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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하나님의 뜻

Bawoo 2014. 6. 16. 20:39

                                                                               * 하나님의 뜻 *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한다. 성서를 읽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가 나오면 발음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의 계율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신자도 적지 않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시편 83), 캄캄한 데 숨어계시는 분이다(이사야 45).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니,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심쩍기도 하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무한한 존재요 절대타자(絶對他者)인 신을 완전하게 인식할 수 없다. 스페인의 유대교 사상가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선한 분이다’라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적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선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한 분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표현만 가능하다. 마이모니데스의 사상을 부정신학(否定神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간은 신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일 것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는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드세다. 기독교계의 반응도 엇갈린다.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논평을 낸 반면 보수적인 한국교회연합은 “불행한

근대사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섭리 안에서 오늘의 발전을 이뤘다는 뜻”이라고 옹호했다.

기독교 신자들은 세상만사가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다고 믿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小要理)문답 제7항은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하여 자기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작정하신다”고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을 역사의 주재자로 믿는‘하나님 주권’ 사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에 따르는 책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다. 인간의 죄악과 불의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부정하는 운명론으로 흐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소서.” 예수가 가르친 기도문이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고 예정한 뜻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설이나 칼뱅의 이중예정설도 구원의 은총에 관한 것이지 인간과 세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결정론의 거대담론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의 만행은 히틀러의 뜻이었지 신의 뜻이 아니었다. 일제의 침략은 일본 제국주의의 뜻, 6·25 남침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뜻이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악을 신의 뜻으로 돌릴 수 없다. 신은 그 초월적 능력으로도 인간의 죄악과 불의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사람은 신의 뜻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주권’ 사상은 죄와 불의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섭리의 손길을 펴시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선한 뜻을 이뤄 가신다고

믿는 신앙이다. 총리 후보자의 발언도 그러한 취지였을 것으로 본다.

문제의 교회 강연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기독교 장로의 투박한 신앙고백일 수 있다. 그의 발언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거나 남북 분단을 정당화하려는 뜻은 아니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교회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신앙의 고백이 비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존중된다는 보장은 없다.
일제 침략과 남북 분단은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이다. 총리 후보자를 친일파로 몰아가는 일부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역사관을 의심받을 수 있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매우 미숙하고 부적절했다. 특히 위안부 관련 발언이나 대일 배상청구권에 관한 인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정서와도 거리가 멀다. 이 점에 대해 후보자가 진솔한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종교는 ‘근본(宗)이 되는 가르침(敎)’이요, 그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이다.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비종교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행은

종교의 정신에 어긋난다. ‘하나님 주권’의 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총리 후보자는 ‘하나님 주권’의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국민 주권’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무릇, 종교를 가진 공인이라면 언제나 국민 앞에, 조국의 역사 앞에 겸허히 서서 치열하게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

 

                             * 자료 출처 : 6/16일자 중앙일보 35면  '오피니언'- 종교에 관한 해석이 공부할만한 자료로 생각되어 옮겨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