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가와나베 교사이, 39교사이낙화(曉齋樂畵)39, 1874년. 일본이 큰 변화에 휩싸여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
이 작품을 제작한 이는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曉齋)다. 그는 전통 일본화를 공부했지만 점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화풍을 지향했다. 격식을 무시하고 과장된 표현을 섞은 캐리커처에서 그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일본 문화사를 통해 특징적으로 발달한 ‘망가(漫畵)’의 선구자였다고 볼 만하다.
그림 1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림이 묘사하는 것은 지옥이다. 털북숭이 인물은 다름 아닌 염라대왕인데, 난처한 표정을 한 채 머리털이 잘리고 있다. 그 앞으로 염라대왕이 벗어놓은 붉은색 도포를 집어 드는 이가 있고, 반대쪽에는 서양식 옷차림을 한 노파가 염라대왕을 위해 양복과 신사 모자를 들고 이발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
[흑선, 함포사격으로 무력 시위]
왼편의 저울은 저승에 온 자가 생전에 지은 죄의 무게를 재는 도구이며, 그 아래에서 불타고 있는 문서들은 죄상을 기록한 자료다. 괴물들은 염라대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을 텐데, 이제는 뿔을 제거당하고 있고 염라대왕과 마찬가지로 전통 복장 대신에 서양 옷을 강제로 착용당하고 있다. 괴물들 가운데 일부는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뿔 잘린 볼품없는 자신들의 얼굴만 확인할 뿐이다. 죽은 자의 생전 행동을 보여주는 업경(業鏡)으로 몸뚱이조차 양복에 가려져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화가는 지옥도를 희화화함으로써 자신이 살던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때는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가 서구화를 빠르게 추진하던 시절이었다. 전통적 풍습을 서구에서 도입한 새 풍습으로 교체하는 제도들이 우후죽순 마련됐다. 예를 들어 1871년에는 앞머리를 밀고 후두부에 상투를 트는 존마게(丁<9AF7>)라는 전통적 머리 모양이 금지됐다. 1876년에는 군인과 경찰을 제외하고는 검을 차고 다니는 것이 불법화됐다. 그림 1은 서구화라는 급류에 휩쓸린 일본 사회를 비유했다. 뿌리 깊은 전통적 가치가 하루아침에 버려지는 상황, 그리하여 본연의 몸체와 기록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화가는 조롱하고 있다. 화가가 당시의 변화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반세계화’주의자였는지, 아니면 다만 변화와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 ‘대안 세계화주의자’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얼마나 급속한 전환기를 겪고 있었는지를 그림 1이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책 -비주얼 경제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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