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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소설] 김강사와 T교수 - 유진오

Bawoo 2016. 2. 18. 20:00

김강사와 T교수-유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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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거 리 >

김만필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다. 그러나 그는 취직난이 심한 때에 졸업을 한 탓으로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에 와 있는 관리 H과장의 주선으로 일본인 S전문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된다. 그는 남에게 알려지면 별로 좋지 않은 학생 때의 전력이 있다. 학생 때 그는 좌익 학생운동 단체인 문화비판회에 관계한 적이 있었다. 사상운동의 전력이 있는 자는 당시 사회에 잘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가 부임한 S전문학교는 분위기가 상당히 딱딱했다. 거기에다 처음 근무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김만필은 아주 서먹서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친절하게 접근해 오면서 대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T교수였다. 그는 김만필에게 이 학교의 학생들은 매우 질이 좋지 않으니까 주의하라는 둥, 그 가운데서 스즈끼, 야마다, 가도란 자가 특히 문제라는 둥, 여러 가지 충고를 해준다. 김만필은 그가 매우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김만필은 취직에 힘을 써 준 H과장을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그 대문 앞에서 T교수와 마주쳤다. 그는 보퉁이를 들고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하녀와 이야기하고 나왔고 김만필은 그런 그의 행동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H과장 집에서 나오게 되자 T교수는 김만필에게 차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세르팡’이라는 찻집에서 마주앉자 그는 김 강사가 작년 어느 신문에 원고료를 탈 목적으로 쓴 ‘독일 신흥작가군상’이라는 논문을 아주 좋은 글이었다고 칭찬을 한다. 김만필은 그의 그런 말에 아주 기분이 나쁘다. 그 글의 내용은 독일의 좌익 작가를 다룬 것이었다. 따라서 그로서는 학교가 그걸 알아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T교수는 그의 집 주소까지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김만필은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는 또한 같은 독일어 선생인 C를 주의하라고 일러준다. 김 강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느 일요일 스즈끼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학생들이 패기가 없고 안일주의에 빠져 있다고 분개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문화비판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 강사는 적지 않게 그를 경계하면서 그런 말의 출처를 알아본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것이 T교수의 입에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스즈끼는 김 강사에게 독일문학연구회 모임을 조직하였으니 지도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 강사는 그에게 불안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가자 김 강사는 차츰 학교 내의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학교는 교장과 T교수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물리학의 S교수, 독일어의 C강사 등이 한패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세모 대매출’의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다가왔다. T교수가 과자 상자나 사 가지고 교장을 찾아가라고 김강사에게 일러준다. 그 말에 김강사의 심경은 더욱 착잡해진다. 그는 일단 과자 상자를 사 들기는 했다. 그러나 끝내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것을 어떤 일가 아주머니에게 주어 버린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나가게 되자 김강사는 더욱 피곤을 느낀다. 그에 반해서 T교수는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하게 흐르고 아주 신수가 좋아진다. 겨울 이후로 그는 한국 민속을 연구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 들을 뻔질나게 물고 다닌다. 그 속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가 H과장이 만나잔다고 전한다. 김 강사는 무슨 이유일까를 생각하면서 H과장을 찾는다. H과장은 평소의 온후하던 모양을 일변시키며 독살스러운 눈으로 자기를 속였다고 야단을 친다. 김 강사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그 때 이읏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언제 보아도 봄 물결이 넘실거리듯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T교수였다.

 

< 해 설 >

이 소설은 지식인 소설의 전형이다. 나약한 지식인이며 자아와 과거의 신분을 속이며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된다. 그는 ‘책상물림’이며 창백한 지식인의 유형에 속하는 김만필이다. 그는 세속적인 요령을 피울 줄 모르며, 지난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현재 생활에 대한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살아가는 가녀린 양심의 소유자다. 그에 비해서 교활하고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인 T교수가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첨이나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대조시킴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생활의 한 단면을 제시하려 했다. 마치 전광용의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와 흡사하다.

 

<이해와 감상>

‘김만필’이란 한 식민지의 지식인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와 함께 당대 현실의 부조리, 속물적인 인간의 속성을 제시하면서 지식인의 내면적 취약성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는 일명 지식인 소설의 전형이다. 나약한 지식인이며 자아와 과거의 신분을 속이며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된다. 그는 '책상물림'이며 창백한 지식인의 유형에 속하는 김만필이다. 그는 세속적인 요령을 피울 줄 모르며, 지난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현재 생활에 대한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살아가는 가녀린 양심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에 대해서 교활하고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인 T교수가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첨이나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대조시킴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생활의 한 단면을 제시하려 했다.

 이렇게 이 소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 사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S 전문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대학을 갓 졸업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책상물림인 김만필이 시간 강사로 취직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것이다. 김 강사는 현실에 적응하려다 결국 실패하는 지식인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 준다.

 김 강사의 패배의 원인은 첫째로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김 강사는 일제의 체제하에서는 용납 받을 수 없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일이 있다. 그래서 김 강사는 불안해 한다. 그는 인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식 계급이란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중 사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에 현황(眩恍)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이것은 일제 치하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표현해 준 말이다. 지식인 문제를 다룬 소설은 실직(失職)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소설은 지식인이 어떻게 지식인답지 못한 모습으로 처세하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얼마나 무력하게 사회 현실에 휘말리는가를 부각시켜 주고 있다. 주인공은 역사 의식이나 사회 의식이 부족하여 이에 대처할 줄을 모른다.

 

 둘째로 김 강사가 패배한 원인은 인물의 성격에 있다. 김만필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려 하지 않고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 교수이면서 약사빠르고 비굴한 성격을 가진 T교수에 의해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김 강사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결국 김 강사의 행동은 파국에 이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지식인들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형상화하지 못하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것은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제약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진오(兪鎭午 1906-1987) 소설가. 법학자. 서울 출생. 호는 현민(玄民).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재학 때부터 문우회를 조직하여 활동. 이 무렵 그는 이효석과 함께 카프에 가입하지는 않은 채 프로 문학의 입장을 취하여 ‘동반자 작가(同伴者 作家)’로 불림. 1927년 “스리”를 <조선지광>에 발표하고 등단. “오월의 구직자”, “김 강사와 T교수” 등은 지식인이 당면하는 정신적 갈등, 또는 가난에 허덕이는 하층민의 삶을 주로 그리고 있으며, “어떤 부처”, “치정” 등에는 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급으로 일하는 주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 “창랑정기”, “화상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