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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이철우 외

Bawoo 2025. 2. 17. 17:17
저자:이철우 외
출간:2020.8.22
 
[소감 그리고 현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시각] 우리 나라는보수와 진보의 편가름이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의 뿌리는 해방 후 친일세력 청산이 안 된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겠지만 어디 꼭 그런 것이기만 하겠는가. 보수가 가진 자들의 집합체이고 진보가 못 가진 자들의 집합체라면 딱히 보수, 진보로 편가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쪽도 이젠 못 가진 자들의 집합체는 아닌 것이기에. 문제는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주장하는 우리 역사의 인식이 너무 친일적인 데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이영훈 외가 지은 "반일종족주의"라는책이 내용의 진실성이 얼마나 되는가 여부를 떠나 너무 일본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겠는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뒤를 캐보면 일본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호의호식한 집안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어느 계기-일본 측의 자금 지원(?)-가 있어 반일에서 친일로 되돌아 선 것은 아닐까? 이름을 딱히 지정할 수는 없지만 현 정부 들어 정부 산하 역사 관련 기관의 장으로 이름을 올린 인사들 중에는 이런 인물들이 제법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 논쟁은 피곤한 일이다. 이걸 굳이 지속하는 까닭은 결국 친일청산이 안 된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친일청산이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반대편을 싹 죽여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프리카 "르완다". "남아공화국"이 괜스레 포용정책을 펼치겠는가? 그리 안 하면 나라만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설사 불만이 있을지라도 끌어안고 더불어 가야 나라에 혼란도 없고 발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립과 분열을 획책하는 인물, 세력은 기필코 배척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현 윤석열 탄핵정국 들어 극심해진 보수, 진보의 대립은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결코 없어야 하는일인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군사독재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설사 반대편에 불만이 있을지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지 자기주장, 권리만을 앞세워,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군대를 동원하는 계엄령을 발동하여 반대편을 억누르면 그게 억눌러지겠는가. 설사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역사만 또다시 어둡던 과거 시절로 되돌아갈 뿐일 것이다. 정말 힘들게 경제 선진국, 정치 민주화를 이룬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쥔 인간들이 자신과 주변의 지지세력들만을 위한 탐욕이 이리도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데 다수 민중을 막을 힘이 없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모든 게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텐데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부상, 미국의 견제 때문에 너무나 어려워진 경제 현실 아닌가. 선진국에서 중진국, 후진국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가 우리의 반면교사 아니던가. 아직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도. 1인당 GDP가 5만 불에서 3반 불대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이념 다툼을 할 게 아니라 힘을 합쳐 경제발전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온 힘을 다 합쳐 기울여도 모자랄 판인 것이 지금의 국제정세인 것이다. 
 
*책에 관한 상세한 해설은 아래 책소개 전문을 참고 바랍니다. 저자 프로필을 보려면 책제목 클릭. 
 

책소개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책의 필자 18인 역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뉴라이트 역사학은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라고.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되어 한일 양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판서다. 《반일 종족주의》의 허구와 논리적 비약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기에 이제 사실史實 다툼은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의 필자 18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일 종족주의》의 여섯 가지 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뉴라이트 역사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역사인지 또 실증사학과 탈진실의 역사와의 관계를 묻고 있다. 이 책이 뉴라이트 진영의 학문적 행로나 그 비판적 수용까지 담은 것은 그런 시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책을 내며

자기 부정의 역사 서술-반일 종족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말놀이_이철우
뉴라이트의 기괴한 역사인식_박한용
민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_전재호
일본제국주의 식민 통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_홍종욱
식민지 근대화론의 통계지표의 허구_황상익
고종, 그리고 일제 강압 속의 조약들_강성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공격은 문제투성이_김창록
쌀을 팔아 다른 소비를 늘렸을 것이라고?_이송순
조선 공업화는 한반도 경제에 무엇을 남겼나_정태헌
한마디로 ‘교육 억제’ 정책이었다_박찬승
도립의원 늘었다고 조선인 의료 혜택도 커졌을까_황상익
조선인 병력 동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_김상규
일본군‘위안부’가 돈 잘 버는 ‘매춘부’였다고?_강성현
왜 항일 독립운동을 언급하지 않는가_변은진
청구권협정과 ‘글로벌 스탠더드’_조시현
독도를 역사적 현실로서 이해하기_허영란
교과서와 역사 사이_김정인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_김헌주
일제와 한몸인 《반일 종족주의》 진영_서승

주석ㆍ참고문헌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역사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어 공감을 얻은 그가 강성의 정치적 경향성을 노정하는 역사의 ‘재정치화’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논란이었다. 이 입법의 바탕을 이루는 친일 청산의 논리를 선악사관으로 매도한 그는 일본군‘위안부’ 동원을 매춘에 비유한 발언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24쪽).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탈민족주의 역사 서술이란 명분을 내세웠다면, 《반일 종족주의》는 그러한 움직임이 민족의 자리에 제국을 올려놓는, 백두산 신화의 자리에 황국신민의 서사를 적어 놓는 허위와 모순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24쪽).

