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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야나체크의 뜨거운 사랑이 담긴 ‘비밀 편지’

Bawoo 2016. 5. 24. 20:25


작곡가들도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할 뿐 아니라 사랑이 작품 속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작곡가들의 사랑은 때로는 자기만 아는 것으로, 때로는 상대방을 포함한 두 사람만 아는 기호나 선율로 작품 속에 녹아듭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온 세상이 다 알 정도로 ‘떠들썩한’ 사랑 고백이 명곡으로 탄생합니다.

지난해 봄에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크로이처 소나타’를 이 코너에 소개했었죠. 이번에는 그의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1928년)이야기입니다.

1917년, 63세가 된 이 작곡가는 38세 아래인 스물네 살의 유부녀 카밀라 시테슬로바와 사랑에 빠져듭니다. 불타는 정염은 타오르는 창작열로 이어집니다. 오페라 ‘꾀 많은 암여우’, 관현악곡 ‘신포니에타’ 같은 명작이 이 만년에 탄생합니다. 두 번째 현악사중주곡인 ‘비밀 편지’도 그중 하나입니다.  

야나체크가 카밀라에게 쓴 무려 700통에 달하는 연애편지가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모든 음표 뒤에 생생하고도 사랑스럽게 존재하오. 당신 몸의 향기, 불타는 키스… 이 모든 음표가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소.” 

작곡가는 처음 이 곡에 바로크 시대 옛 악기인 ‘비올라 다모레’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악기 이름이 ‘사랑의 비올라’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주변의 반대로 비올라로 바꾸었습니다. 체코어의 ‘비밀스러운’은 영어의 ‘intimate’처럼 ‘친근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밀 편지’보다는 ‘친밀한 편지’가 더 맞는 표현같기도 합니다. 

11년 동안의 불타는 사랑은 결국 노작곡가의 생명을 가져갑니다. 두 사람이 카밀라의 아이와 함께 산책을 갔다가 아이가 보이지 않자, 야나체크는 빗속을 헤매며 아이를 찾아다녔고 결국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불타는 악상만큼이나 짜릿한 사연을 가진 현악사중주 ‘비밀편지’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브렌타노 콰르텟 콘서트에서 연주됩니다. 같은 체코 작곡가인 드보르자크의 현악사중주 11번도 이 무대에 오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