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미술]
Sistine Madonna (1512) . Raffaello Sanzio da Urbino .라파엘로 ‘시스틴 마돈나’ (나무에 유채, 265x196cm, 1513년 경, 드레스덴 회화미술관).
Detail, Sistine Madonna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명화 속 푸토
연초에는 다들 새해 소망을 품고 시작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새해가 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부분도 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내 얼굴의 주름도 늘기 때문이다. 영원한 젊음은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소원해왔던 것이다.
1월, 명화 속 푸토(putto)의 모습에서 ‘영원한 젊음,즉 사랑’을 만나본다.
작고 사랑스러운 천사, 푸토
사람은 천성적으로 연약한 대상에 대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다. 동정심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아기를 그린 그림에서 우리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이렇듯 아기 이미지가 사랑을 받다 보니 화가들은 정감이 넘치는 그림을 그릴 때 곧잘 아기들을 그려 넣곤 한다.
서양미술사는 이렇게 그려진 귀여운 아기들에게는 ‘푸토’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푸토(Putto, 복수형은 Putti)는 엄밀히 말해 아기들 가운데 날개가 달린 존재만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단순한 아기가 아니라 뭔가 신비하고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서양화에 등장하는 날개가 달린 아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천사와 에로스다.
그러므로 푸토는 기독교 문명과 그리스·로마 문명, 이 양대 수원지에 젖줄을 대고 있다 하겠다. 푸토의 또 다른 이름이 아모레토(Amoretto)인 것에서도 우리는 그 생성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아모레토는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에로스의 라틴어 이름이 바로 아모르다.
푸토의 어원은 라틴어 푸투스 (Putus)로 ‘작은 사람’이라는 뜻을갖고 있다. 작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들이 바로 푸토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천사는 보통 한 쌍의 날개를 단, 잘생긴 성인남녀로 그려진다. 그러나 서양미술은 이 같은 전형적인 천사상과는 다른 천사상을 창조했다. 바로 아기천사다. 비록 성경 어디에도 아기천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화가들은 천사의 이미지를 좀 더 사랑스럽게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까닭에 아기천사의 존재는 서양화가들이 창조해낸 허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사는 순수한 존재이고 그 순수함을 반영하는 데에서 아기만큼 적절한 대상도 없어 아기천사의 존재는 매우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질 수 있었고, 나아가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천사상이 되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틴 마돈나’
아기 천사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틴 마돈나’에서 우리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사상을 만나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두 사람의 성인이 성모자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성모자의 거룩한 현현을 찬양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천사는 맨 아래쪽에서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천진난만한 천사는 워낙 유명해 유럽의 달력이나 엽서, 관광상품에 단골로 이용되는 이미지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사실 두 천사가 그림에 들어감으로써 ‘시스틴 마돈나’ 는매우 푸근하고 생기 넘치는 그림이 되었다. 만약 두 천사가 빠졌다면 ‘시스틴 마돈나’는거룩하고 경건한 느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경직된 작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잊어버린 꼬마인 것 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가히 놀고 있는 이들 아기 천사로 인해 그림은 그만큼 넉넉하고 재미있어졌다. 이렇듯 아기천사는 어디를 가나 늘 평화와 행복을 안겨준다. 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Madonna on Floral Wreath, together with Jan Brueghel the Elder, 1619 Peter Paul Rubens
루벤스‘ 화환과 푸토에게 둘러싸인 성모자’(나무에유채, 185x210cm, 1618~ 1620년경,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Peter Paul Rubens und Jan Bruegel d. ?., Madonna im Blumenkranz, Ausschnitt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화환과 푸토에게 둘러싸인 성모자’
아기천사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 작품 가운데 루벤스의 ‘화환과 푸토에게 둘러 싸인 성모자’도 유명한 걸작이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꽃이 둘러쌌다. 그리고 꽃 주변으로는 아기천사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다. 통통한 몸매의 아기 천사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가서 한번 꽉 껴안아주고 싶을정도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운데의 성모와 아기 예수는 실제 사람이 아니다. 둘레에 액자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성모와 아기 예수는 그림으로 그려진 존재다. 그러니까 성모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천사들이 꽃다발을 가져와 그 주위에 두른 것이다.