이영훈은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 증거의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거짓말 관련 범죄’(위증죄와 무고죄) 통계를 비교 제시했다. 그런데 이 이영훈의 주장 자체가 거짓말에 기반하고 있다. 장제원에 따르면 이영훈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맥심 코리아》, 《펜앤드마이크》, 《비즈니스 저널》 등 대부분 한국과 일본의 시답잖은 우익 가십 기사나 잡지류에 근거한 것이다. 장제원은 늘 통계를 신처럼 받드는 이영훈의 이 주장은 애초 통계의 ‘누락의 오류’ 또는 지인의 말을 빌려 일종의 화투판의 ‘밑장 빼기’ 같은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27쪽).

이들은 ‘수탈’이란 개념을 마적이나 강도들의 ‘약탈’ 또는 ‘강탈’과 같은 의미로 사용함으로써(경제외적 강제), 그러한 일제의 수탈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사 학계는 그런 ‘원시적 수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정치ㆍ경제ㆍ사법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이러한 식민통치의 시스템과 각종 차별과 그것을 용인하는 실제 현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실현시킨 ‘구조적 수탈’을 지적하는 것이다(36쪽).

1930~1935년 연평균 쌀 생산량은 700만 석이 아니라 약 372만 석 증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경우 증산이 372만 석인데, 800만 석 정도가 일본에 이출된 것이니, 약 430만 석이 추가로 일본으로 유출된 것이다. 쌀의 증산 분량보다 훨씬 더 더 많은 양의 미곡이 일본으로 이출되어, 이 때문에 조선에서 쌀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이 시기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량은 일본인 1인당 소비량의 절반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38쪽).

일제강점기의 농업 개발, 공업 개발, 조선인 인적 자본의 형성 등에서 일제강점기 ‘개발’에 따른 외형적인 성장은 당연히 확인된다. 그러나 그 이면, 즉 경제 개발의 과실이 일본인과 조선인 가운데 누구에게로 돌아갔는가를 분석해보면 실상은 “혜택 없는 개발”에 지나지 않았다(39쪽).

일제 식민지 시기를 경제 성장과 조선인 생활이 향상되었다 보고, 친일파를 근대화의 선각자로 보는 한, 항일운동은 근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만다. 일제가 ‘문명화’에 쓸 돈을 ‘항일세력’이 소모시켰으니, 사...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역사 부정과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말놀이’
뉴라이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들의 학문적 이력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는 이철우 교수의 글에서 적실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어 공감을 얻은, 1980년 진보파 학도들의 ‘큰형님’으로 추앙받던 이영훈은 “젊은 시절 한때 그 혁명에 영혼이 팔려 본 사람”으로 일차 자기 부정을 한다. 여기에 민족차별이 없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한일관계를 주권국가들이 만든 유럽연합EU에 비유한 김낙년, 한국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일본의 일부가 되었기에 승전국도 식민지도 아니어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다는 주익종의 ‘변신’ 등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도그마에 영혼이 팔린 사람의 구차함을 적시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의 배경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수탈’을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는 없었다는 주장으로 주권 없는 민족에 대한 ‘구조적 수탈’에 눈감는 것은 전형적인 ‘말장난’임을 지적한다.

맞다, “사실이 승리한다” 단, 제대로 보면
이 책의 필자들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지엽적인 구절에 매달리거나 맹목적 혹은 국수주의적 입장에 매몰되는 대신 19편의 글을 통해 그야말로 실증적으로 비판한다. 예컨대 강성현(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교수)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의 증언은 무시하고 관련 공문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은 실증사관의 외피를 둘러쓴 억지라고 지적한다. 실증사학에 대한 통렬한 반격이다. 나아가 당시 동남아와 일본의 물가지수 등 통계를 들어가며 ‘고수익 자유 영업’ 매춘부 주장을 일축한다(164쪽~). 《반일 종족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도, 1942년에도 조선인 취학률은 50퍼센트에 못 미쳤다든가 조선의 공업생산액이 8.4배 느는 동안 일본으로 빠져나간 생산재는 100배 이상 폭증했으며, 일제강점기 의료인 수가 꾸준히 늘었다는 통계에는 일본으로 빠져나간 의사 수가 빠져 있다는 ‘통계의 허구’ 등 ‘혜택 없는 개발’의 실체를 짚는다. 청구권협정, 독도 영유권, 특별지원병 문제도 구체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그렇다고 이 책이 무분별한 《반일 종족주의》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한국사 연구를 위한 고언으로 받아들인다. 김헌주 연세대 근대학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226쪽~)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고 꼬집으면서도 ‘반일 종족주의’ 여파를 무시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탈식민의 지향이라며 한국사 연구의 현실을 짚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성소수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인권 문제사, 생태환경사 등을 제언한다.

물론 이 책이 《반일 종족주의》 비판을 위한 우리 학계의 역량과 수준, 방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또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와 한몸”이라며 “이들의 정치ㆍ군사ㆍ경제적 패악과 제도를 포괄하기 위해 ‘친일’ 대신 ‘친일 레짐regime’이 적합한 용어”(서승 우석대 석좌교수)라는 주장도 담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40년의 지성사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작업의 결실이면서 올바른 한국사 연구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