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드보르작

Antonin Dvorak -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

Bawoo 2014. 12. 11. 20:21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Orchestra
in B minor, Op.104
드보르작 /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Antonin Dvorak, 1841~1904
 



Jacqueline Du Pre, cello
Daniel Barenboim,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1. Allegro
2. Adagio Ma Non Troppo
3. Finale (Allegro Moderato)


첼로 협주곡 하면, 하이든, 엘가, 생상의 곡들도 좋지만, 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첼로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보다 더!
드보르작은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던 미국 시절 말년인 1894년에 첼로 협주곡의 작곡을 시작하여 체코로 돌아온 후 작곡을 마무리지었다.
드보르작은 그 자신이 비올라 연주자였기 때문에 현악기에 대해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체코의 대표적인 첼로주자였던 하누시 비안 (Hanus Wihan)과의 교류를 통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곡의 마지막 카덴차 부분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정작 초연은 하누시 비안이 아니라, 영국인 첼리스트 레오 스톤 (Leo Stern)과 런던필에 의해 1896년에 런던에서 이루어졌다. 지휘는 드로르작 자신이 맡았다. 지극히 보헤미안적 감수성이 풍부한데다 조국 체코의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된 곡이 영국에서 영국인에 의해 연주된 것은 아이러니다.
굵고 묵직한 저음 때문에 흔히 첼로를 남성적인 악기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 이유때문에 첼로는 여성이 연주해야 제 맛이 나는 악기 같다. 이 연주의 절대 명반으로 꼽히는 야노슈 슈타커 (Janos Starker)의 음반 대신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의 음반을 고른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 장면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야한 동영상을 몰래 숨어서 보는 기분이랄까? 그녀가 넓게 벌린 두 다리 사이에 첼로를 낀 채, 머리를 뒤로 젖혀가며 연주하는 장면은 오르가즘을 향해 치닫는 여성의 관능미를 한껏 뿜어낸다. 거대한 남근 같은 첼로를 온 몸으로 휘감아 팔과 활로 열정적으로 애무하는 모습. 내 눈에 자클린 뒤 프레는 정말 무대 위에서 첼로와 섹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전기작가 캐롤 이스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놀랐던지!)
재클린은 청중 앞에서 첼로와 사랑을 나눈다고 일컬어졌다. 확실히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성행위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녀의 얼굴에 강렬한 환희와 고뇌의 표정이 떠오르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상하좌우로 흔들며 긴 머리칼을 격렬하게 나부끼는 그 순간에 그녀는 나체를 드러내놓고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청중은 그녀가 창출해 낸 환상에 기꺼이 빠져들었고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는 그녀의 정열을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옆 좌석의 등받이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아쉽게도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연주 동영상들 구할 수 없어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연주 장면을 링크해둔다. 한 번 보시라.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 장면이 얼마나 관능적인지! (이 동영상에는 그녀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이 지휘자로 나온다.)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 Adagio-Moderato
내가 아는 한, 자클린 뒤 프레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3명의 지휘자와 연주하여 음반으로 남겼다.
(1) 1967년에 녹음된 Sergiu Celibidache가 지휘하는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와의 협연,
(2) 1969년에 녹음된 Charles Groves 경이 지휘하는 Royal Liverpool
      Philharmonic Orchestra 와의 협연,
(3) 1970년에 녹음된 남편 Daniel Barenboim이 지휘하는 Chicago
      Symphony Orchestra 와의 협연이 그것이다.
1969년 녹음반은 들어보지 못 했지만, 1967년의 첼리비다케 음반과 1970년의 바렌보임 음반을 비교해본다면, 역시 첼리비다케와의 협연이 훨씬 낫다. 오케스트레이션은 둘째 치고, 첼로 소리에서 훨씬 더 풍부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다. 듣고 있노라면 활이 내 가슴 깊은 곳을 주욱 긁고 가는 느낌이다.
자클린 뒤 프레의 삶은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몇 문장으로 요약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다발성 경화 (multile sclerosis)에 걸려 절정기인 스물여덟에 무대에서 내려와 마흔 둘의 나이에 요절했다.
병든 자클린 뒤 프레를 버렸다는 이유로 비난 받는 그녀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에 관해서도 "매정한 유태인"이라며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박종호 선생님은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에서 이 부분에 관해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홀대 받는 바렌보임을 복권시키기 위해 그의 왕성한 활동들을 소개한 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한다.
아무도 뒤 프레가 죽은 후 그의 심정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만 안타까워 했을 뿐, 어쩌면 가장 슬펐을지 모르는 그 남자 바렌보임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를 아는 어떤 분의 말로는, 바렌보임은 우리의 오해와는 달리 끝까지 뒤프레를 돌보았으며, 그녀가 죽자 진정으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바렌보임이 연주하는 '무언가'를 들어보라. 그 곡에는 행복했던 빛나는 날이 있다. 사랑이 너민다. 그는 정말 사랑했을 것이다. 어쩌면 떠나간 사람보다 살아남은 자가 더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뒤 프레의 역동적인 삶에 대해서는, 그녀의 구술로 쓰여진 '자클린느 뒤 프레 - 예술보다 긴 삶' (캐럴 이스턴 지음 / 윤미경 옮김)을 읽어 봐야 겠다. (출처: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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