 있던 그는 1930년대 만주사변 등 나라의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다시 미디어에 등장하여 전쟁미담의 주인공으로 재소환 된다. 즉 필요에 따라 그를 국가주의 애국담론에 소환, 환기시켜 전쟁이미지를 국민들이 공유하는 군국주의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Harada Jukichi was a unique person whose name was printed as a hero of the Sino-Japanese War in the postcard with a view of Pyongyang"s scenic spot, and was evoked by unspecified individuals passing time and space. He was born as a son of a poor farmer and worked as farmhand before he became popular as an war hero who was treated as a national hero by rendering distinguished services as a soldier during the Sino-Japanese War. The media of the time spreaded the ideology of self-annihilation for the sake of his country with loyalty and patriotism that encouraged the birth of another hero by glorifying and advertising his achievements extensively. And he was forgotten by the public for a while, but was recalled in the media again as the main character of the impressive story of war at the time of national emergency such as the Manchurian incident in the 1930s.[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752892 디비피아

 

 

하라다 주키치(原田重吉)라는 병사가 청나라 군대가 견고히 지키는 현무문(玄武門)을 돌파하여 단신 돌격한 일이 유명하다. 그는 청일전쟁의 상징적인 존재로 일본 전국에서 숭앙받았으나, 전후에는 이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여 꿈속에 살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쳤다고 한다. 청일전쟁을 주제로 한 연극에 직접 출연하여, 자신이 실제로 한 행동보다 과장된 활약상을 연기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하기와라 사쿠타로·‘청일전쟁 이문(異聞)-하라다 주키치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