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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역사

Bawoo 2015. 2. 6. 23:25

이탈리아의 역사
Storia d'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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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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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에트루리아 인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북쪽은 토스카나 지방부터 남쪽은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이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구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전 8세기경에 걸쳐서, 소아시아리디아에서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에 이주(移住)해 온 민족이라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에트루리아인은 스스로를 라스나(Rasna)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로마인은 그들을 투스키(Tusci)라 부르고, 또한 그들이 거주한 지방을 투스키아라고 부른 것이, 현재의 토스카나라는 지방 명칭의 기

에트루리아 문명

원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던 금석문자(金石文字)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어 있지 않은데, 그 대다수는 이 토스카나 지방에서 출토되고, 그 밖의 지방에서는 라티움 지방, 캄파니아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인처럼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도 타르퀴니아 · 키우시 · 베이오 · 체르베테리(카에레) · 아레초 등, 주요 도시는 군사상의 공통적인 이익 때문에 에트루리아 연맹을 조직하여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처음 에트루리아 인은, 토착(土着)의 테라마레빌라노바 문화와 섞여 다시금 페니키아 · 키프로스서아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기원전 7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하여 그리스 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되고, 기원전 6세기 이래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 사실은 에트루리아의 분묘를 비롯하여 각지의 유적에서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항아리가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도 분명한 일이며, 또한 에트루리아인이 항아리에 그린 그림이나 분묘의 벽화의 주제가 그리스적 요소를 다분히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그 영향이 얼마나 뿌리깊게 침투하고 있었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더욱이 향락적인 에트루리아인이 건축·조각·회화·공예 등의 조형 분야에 있어서 특히 뛰어난 독자적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분묘 예술은 그 가장 현저한 증거이다.

 

기원전 280년경의 마그나 그라이키아

마그나 그라이키아(라틴어: Magna Graecia 대 그리스, 그리스어: Megalê Hellas/Μεγάλη Ἑλλάς)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식민화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지역을 일컫는다. 그리스인들은 이 땅에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

 

고대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사회 위기(기근이나 인구 과잉)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상업 판로와 항구를 찾아 고국을 떠나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게 되었다.(Cerchiai, pp. 14-18) 당시 흑해 동부 해안이나 마실리아(마르세유) 등 본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도 그리스 식민시들이 들어섰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도 그리스의 그러한 식민지였다.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 그리스')라고 불렀는데, 이 곳에 그리스인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지리학자들은 이 지역이 시칠리아를 포함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아풀리아칼라브리아 지방만 뜻하는지 이견을 보였다. 스트라보는 넓은 정의를 옹호한 유력한 학자였다.

 

카푸아(Capua), 네아폴리스(Neapolis, Νεάπολις, 나폴리), 시라쿠사(Syracusae), 아크라가스(Acragas), 시바리스(Sybaris, Σύβαρις) 등 여러 신생 그리스 도시들은 매우 부유하고 강력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속하는 다른 도시들로는 타렌툼(Tarentum Τάρας), 로크리스(Epizephyrian Locris, Λοκροί), 레기움(Rhegium, Ρήγιον), 크로톤(Croton, Κρότων), 투리(Thurii, Θούριοι), 엘레아(Elea, Ελέα), 놀라(Nola, Νώλα), 안코나(Ancona, Αγκών), 시에사(Syessa, Σύεσσα), 바리(Bari, Βάριον) 등이 있다.

중세

초기 중세 시대에 고트 족의 침략을 겪은 뒤 비잔티움 제국이 마그나 그라이키아 지역을 느슨하게 지배했다. 성상 파괴를 옹호한 황제 레오 3세는 이 땅에서 로마 교황의 권한이 유효함을 승인했으며[1], 동부 제국은 롬바르드의 침공 전까지 이탈리아 관구의 형태로 이 땅을 엉성하게 지배하다가 나중에 노르만인에게 빼앗겼다. 비잔티움 문화는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eredi ellenofoni)을 통해 이 지역의 문화적 뿌리를 이루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인 주민들은 완전히 라틴화되었고(파이스툼의 경우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라틴화되었다) 더이상 그리스어를 쓰지 않지만 아직도 칼라브리아나 대부분 살렌토 반도에 그리코(Griko)어를 쓰는 소수 집단이 있다. 그리코란 고대 도리아와 비잔티움 그리스어와 이탈리아 언어의 요소를 결합한 언어를 일컬으며, 마그나 그라이키아 지역의 일부 주민들이 쓰고 있다. 그리코어 전승과 구전이 많이 전해오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수천명이 쓰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주변 이탈리아 언어권에 흡수되고 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대한 기록들은 대개 그리스어이며 (비잔티움의 이탈리아 남부 지배가 끝나는) 11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현대 이탈리아

오늘날 약 30,000명의 그리코어 사용자 소수 집단이 칼라브리아와 아풀리아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현대 그리코는 헬레니즘 시대에 지중해에서 널리 쓰인 코이네 그리스어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도리아 그리스어의 일부 요소도 보존하고 있다고 하며, 혹자는 이 언어의 기원이 원래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고대 식민시에서 기원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식민화를 통해 그리스 문화고대 그리스어의 방언, 종교 의식과 폴리스의 전통도 이탈리아에 수입되었다. 원래 그리스 문화가 발달했으나, 이후 토착 이탈리아 문화와 라틴 문명과 교류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문화적 유산은 칼키스쿠마이그리스 알파벳 변형으로, 이것을 에트루리아인들이 받아들였고 나중에 이 고대 이탈리아 알파벳라틴 알파벳으로 진화하여 오늘날까지 세계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