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이네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년 12월 13일 뒤셀도르프 ~ 1856년 2월 17일 파리) 는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괴테와 더불어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다.
생애
1797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가난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문학적 소질을 보였으나, 처음에는 상인이 되려고 프랑크푸르트에 갔으나 실패하였다. 은행가 숙부의 재정적 도움으로 1819년 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문학으로 바꾸었다. 학위를 취득할 때에는 최하위의 성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진로를 문학으로 전환한 것은 졸업한 이후이다. 그의 처녀시집은 1822년에 발표된《시집》(Gedichte)이었으며, 이어서 희곡 《라트리프》,《아르만조르》 또한 탄생하였다. 1824년에는 하르츠 지방을 여행하고 나서 재기 넘치는 《하르츠 기행(紀行)》을 썼다.
슐레겔의 문학 강의나 헤겔의 철학 강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27년 시집 《노래의 책》을 내어 명성을 얻었으며,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에 감동되어 1831년 봄에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독일·프랑스의 신문·잡지에 많은 논문과 평론을 내어 언론인으로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독일 정부의 미움을 산 후 국외 추방 결의로 인해 계속 파리에 머물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논문과 아름다운 시를 썼다. 그가 독일 정부에 의하여 탄압받고 국외 추방 결의를 당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된 작품은 《독일, 겨울 동화》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독일의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였다.
1835년에 독일연방의회의 결정에 의하여 '청년 독일파'의 저서들의 발행이 금지되면서, 하이네도 활동면·경제면에서 타격받았다. 소설 《피렌체 야화(夜話)》는 이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그는 1841년에 오랜 애인이었던 마틸데와 결혼하였고, 1844년에는 당시 파리에 와 있던 카를 마르크스와 친교를 맺었다.
말년에는 프랑스에 계속 머물면서 작품 활동과 언론 활동을 지속하였는데, 이 시기에 《로만체로》, 《루티치아》등의 작품을을 남겼다. 1848년에 성병의 일종으로 보이는 병이 신경계통을 서서히 침범해 '침대 생활' 속에 갇히게 되었으며,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척추경련으로 말미암아 사지가 뒤틀리며 부분적으로 눈이 멀게 되기도 하였다. 1851년에 걸작 《이야기 시집》을 남기고 사망하였으며, 사망 후에는 몽마르트 묘지에 매장되었다.
작품 경향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인 《노래의 책》(1827)에는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가 스스로 의문을 품고 회의하는 모습이 들어있다. 이외의 초기의 작품에는 숙부의 두 딸들에 대한 사랑의 경험을 토대로 씌어졌다. 그는 처음에는 낭만파에서 출발하였으나, 유대인에 대한 차별 의식과 7월 혁명의 현실에 의해, 2개의 분열된 요소가 항상 그를 지배하였다. 그리하여 달콤한 낭만적 색채 속에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냉소가 숨어 있고, 열렬한 애국심의 이면에는 편협한 독일 사람에 대한 반항심이 불타고 있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랄한 풍자 정신을 발휘했다.
작품으로 《로만파》, 《독일 겨울 이야기》, 《파우스트 박사》, 《아타 트롤》, 《로만체로》 등이 있다. 특히 《아타 트롤》은 격조 높은 풍자 서사시로 바이런과 함께 문학사에서 특이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시집 《노래의 책》과 《로만체로》이다. 이 두 책은 하이네의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독일적이며 가장 서정적인 것이 《노래의 책》이라면, 이야기체 시로 많은 역사 속에 숨겨진 음험한 음모를 재미있게 파헤치고 있는 것이 1851년에 쓰여진 만년의 대작 《로만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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