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Sonata

Camillo Schumann - Cello Sonata No. 1 in G minor, Op. 59 /No. 2 in C minor, Op. 99 (1932)

Bawoo 2016. 9. 17. 21:40


Camillo Schumann


                              (1872-1946)

 1872년 Saxony(작센)의 Konigstein(쾨니히슈타인)(에서 마을의 음악감독이었던 Clemens Schumann (1839–1918)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린시절부터 다수의 악기들을 익혔으며, 가족음악을 만드는데 열중하였다..12살에는 마을 교회에서 조직된 전통적인 Turmblasen ensemble인 관악밴드의 지휘자가되었다..1889년  Leipzig Conservatoire 에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1893년까지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했다.. 그의 스승으로는 작곡가 Carl Reinecke, 음악이론가이자 작곡가였던 Salomon Jadassohn, 피아노 교수 Bruno Zwintscher , 그리고 organist Paul Homeyer 등이있다..1894년부터 1895년까지 베를린에서 Woldemar Bargiel 과 Robert Radecke 에게배웠다.독일의 오르가니스트(organist)이자 피아니스트인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활동한 작곡가로 브람스 풍의 신고전주의와 리스트의 후기낭만주의가 적절히 절충된 스타일에 실내악 장르 중심에다수의 작품들을 남긴 음악가였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야 재발견 된 독일에 음악가로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교향곡 B단조(Symphony in B Minor)가 대표작으로 알려진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게오르그 슈만(Georg Schumann,1866-1952)에 동생으로 그(카밀로 슈만)에 대표작들인 실내악곡으로 3편(Op. 59/Op. 99/ op. 118a)에  첼로 소나타(Cello Sonatas)와 2곡에 호른소나타, 2곡의 클라리넷소나타, 이중주곡, 플룻소나타,다수의 오르간소나타, 바이올린소나타 작품들과 2곡에 연주회용 소품인 (2 Konzertstucke(콘체르트슈튀크), Op. 20)등 300여곡이 넘는 작품들을 남긴 카밀로 슈만이 작곡한 실내악곡 중 대표작이자 오늘날 연주 레퍼토리로 쓰이는 첼로와 피아노구성의 2곡에 첼로소나타와  연주회용 소품(Konzertstücke)이 있다.


Cello Sonata No. 1 in G minor, Op. 59          

I. Allegretto moderato
II. Andante cantabile ed espressivo
III. Finale: Allegro molto

A lovely chamber work by German composer, organist and pianist Camillo Schumann (1872-1946). He was a close contemporary of Richard Strauss, Alexander Glazunov, Nikolai Medtner and Granville Bantock, and perhaps more than any of these "conservatives"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Schumann retained a conventional Romantic musical language, which is rooted in the sound world of Johannes Brahms and Franz Liszt, as well as the pianism of Sergei Rachmaninov.


As a virtuoso pianist and Court Organist of Saxony, Schumann's musical abilities were very highly regarded by his colleagues, such as Wilhelm Berger and Anton Rubinstein. At the outbreak of the First World War, Schumann withdrew from his performing career, moved from Eisenach to Bad Gottleuba and devoted himself to composition. Despite the fact that he composed prolifically and created many works of high quality in a variety of musical genres, his music was largely ignored and practically forgotten, since it was seen as incredibly outdated.


Luckily, in this recording cellist Maria Kliegel and pianist Francesco Piemontesi have brought Schumann's first cello sonata back to life.


Cello Sonata No. 2 in C minor, Op. 99 (1932) 

 

I. Allegro ma non tanto [0:00]
II. Romanze: Un poco adagio cantabile [9:10]
III. Scherzo: Allegro non assai [15:18]
IV. Allegro moderato [20:40]

A gorgeous sonata for piano and cello by German composer, organist and pianist Camillo Schumann (1872-1946). This complex, large-scale chamber work owes a great deal to Schumann's idol Johannes Brahms, who completed his own second cello sonata (also Opus 99) nearly half a century earlier.

