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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Mary Shelley)

Bawoo 2015. 3. 17. 23:38

메리 셸리(Mary Shelley)
리처드 로스웰이 1840년에

 그린 메리 셸리의 초상화

메리 셸리(Mary Shelley, 혼전이름: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Mary Wollstonecraft Godwin, 1797년 8월 30일 ~ 1851년 2월 1일)는 영국소설가·극작가·수필가·전기 작가이자 여행 작가이다. 그는 또한 낭만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남편 퍼시 비시 셸리의 작품을 편집하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 철학자이자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부부의 딸이다.

 

메리 고드윈은 고작 생후 11일에 모친을 여의었는데, 이후 배다른 언니인 패니 임레이와 함께 부친의 손에서 자라났다. 메리가 네 살 때, 부친 윌리엄 고드윈은 그의 이웃 메리 제인 클레어몽과 결혼했다. 고드윈은 딸에게 자금·학술·교육 면에서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그가 그의 자유주의 정치 이론에 동참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814년에 메리 고드윈은 부친의 정치적 추종자 중 한 사람, 나중에 남편이 되는 퍼시 비시 셸리와 연애하기 시작한다. 메리의 배다른 자매 클레어 클레어몽과 함께 이 둘은 프랑스로 떠나 유럽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들이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메리는 퍼시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이 후 2년 동안, 그와 퍼시는 도편 추방과 계속된 자금난을 겪게 되고, 이 와중에 뱃속의 딸을 유산하였다. 퍼시 셸리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해리엇과 사별한 뒤, 이 둘은 1816년 말경에 혼인하였다.

 

1816년, 부부는 바이런 경존 윌리엄 폴리도리, 클레어 클레어몽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 근방에서 여름을 보낸 것으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메리는 그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큰 틀을 구상하였다. 셸리 부부가

1818년에 영국을 떠나 자리잡은 이탈리아는, 그들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 넷째 아이 퍼시 플로렌스를 낳기 전, 둘째와 셋째 아이를 잃은 곳이다.

 

1822년에 그의 남편은, 라스페치아 근해에서 항해 중 폭풍을 만나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여 익사하였다.

1 년 뒤 메리 셸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이 때부터 그의 여생을 아들의 양육과 전문 작가로서의 활동에

헌신하며 보냈다. 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십 년을 지루한 투병생활로 보냈는데, 그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사람들은 뇌종양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1970년대 까지의 메리 셸리는 주로 남편 퍼시 셸리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 참여한 공로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많은 희곡과 영화로 재구성되고 있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다. 최근에서야 학계는 메리 셸리가 남긴 자료를 조금 더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치를 인정하였다.

 

문단에서는 점차 그의 집필 자료들, 특히 역사소설 《발퍼가》(1823)와 《퍼킨 워벡의 행운》(1830), 묵시소설 《최후의 인간》(1826),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두 소설 《로도어》(1835)와《포크너》(1837) 등, 그가 남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기행문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1844)과 다이어니셔스 라드너의 전기문인 《잡동사니 백과사전》(Cabinet Cyclopaedia)(1829~46) 등 그의 덜 알려진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메리 셸리의 생애 전반에서 정치적 급진주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평가를 뒷받침한다. 메리 셸리는 종종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가정에서나 보여주던 협력과 조화로 시민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선은 부친 윌리엄 고드윈으로부터 물려받은 계몽주의 정치론과 남편 퍼시 셸리의 조력에 기인했으며,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낭만주의의 품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저서

  • 프랑켄슈타인》(1818)
  • 보리스 칼로프의 프랑켄슈타인 괴물 역할 사진.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메리 셸리가 과학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한 괴물에 대해 쓴 소설이다. 첫 판은 1818년에 런던에 익명으로 출판되었다가 1823년에 프랑스에 그녀의 이름으로 두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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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의 인간》(1826)
    표지

     

  • 최후의 인간(The Last Man)》1826년 2월에 메리 셸리에 의해서 쓰여진 21세기말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이다. 저자의 아는 사람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 반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당시는 혹평되어 재평가를 받은 것은 1960년대가 되고 나서였다.

     

    1818년, 작자인 메리 셸리는 없어진 시빌라의 책의 단편을 우연히 나폴리 근교에서 발견했다. 거기에 쓰여져 있던 미래의 인류의 운명에 관한 기술을 일인칭 시점에서 다시 말한 것이 본편이라는 설정이

  •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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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말, 주인공 라이오넬은 에이드리안이나 레이몬드 경과 알게 되어, 교류가 깊어지고 있었다. 그 정면, 그리스·터키 전쟁이 일어나, 레이몬드 경은 그리스측의 지휘관으로서 싸워, 그리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후, 레이몬드 경은 급사한다.

    그 무렵부터 수수께끼의 역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역병은 인간을 죽어 이르게 하지만, 다른 동식물에는 일절 피해가 없는 기묘한 것이었다. 역병에 의해서 인구는 격감했다. 에이드리안은 남은 인류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지만 역병의 맹위는 멈추지 않고, 영국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로 이동하지만, 마침내 남은 것은 라이오넬, 에이드리안, 레이몬드 경의 딸의 세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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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명은 그리스에 건너려고 아드리아 해의 항해중에 폭풍우에 휩쓸려 라이오넬 홀로 표착했다. 라이오넬은 최후의 인간(The Last Man)이 되어, 지금까지의 기록을 썼다.

    그것이 우연히 발견된 시빌라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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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라이오넬 바니의 모델은 저자 메리 셸리다. 또, 주인공의 친구 에이드리안은 남편 퍼시 비시 셸리, 에이드리안과 주인공의 공통의 친구인 레이몬드경은 바이론을 모델로 하고 있다.

    사실에서는 바이론은 그리스 독립전쟁 안에 병사, 셸리는 요트의 사고로 익사, 메리는 아들 파시 후로렌스와 함께 남겨졌다. 소설의 인물들도 이에 유사한 전개를 맞이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그들의 생애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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