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감상실 ♣/- 서양화

서양화- 김종원

Bawoo 2014. 11. 19. 20:12

김종원 초대展
자작나무_Acrylic on canvas_100x150cm_2014
2014. 11. 15(토) ▶ 2014. 11. 29(토)
서울시 종로구 평창 36길 20 | Tel. 02-396-8744
자작나무_Acrylic on canvas_194x194cm_2012 | 자작나무_Acrylic on canvas_194x194cm_2012
김종원의 자작나무
지적이고 세련된 감각의 ‘자작나무 예찬’
신항섭(미술평론가)
자작나무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 가운데 그림의 소재로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 자작나무는 한반도 중부 이북을 비롯하여 몽골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서유럽까지 널리 분포되어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예로부터 가구 등 일상생활기물을 만드는데 긴요하게 쓰인데다가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빼어나 화가들은 물론이려니와 문학가들에 의해 부단히 찬미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흰색의 모양이 아름다워 하얀 피부의 러시아여성에 흔히 비유되곤 한다. 근래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화가들이 자작나무를 즐겨 그린다. 창의적인 작가들의 창작의 열망을 자극하는 회화적인 요소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김종원은 최근 자작나무에 매료되어 있다. 그 역시 자작나무 고유의 흰색에서 회화적인 영감을 얻었지 싶다. 자작나무를 소재로 하는 여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에서도 흰색의 줄기가 독특한 분위기를 지어낸다. 빛을 받아 실제보다 더욱 빛나는 흰색의 줄기가 영특하게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 그의 자작나무는 그 전체적인 형태보다는 빛을 통해 빛나는 흰색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의미를 두는 듯싶다.
직진하는 햇빛을 받았을 때 자작나무는 고유의 흰색을 증발시킨다. 다시 말해 자작나무 줄기를 덮고 있는 흰색의 껍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감이 사라지고 만다. 대신에 흰색 줄기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의 존재가 남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자작나무에서 보는 흰색은 자작나무 본래의 색깔과는 엄연히 다른 빛의 빛깔이라고 할 수 있다. 자작나무는 간 곳 없이 반사광으로서의 흰색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햇빛이 닿는 부분의 색깔을 반사광, 즉 절대적인 하얀 빛깔로 표현한다. 또한 빛이 닿지 않는 음영 부분조차 고유의 색깔로 표현하지 않는다. 빛이 반사되는 부분 이외에는 자작나무 고유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사광 이외의 음영 부분에서도 자작나무 고유의 흰색은 드러나지 않는다. 빛이 닿는 않아 암부로 인식되는 음영부분에는 자작나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음영의 기운이 지배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작나무의 형태만 그대로 있을 뿐 줄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흰색은 사라지고 만다. 자작나무의 흰색에 이끌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업과정에서 자작나무 특유의 흰색이 배제되고 만다. 그의 작품 가운데 겨울철을 제재로 한 작품의 경우 가장 실제에 가까운 자작나무 색깔을 보여준다. 회색조의 단일색상 계열로 통일된 겨울 자작나무는 직사광선을 받지 않음으로써 줄기가 회색에 가까운 흰색으로 표현된다. 물론 겨울 자작나무도 자연광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까닭에 명암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가장 사실적인, 즉 현실적인 형태 및 색채에 근사하다. 눈이 내리는 계절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하는 겨울의 자작나무 풍경이야말로 실제의 색깔에 가장 근접한다.
a sound_Acrylic on canvas_150x100cm_2011 | a sound_Acrylic on canvas_150x100cm_2011
이와 같은 조형적인 논리에 의해 전개되는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형개념과는 상치하는 점이 적지 않다. 사실주의적인 이미지를 따르면서도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관점이다. 자작나무의 형태만 빌려올 뿐 특유의 흰색은 사라지고 없다. 즉, 사실적인 이미지는 사라진 채 관념적인 이미지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실재하는 나무를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실제와 다른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한다. 따라서 그의 자작나무 그림은 회화적인 환상이자 허상일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자작나무를 에워싸는 공간이 현실상황으로부터 떠나 있다. 이는 애초에 눈에 보이는 사실, 즉 현실적인 공간감을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없었음을 말해준다. 실재하는 자작나무임에도 그 나무가 존재하는 현실적인 공간감을 소거함으로써 관념적인 이미지, 또는 의식의 잔상이라는 형태가 된다. 즉, 실재하는 형태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그의 미의식이 조작해내는 허상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작나무의 형태를 빙자한 미의식의 허상은 실재하는 자작나무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실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미 그의 의식 속에는 현실적인 자작나무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자작나무의 이미지는 그 자신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즉 회화적인 공간에나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작나무는 생동감을 발산한다. 분명히 실제와는 엄연히 다른 회화적인 이미지인데도 생생한 생명의 기운이 감지된다. 빛과 음영의 대비를 극적으로 강조하는 표현기법으로 인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렬해짐으로써 생동감이 증폭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이미지로는 재현적인 표현방법을 따르는 듯싶은데도 세부적으로 보면 전통적인 묘사기법과는 다른 현대적인 기법이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법의 차이가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와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붓을 이용한 구체적인 형태묘사와는 달리 나이프를 이용하는가 하면 뿌리기, 번지기, 긁기, 찍어내기 등 현대회화의 기법이 응용된다. 그러기에 붓으로 시종하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와는 확연히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작업은 작품 하나하나마다 중심적인 색채이미지가 존재한다. 