실제 성모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처럼 그림 속의 성모와 아기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천사들에게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아마 아기 천사들은 자신들과 같이 어리고 착한 아기 예수가 매우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림 속 아기 예수의 모델은 루벤스의 둘째 아들 니콜라스다. 자신의 아들이 아기 예수처럼, 천사처럼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크기를 바라서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이그림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루벤스에게는 아들이 천사 같았다.
참고로, 꽃 부분은 루벤스가 직접 그리지 않고 화가 얀 브뤼헐(Jan Brueghel)에게 부탁해 그리도록 했다. 브뤼헐은 꽃을 그리는 데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던 화가다.
The Wounded Angel, 1903, voted Finland's "national painting" during 2006 / Hugo Simberg
짐베르크 ‘부상당한 천사’ (캔버스에 유채, 127x154cm, 1903, 헬싱키 아테네 우민타이데무세오).
후고 짐베르크의 ‘부상당한 천사’
서양미술 속의 아기천사들은 대체로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이지만, 가끔 슬프고 불 한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핀란드 화가 후고 짐 베르크가 그린 ‘부상당한 천사’가 그런 그림이다. 부상당한 천사.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천사는 지금 머리가 깨져서 흰 천으로 머리를 감쌌다. 날개도 꺾여있다. 꺾인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져 하늘을 나는 것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건만 천사는 지금 날기는 커녕 걷지도 못하고 있다.
어린이 두 명이 불쌍한 천사를 치료할 곳으로 나르고 있다. 그 어린이들도 천사가 다쳐서 마음이 무척 아픈 것 같다. 뒤쪽의 어린이는 슬프다 못해 화가 나있다. 그림 바깥을 향하여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눈빛. 눈빛에는 ‘제발 우리에게 너무 무거운 부담을 지우지 마세요’하는 항의가 담겨있다. 부상당한 천사는 어른들의 지나친 기대에 큰 상처를 입은 어린이의 모습을 상징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면 천사같다고들 한다. 그렇게 천사처럼 예뻐하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어린이들에게 떠맡기곤 한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으로 인해 어린이가 영혼에 상처를 입어도 어른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다친 천사를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돌봐주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천사 노릇하기가, 또 어린이 노릇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위로하는 모습이 대견하고도 애처롭다.
The Torch of Venus - Pierre-Paul Prud'hon
프루동과 콩스탕스 마이어 ‘아프로디테의 횃불’ (캔버스에 유채, 100x148cm, 1808, 샹티 콩데 미술관).
Pierre Paul PRUD'HON - Le flambeau de V?nus / detail
사랑의 아기 신, 에로스
천사와 더불어 푸토의 또 하나의 축인 에로스는 널리 알려졌듯 사랑의 아기 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쿠피도(영어 큐피드)라고도 하는 이 아기 신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에로스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같은 사랑의 신이지만, 아프로디테보다 사랑의 불가측성, 광기 따위를 더 잘 드러내는 존재다. 제 아무리 사랑의 광기가 잔인하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괴물 같은 신에게 이를 맡기지 않고 아기에게 맡긴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랑은 본질적으로 영원히 아름답고 긍정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에로스가 서양화 속에서 가장 많이 맡은 배역은 무엇보다 남녀의 머리 위를 벌처럼 붕붕 배회하거나 주변에서 노니는 것이다. 이렇게 에로스가 등장하면 그 그림의 주제는 무조건 사랑과 관련된 것이 된다. 에로스는 일단 사랑을 환기시키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 이야기에 에로스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나, 그 역할이 단순히 그림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것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랑과 관련해 섬세한 메시지를 그는 자신의 소지물과 제스처를 통해 드러내 보이곤 한다. 그 대표적인 소지물이 활과 화살이다.
에로스는 금촉 화살을 쏘아 사랑을 유발하기도 하고, 납촉 화살을 쏘아 사랑을 깨기도 한다.
에로스가 횃불을 들고 나타날 때도 있는데, 이때는 지금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 사랑에 몸이 뜨겁게 달아 올랐음을 의미한다. 에로스가 눈을 천으로 가리고 나타나면 이는 맹목적인 사랑, 혹은 사랑이 초래하는 죄, 어두운 측면 따위를 시사한다. 에로스가 나무그늘 같은 데서 잠이 들어있다면 이는 지금 사랑이 깨지고 있거나 주인공 중 한 사람이 다른데 마음이 쏠려 있음을 뜻한다.
