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감상실 ♣/ 영화 이야기

[조휴정PD의 Cinessay] 내부자들

Bawoo 2015. 12. 16. 20:48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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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출세하라..어려서부터 참 많이 들은 말인데 어떻게해야 출세를 하는건지 반백년을 살아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면 모든게 될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서 문 하나를 여니, 질문이 바로 들어옵니다. ‘너의 족보는 뭐냐?’ 고향, 집안, 출신학교, 공채여부, 인맥, 정치성향을 묻고 성골, 진골, 해골, 보이지 않는 도장이마에 꽉 찍어줍니다. 물론, 가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이 되기까지는 인정사정없는 욕망의 가속페달을 밟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럴 배짱도 야망도 없습니다. 그저, 돼지고기 실하게 들어간 김치찌개소주 한 잔이면 족하고 내 어깨에 기대어 사는 가족들 생각하며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데 가끔씩은 내 밥그릇을 걷어차거나, 밥을 주겠다며 죽도록 일만 시켜놓고 밥그릇마저 빼앗아가는 ‘힘있는 분’들을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우민호 감독, 2015)의 안상구나 우장훈처럼 ‘이에는 이’식으로 맞설 수도 없기에 사실, 이 영화는 불편하고 허무하고 정신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웃어넘길수만은 없는 이 찜찜한 기분은 뭘까요?

영화의 스토리, 구성은 익숙합니다. 재벌-정치인-언론인-법조인-조폭...우리 사회에서 여러모로 ‘힘’을 갖은 자들이 서로서로 봐주고 배신하고 협업하며 사는 이야깁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대권주자 장필우(이경영)는 돈줄을 쥔 재벌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습니다. 재벌도 자신의 금고를 지키기 위해 정치인에게 확실한 투자를 합니다. 연예기획사 사장이며 조폭인 안상구(이병헌)는 정치인, 재벌에게 이모저모 쓸모가 많습니다. 안상구 역시 그들에 빌붙어 몸을 불려나갑니다. 유력 언론인 이강희(백윤식)는 이 모든 욕구들을 총지휘하는 감독을 자처합니다. ‘보기 힘들다’ ‘보여진다’ ‘매우 보여진다’의 차이로 여론을 주무르는 능구렁이 이강희의 대사 한마디한마디는 음습하고 범죄적입니다. 그런데 여기 난데없이 지방대학을 나온 경찰출신검사 우장훈(조승우)이 나타납니다. 우장훈은 소위 ‘족보’가 없다보니 늘 승진에서 밀려 마음이 조급합니다. 장필우의 불법정치자금수사라는 ‘기회’를 만난 우장훈은 정의의 초심과 야망이 합쳐져 ‘너무’ 앞서나가다 조직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역시 분수를 모르고 더 큰 꿈을 꾸다 모든 것을 잃게 된 안상구와 묘한 협력관계를 이룬 우장훈은 ‘내부자’가 되어 악의 축인 정치인과 언론인을 쓰러뜨린다는 이야긴데, 결말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긴 합니다.

 

이 영화에서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습니다. ‘대중은 개 돼지와 같아서 짖다가 말겁니다’ 라는 이강희의

대사와, 조직에서 내쳐진 우장훈에게 선배검사가 일갈하는 대사입니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 아니면 잘 태어나던가!’ 기분나쁜 대사인데 자꾸 ‘잘 태어나지 못한 개 돼지’에 내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런데 더 씁쓸한건, 짖어본 적도 없었다는 겁니다.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행복이 온다던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조상무(조우진)의 말대로 하라는 것만 하면서 얌전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다시한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고하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클수록 골도 깊을걸 알기 때문이겠죠. 높이 올라가면 내려올 때 힘듭니다. 등반사고는 하산시에 더 많이 일어나고 해는 생각보다 빨리 집니다. 

KBS 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