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협주곡 하면, 하이든, 엘가, 생상의 곡들도 좋지만, 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첼로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보다 더!
드보르작은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던 미국 시절 말년인 1894년에 첼로 협주곡의 작곡을 시작하여 체코로 돌아온 후 작곡을 마무리지었다.
드보르작은 그 자신이 비올라 연주자였기 때문에 현악기에 대해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체코의 대표적인 첼로주자였던 하누시 비안 (Hanus Wihan)과의 교류를 통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곡의 마지막 카덴차 부분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정작 초연은 하누시 비안이 아니라, 영국인 첼리스트 레오 스톤 (Leo Stern)과 런던필에 의해 1896년에 런던에서 이루어졌다. 지휘는 드로르작 자신이 맡았다. 지극히 보헤미안적 감수성이 풍부한데다 조국 체코의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된 곡이 영국에서 영국인에 의해 연주된 것은 아이러니다.
굵고 묵직한 저음 때문에 흔히 첼로를 남성적인 악기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 이유때문에 첼로는 여성이 연주해야 제 맛이 나는 악기 같다. 이 연주의 절대 명반으로 꼽히는 야노슈 슈타커 (Janos Starker)의 음반 대신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의 음반을 고른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 장면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야한 동영상을 몰래 숨어서 보는 기분이랄까? 그녀가 넓게 벌린 두 다리 사이에 첼로를 낀 채, 머리를 뒤로 젖혀가며 연주하는 장면은 오르가즘을 향해 치닫는 여성의 관능미를 한껏 뿜어낸다. 거대한 남근 같은 첼로를 온 몸으로 휘감아 팔과 활로 열정적으로 애무하는 모습. 내 눈에 자클린 뒤 프레는 정말 무대 위에서 첼로와 섹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전기작가 캐롤 이스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놀랐던지!)
재클린은 청중 앞에서 첼로와 사랑을 나눈다고 일컬어졌다. 확실히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성행위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녀의 얼굴에 강렬한 환희와 고뇌의 표정이 떠오르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상하좌우로 흔들며 긴 머리칼을 격렬하게 나부끼는 그 순간에 그녀는 나체를 드러내놓고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청중은 그녀가 창출해 낸 환상에 기꺼이 빠져들었고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는 그녀의 정열을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옆 좌석의 등받이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아쉽게도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연주 동영상들 구할 수 없어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연주 장면을 링크해둔다. 한 번 보시라.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 장면이 얼마나 관능적인지! (이 동영상에는 그녀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이 지휘자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