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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Bawoo 2015. 2. 5. 12:42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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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르지흐 스메타나(체코어: Bedřich Smetana, 1824년 3월 2일 - 1884년 5월 12일)는 체코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대표작으로 교향시인 《나의 조국》과 오페라인 《리부셰》, 《팔려간 신부》가 있다.[Bedřich Smetana:Czech composer who pioneered the development of a musical style which became closely identified with his country's aspirations to independent statehood. He is thus widely regarded in his homeland as the father of Czech music. Internationally he is best known for his opera The Bartered Bride and for the symphonic cycle Má vlast ("My Homeland"), which portrays the history, legends and landscape of the composer's native land.]

 

생애

스메타나는 보헤미아 북부의 리토미슐에서 1남 17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1]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맥주 양조 기사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배웠다. 4세 때 바이올린을, 6세 때 피아노를 연주하여 신동이란 말을 들었다.

 

19세 때 프라하로 가서 부잣집의 음악 선생을 하며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프라하를 방문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그와 친분을 맺기도 했다.[2] 스메타나는 당초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민중 사이에 저항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식에 눈뜬 그는 국민의용군에 가담하여 국민의용군 행진곡 등을 작곡하였으며,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이 시절 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프라하에 음악 학교를 세우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그의 작품은 과도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서정적인 면이 짙었으며, 보헤미안 민족 음악의 시조로 불린다.

 

그러나 혁명 실패 이후의 반동정치에서는 자유로운 음악활동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친구의 권유로 1856년 스웨덴으로 건너가 5년간 예테보리에서 음악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괴텐보르크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되었다.[2]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와 재회하여 교향시 3편을 쓰는 등[2] 작곡가·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나자마자 귀국하여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휘자·작곡가·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유럽을 순회하여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했다.[2]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假劇場)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팔려간 신부》를 상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 음악의 기초를 확립한 그는, 그해 가을에는 이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여러 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 운동을 음악을 통하여 호소하였다. 18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매독으로 인한 숙환인 환청(幻聽)이 악화되어 극장 지휘자를 그만두었다.[2] 10월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낸 교향시 <나의조국> 중 <블타바(몰다우)>를 작곡하기까지도 했다. 그 후, 그는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교외에 은퇴하였다. 1883년 말부터는 정신착란 증세까지 나타났으며, 1884년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음악

그는 오페라에 민족적 제재를 많이 쓰고 음악에는 폴카·프리안트 등 민족무용의 리듬을 많이 도입하였으나, 국민오페라에서는 민요를 도입하지 않고, 정신면에서 체코적인 요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전념하였다. 또 교향시에는 프란츠 리스트 등 신독일파의 수법을 도입하여 민족적인 음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1874~79년에 〈나의 조국 Má vlast〉이라는 제목을 붙인 6곡의 연작 교향시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에는 〈블타바 Vltava〉(몰다우)·〈보헤미아의 초원과 숲 Z českych luhů a hájů〉, 프라하의 요새 이름을 딴 〈비셰흐라트 Vyšehrad〉 등이 있다. 이무렵에 작곡한 현악4중주 〈나의 삶으로부터 Z mého života〉는 그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876년 〈입맞춤 Hubička〉이 만들어졌으며 〈악마의 벽 Certova stěna〉이 1882년 연주되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유명한 〈팔려간 신부〉·〈나의 조국〉

=================피아노 3중주=============================

계속해서 전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다.

주요 작품

  •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체코어: Má vlast, 마 블라스트)》(1874년-18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음악의 창시자 스메타나가 작곡한 6곡으로 구성된 교향시(1874~79).

    6곡 모두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와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다. 블타바 강은 체크 남쪽 고원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프라하를 지나 엘베 강과 합류하여 독일로 흘러가는 체크의 젖줄이다. 이 곡과 〈나의 조국〉에 포함된 나머지 5곡들(1곡 〈비셰흐라트〉, 3곡 〈샤르카〉, 4곡 〈보헤미아의 목장과 숲에서〉, 5곡 〈타보르〉, 6곡 〈블라니크〉)은 모두 외형상 리스트 교향시의 영향을 보이지만, 민족적인 정취와 이를 바탕으로한 민속 선율·리듬 등에서 구별된다. 이 곡은 〈나의 조국〉 중에서도 가장 선율이 아름답고 친숙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스메타나의 대표작이다.

  • 오페라 《리부셰(Libuše)》(1872년)
  • 오페라 《팔려간 신부(체코어: Prodaná nevěsta, 프로다나 네베스타)》

    스메타나의 최초의 성공작으로 체크의 민속적 줄거리, 민속음악적 리듬, 능란한 인물 묘사 등으로 인해 오늘날 체크 민족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863년 여름 첫 오페라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 Braniboři v Čechách〉을 완성한 뒤에 카렐 사비나로부터 2막짜리 새로운 오페라 대본을 건네받아 1866년 3월 15일 완성했으며, 같은 해 5월 프라하의 체크 지방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팔려간 신부〉라는 제목은 스메타나 자신이 붙인 것이다. 체크 농민의 일상적 삶을 유쾌한 소극 형식으로 다룬 원본을 스메타나 자신이 상당 부분 변경하거나 잘라냄으로써 새로운 진지함이 희극성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인물의 개성도 부각되었다. 초연된 이후에도 공연 때마다 수차례에 걸쳐 수정되었고, 초연 후 4년이 지나 비로소 최종적 형태가 완성되었다.

  •  

  • 《국민의용군 행진곡》
  • 《자유의 노래》
  • 오페라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가의 사람들》
  • 《달리보르》
  • 《두 명의 홀아비》
  • ============현악 4중주곡 1번《나의 생애》===============
  • ========현악4중주 2번====================

주석

  1. 이동 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시공사, p.43, 2004
  2. 이동: 박준용, 《세상의 모든 클래식》 마고북스, 2004, p.172, ISBN 89-90496-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