즉, 봄은 연두색, 여름은 녹색, 가을은 갈색, 겨울은 회색을 기조색으로 설정한다. 이는 현실적인 색깔에 얽매이지 않고 자의적인 색채이미지를 통해 주관적인 조형성 및 개별적인 형식미를 성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물론 초기의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적인 시각이 반영되었다. 자작나무가 놓여 있는 주변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가 하면 사실적인 형태 및 색채감각을 따랐다. 가옥의 이미지를 희미하게 표현함으로써 실상으로서의 이미지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선염기법을 통해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하는 등 실제와는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를 표현하는데 관심을 보였다. 최근 작업에서도 가옥의 이미지가 희미하게 오버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점차 주변상황을 소거하더니 가장 최근 작업에서는 덩그러니 자작나무 한그루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마치 초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는 사실주의 미학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주의 형태미를 따르면서도 보다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추구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자작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현실의 나무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재해석한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분명히 사실적이지만 그림으로서의 이미지는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자작나무_Acrylic on canvas_150x100cm
일반적으로 자작나무는 희고 곧게 자라는 나무로 인식되어 있다. 자작나무가 숲을 이룰 때 햇빛을 받기 위해 나무들마다 가지보다 줄기를 키우는데 전념한다. 따라서 희고 매끄럽고 곧게 자란 자작나무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가 그린 자작나무는 줄기는 곧바르지 않고 가지가 무성한 나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조밀하지 않은 비교적 여유 있는 공간에서 자란 나무를 소재로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작나무는 그 형태가 자유롭게 느껴진다. 부대끼지 않은 채 살아온 존재로서의 나무인 셈이다. 물론 두서너 그루가 함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경우에도 다급함이나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다정스러워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느새 나무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의인화된 자작나무의 초상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미술가와 문학가들 또는 음악가들에 의해 찬미되어온 자작나무에 대한,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또 다른 형태의 ‘자작나무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의 자작나무는 자연 상태의 이미지를 벗고 심미적인 관점 및 미적 감각의 옷을 입고 있는 초상화이다. 감각적이면서도 지적이며 세련된 형태미를 보여주는 그의 자작나무는 그림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실제에서 보고 느낄 수 없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다. 현실을 빙자하면서도 조형적인 해석에 의해 실제와는 또 다른 조형적인 환상의 미를 추구한 결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자작나무(white)_Acrylic on canvas_100x200cm_2014
내 작업은 사실적인 화풍이다.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간결하면서 긴장감 있는 형상성과 감성적 화면을 구현하고자 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사실성과 추상성의 조화라 할 수 있으며, 그 추상성이란 부분에서
약간은 성질이 다른 재료나 손에 익은 테크닉을 동원하고 확대된 부분형상과 주제를
접목하고 심상의 색을 표출한 재해석 등으로 보다 더 자유로운 회화공간을 연출하고자
한다.
구상과 추상의 공존은 어떤 정지된 시간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특화된
내면의 메시지를 형상화 하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인체이건 하나의 사물이건
자연의 부분이건 내 범주 안에서 재구성된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주로 수성(수채화&아크릴)재료를 사용한다. 물이라는 용매로
표현되는 독특함이 작업을 자극하고 즐기게 한다. 때론 오일 작업도 하지만 분명히
비교되는 세계가 있다. 물과 일체가 되는 작업은 계속 될 것이고, 나에겐 풍부한 영감의
산실이 될 것이다.
자유로울 수 있으니......
김종원 작가 노트
자작나무 blue_Acrylic on canvas_100x200cm_2014
My work is realistic painting.
Through a variety of material is to implement the emotional screen and short and intense
Shape.
The overall structure is the harmony of realism and abstractions.
Mobilization of different materials and used familiar techniques, combining a magnified
portion of the image and theme, and new direction to representation of the color in mind.
As a result, this will produce more free space of the painting.
The coexistence of abstract and concepts is not a mere representation of the any
Stationary time.
A specific sensitivity to stimuli is to visualize the inside of the message.
Those target the body or a part of nature, whether any of the things within my categories
are restructured.
This is my work is mainly used as an aqueous (watercolor and Acrylic) material.
Uniqueness which is represented by the water wills stimuli my works enjoy.
Sometimes the oil operations, but obviously the world has to be compared.
But that is all the water will continue to work, and it will bring me a wealth of inspiration.
자작나무 green_Acrylic on canvas_100x200cm_2014
자작나무 red_Acrylic on canvas_100x200cm_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