Cello: Maria Kliegel
Piano: Francesco Piemontesi



Eisenach 의 시립교회였던  St George 교회와  Wartburg chapel의 오르간 연주자와 악장직을 맡았으며, 이곳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극대화했다.. 또한 그는 가브리엘리로부터 막스 레거에 이르는 오르간 작품들을 거의 대부분 섭렵했으며, 특별히 대바흐의 오르간 작품들에 경도되었다..그가 가장 좋아했던 바흐와 핸델의 작품들 이외에 자신의 오르간 리싸이틀에 흔히 Mendelssohn, Rheinberger, Liszt, Piutti, Merkel 과 자신의 첫번 째 오르간 소나타를 헌정했던 Samuel de Lange의 작품들을 흔히 연주하곤했다..그의 작품들이 흔히 초연된 곳 역시 다름아닌 아니제나흐였다..역시 음악가였던 자신의 형제 Georg와 더불어 특별히 거대하게 축조된 새로운 Jehmlich organ 의 연주에 도전했을 뿐 아니라 마을에 있던 바흐의 사택을 복원하는 데 힘을 쏟았다..

 

피아니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서. 그리고 실내악 연주자로서 그는 자신의 비르투오시티와 음악적 해석으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Hermann Kretzschmar, Wilhelm Berger, Paul Claussnitzer, Alfred Lorenz, Arnold Schering 과 같은 음악계 인사들은 모두 그의 해석과 작곡의 완성도에 대하여 찬사를 보냈다..더우기 안톤 루빈슈타인은 그의 탁월한 재능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그의 음악적 성취는 영광스럽게도 Grand Ducal Music Director 이라는 타이틀을 갖게했으며 작센 궁정의 오르가니스트가 되게하였다..1911년 바이마르 음악예술 작품을 위한 Thuringian States의 전문가 선정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으며, 아울러 아이제나흐의 Brill Conservatory 의 오르간교수로 임명되었다..1914년 Bad Gottleuba로 옮겼으며 온전하게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1차대전과 전후의 경제의 피폐는 그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어려움을 증가시켰으며,  특별히 작곡에대하여 그가 취한 매너리즘에 빠진 관습적인 방식과 당시의 변화된 음악적인 트렌드를 완전하게 무시하는 그의 태도는 그의 최근 작들이 출판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도록하였다..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의 고향에서 온전히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은 아니었다..도리가 없었던 그는 Markersbach (1921–1946) 와  Langenhennersdorf (1928–1941)에서의 교회음악을 위한 활동을 수용했으며,  Dresden, Pirna und Konigstein에서 솔로 오르간 연주자로서 콘서트를 가져왔으며, 지속적인 작곡활동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아울러 지역 문화계에대해 이바지 함으로써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되었다..1946년 Bad Gottleuba에서 삶을 마쳤다..

 

Camillo Schumann의 작품들은 거의 모든 음악장르를 포함하는 것으로 약 300여작품이 리스트에 올라있다..이들 작품 중에는 다양한 실내악 작품들,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 오르간 혹은 오케스트라가 부가된 칸타타, harmonium 을 위한 작품들과 다량의 오르간을 위한 작품들이 있다..특히 실내악 작품군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3곡의 피아노 트리오, 5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곡의 첼로 소나타, 2곡의 혼소나타, 2 오보소나타, 1플룻 소나타, 그리고 다른 다양한 악기가 조함을 이룬 작품들이 여기에 속해있다.. 이러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출판된 바 없으며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고있다. 그의 작품이 가지는 조성적 어법은 Brahms와 리스트를 태두로하는 위대한 후기 낭만주의 악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피아노 작품의 거대한 힘과 비르투오시티는 상당부분  Rachmaninov  에게 빚을 지고있는 것이다..특별히 느린 악장들에서 도드라지는 놀랍도록 독특하고 쉬운 선율작법은 그가 고도로 능란한 작곡가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Cello Sonata No. 1, Op. 59은 고도의 예술적인 기교를 필요로하는 탁월한 작품이다..3개의 악자으로 된 이 작품은 거칠고 열정적이지만, 종악장은 상당히 극적인 요소를 갖고있다..이 부분에서 슈만은 자신이 교향적형식의 대가임을 드러내고있는데, 두 악기의 음악적인 소재가 동일한 전개를 이루도록하여  주제가 집중될 수 있도록하고있다..이 작품이 요구하는 고난도의 비르투오식한 테크닉은  음악으로하여근 거대한 캐릭터와 위트를 가질 수 있도록하였다..이 작품에서 그는 역시 엄청난 비르투오시티를 특징으로 하는 리스트의 작품 세계가 가지는 조성적인 어법에 매우 긴밀하게 접근하고있다..모두 3곡이 남아 전하는 그의 첼로 소나타는 피아노와 첼로‘Piano and Violoncello’ 를 위해 쓰여진 것으로 피아노가 그 중심축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