프루동과 콩스탕스 마이어의 ‘아프로디테의 횃불’
에로스의 소지물로 곧잘 그려지는 사랑의 횃불은 원래 아프로디테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두신은 이 횃불을 공유하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프루동이 콩스탕스 마이어와 함께 그린 ‘아프로디테의 횃불’을 보면, 아프로디테는 횃불을 든 채 앉아 있고 에로스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조그만 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 다. 이렇듯 사랑의 횃불은 성화가 릴레이되 듯 에로스의 도움으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끊임없이 이어준다.
‘아프로디테의 횃불’에서 횃불 말고 우리의 주목을 끄는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배경의 에로스들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표정과 제스처다. 맨 오른쪽의 에로스는 눈을 가린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간다. 맨 왼쪽의 두 에로스는 사색을 하거나 고뇌에 잠겨있다. 가운데 쯤에는 매우 즐거워하는 에로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 에로스는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고뇌 등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에로스가 신화와 달리 남자아이뿐 아니라 여자 아이로도 표현돼있는 것이 매우 이채롭다.
에로스가 있는 곳은 이처럼 늘 푸근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넘쳐 흐른다.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우리는 이 귀여운 장난 꾸러기 푸토들을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l'Amour captif, Wallace Collection. Fran?ois Boucher Cupid a Captive. 부셰 ‘포로가 된 에로스’ (캔버스에 유채, 167.6 x 86.4cm, 1764, 런던 월레스 컬렉션).
프랑수아 부셰의 ‘포로가 된 에로스’
화살을 쏘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으로 에로스를 표현한 유명한 걸작 가운데 하나가 부셰의 ‘포로가 된 에로스’다. 이 작품은 여신 아르테미스의 님프들에게 붙잡혀 곤경에 빠진 에로스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뒤의 님프가 화살통을 빼앗고 오른쪽의 님프는 장미 다발로 에로스를 묶는다. 에로스가 장난으로 화살을 마구 쏘아 댄 덕에 얼마나 많은 남녀가 사랑의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했던가.
처녀성을 소중히 여기는 아르테미스의 님프들이 이 개구쟁이 에로스를 가만둘 리가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장면은, 왼쪽의 처녀가 호기심에 겨워 에로스의 화살촉을 만져보고 있는 것인데, 그게 얼마나 심각한 아픔을 자신에게 가져올지 잘 모르고 있다. 이렇듯 적대적인 세력에게 잡혀 포로가 된 에로스는 지금 위기 중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우리는 심각한 갈등이나 분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아기와 벌이는 다툼이니 심각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로스가 있는 곳은 이처럼 늘 작은 소동과 더불어 사랑과 행복이 넘쳐 흐른다.
글 이주헌
글쓴이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아트 스토리텔러’로 활동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일간지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를 거쳐 학고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을 지냈다. 미술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닌 미술을 통해 문명과 삶을 보고, 사람들이 그 과정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미술로 보는 20세기>, <클림트>, <명화는 이렇게 속삭인다> 등 다수의 책을 펴냈고, 한국교육방송(EBS)에서<이주헌의 미술기행>, <청소년 미술감상>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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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 Sistine Madonna
After Peter Paul Rubens. The Virgin with standing Child. 1614-1649. oil on panel. 62.5 × 49 cm (24.6 × 19.3 in). Hanover, Nieders?chsisches Landesmuseum.
Triumph of Galatea, 1512, his only major mythology, for Chigi's villa. / Raphael
Amor and Venus 1614 / Peter Paul Rubens
Pierre-Paul Prud'hon The Noon. "
Venus consolant l'Amour Fran?ois Boucher
Fran?ois Boucher - 'Putti with Birds'
Madonna Enthroned with Four Saints ROSSO FIORENTINO,
Rosso Fiorentino. Detail of putti from 'Madonna Enthroned with Four Saints' 1518
Artist Title Le flambeau de V?nus Date 1808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Height: 99.5 cm (39.2 in). Width: 148 cm (58.3 in). / Constance Mayer
The Torch of Venus
Artist: L?opold Flameng (French (born Belgium), Brussels 1831?1911 Paris)
Artist: Pierre Paul Prud'hon (French, Cluny 1758?1823 Paris)
http://metmuseum.org/collection/the-collection-online/search/398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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