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š Janáček
(3 July 1854 – 12 August 1928) was a Czech composer, musical theorist, folklorist, publicist and teacher. He was inspired by Moravian and other Slavic folk music to create an original, modern musical style.
Until 1895 he devoted himself mainly to folkloristic research and his early musical output was influenced by contemporaries such as Antonín Dvořák.[1] His later, mature works incorporate his earlier studies of national folk music in a modern, highly original synthesis, first evident in the opera Jenůfa, which was premiered in 1904 in Brno.[2] The success of Jenůfa (often called the "Moravian national opera") at Prague in 1916 gave Janáček access to the world's great opera stages.[3][4] Janáček's later works are his most celebrated. They include operas such as Káťa Kabanová and The Cunning Little Vixen, the Sinfonietta, the Glagolitic Mass, the rhapsody Taras Bulba, two string quartets, and other chamber works. Along with Antonín Dvořák and Bedřich Smetana, he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mportant Czech composers.[영문자료 더보기-Leoš Janáček]
[20세기 민족주의 음악의 중요한 주창자 중 한 사람이다. 어려서는 브르노에서 성가대 단원으로 있었으며 프라하·라이프치히·빈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881년 브르노에서 오르간대학을 설립하여 1920년까지 이끌었다. 1881~88년 체코슬로바키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1919년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교수가 되었다.
민속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프란티이셰크 바르토슈와 함께 민요를 수집했으며, 1884~88년 정기 간행물 〈음악적 지면들 Hudební Listy〉을 발행했다. 그의 첫번째 오페라 〈샤르카 Sárka〉(1887~88, 공연 1925)는 바그너와 스메타나의 정신을 계승한 낭만적인 작품이다. 그후의 오페라들에서 그는 모국어의 억양과 밀접하게 연관된 독특한 체크 양식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순수 기악 작품과 마찬가지로 모라비아 민속음악의 독특한 음계와 선율을 사용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오페라들로는 국제적 명성을 확립시켜준 〈예누파 Jenůfa〉(1904, 원래 제목은 〈그녀의 수양딸 Její pastorkyňa〉)·〈마크로풀로스 사건 Vĕc Makropulos〉(1926)·〈죽은 자의 집으로부터 Z mrtvého domu〉(1930), 1920년 프라하에서 공연된 2편의 1막 풍자 오페라 〈브로체크 씨의 달여행 Vylet pana Broučka do Mĕsíce〉·〈브로체크 씨의 15세기 여행 Vylet pana Broučka do XV stol〉, 희가극 〈교활한 작은 암여우 Příhody Liśky Bystroušky〉(1924) 등이 있다. 그의 오페라는 극적 효과를 높여 음악을 기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그의 합창곡 역시 모국어의 억양을 살리는 성악 작품을 전형으로 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곡으로는 〈글라골스카 미사곡 Glagolská mše〉(1926)을 들 수 있는데 이 곡은 슬라브 미사 또는 축제 미사라고도 부른다. 이 미사곡은 예배용 언어인 옛 슬라브어로 씌어져 있으나 악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리스 정교회의 예배의식에는 연주될 수 없다. 연가곡 〈사라진 자의 일기 Zápisník zmizelého〉(1917~19)·〈자장가 Řikadla〉(1925~27) 역시 유명하다.
3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졌다. 이러한 관심의 결과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 Kát'a Kabanová〉·(1921)와 관현악적 광시곡 〈타라스 불바 Taras Bulba〉(1918)가 나왔다. 여러 편의 실내악곡도 작곡했는데, 성악곡에서처럼 실내악곡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속음악에서 영향받은 견고한 화성과 반복되는 선율을 솜씨있게 다루고 있다. 후기 작품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민속음악적 요소의 사용과 말의 억양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그는 20세기의 무소르크스키로 각인되었다. 계속 고도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양식을 유지했다.[다음백과]
레오슈 야나체크는 1854년 체코 후크발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11살 때 성 토마스 수도원에 들어가 성가대원과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1874년,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들어갔는데, 이 무렵부터 비평을 시작했다. 그의 비평은 신랄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나쁜 연주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악평을 퍼부었는데, 자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용서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한번은 학교에서 열린 그레고리오 성가 연주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작곡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던 그는 곧 복학했으며, 1875년에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그는 브루노 사범학교에 음악교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본업인 교사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때 그의 음악성을 눈여겨본 슐츠라는 독일인 교장이 그에게 독일 유학을 권했다. 이 권고를 받아들여 1879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노, 오르간, 작곡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 후 교수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라이프치히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생상스의 제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생상스가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프랑스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발길을 돌렸다.
빈 음악원에서 야나체크는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하지만 작곡을 가르치는 크렌 교수는 신고전주의자로 그와 예술적 지향점이 달랐으며, 피아노과의 다흐 교수는 그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과 테크닉을 비판했다. 야나체크는 이 말을 듣고 그의 피아노 클래스에서 나와 버렸다. 또 교내 작곡 콩쿠르에 바이올린 소나타를 출품했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라는 이유로 낙선했다. 여러 가지로 실망한 그는 1880년 6월에 크렌 교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떠났다.
1881년, 고향으로 돌아온 야나체크는 브루노에 오르간 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이해에 자신을 음악가의 길로 인도한 사범대학 교장 슐츠의 딸 즈덴카와 결혼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6세였다.
브루노 오르간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야나체크는 자기 고향인 모라비아 지방의 민속음악을 채집하고, 언어와 억양에 대해 연구하는 일을 했다. 야나체크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말하는 멜로디'이다. 그는 자기 귀에 들리는 말이란 말은 모조리 작은 종이에 받아 적는 식으로 '말하는 멜로디'를 수집했으며, 이것을 창작의 재료로 삼아 전통적인 작곡법의 아카데믹한 관습과 규율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작곡했다.
1890년과 1903년, 그는 아들 블라디미르와 딸 올가를 잃는 불행을 겪었다. 이듬해에 9년에 걸쳐 작곡한 오페라 〈예누파(Jenůfa)〉를 발표하고 이를 딸 올가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내용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프라하 국립극장으로부터 공연 불가 판정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야나체크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체코인인 야나체크를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부부 사이에 독일 상류층과 가난한 체코인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야나체크는 63살의 나이에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카밀라라는 25살의 유부녀였다. 그 후 그는 10년 동안 그녀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며 뜨거운 열정을 쏟아부었다. 카밀라는 남편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 노인의 부담스러운 연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하곤 했다고 한다. 카밀라에 대한 사랑은 야나체크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현악 4중주 '비밀 편지'(String Quartet No.2 JW VII―13 'Intimate Letters')〉와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Káťa Kabanová)〉를 비롯한 많은 작품이 이 불륜의 사랑의 결과로 탄생했다. 나중에 야나체크는 이 두 작품의 판권을 카밀라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겼다.
1928년부터 야나체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From the House of the Dead)〉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에 연인 카밀라와 함께 밀월여행을 갔다. 그는 여행지에서 감기에 걸렸으며, 이것이 폐렴으로 발전해 1928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야나체크는 대기만성형 작곡가이다. 쉰 살이 될 때까지 작곡가로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10년 전부터 놀라운 작품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선배인 스메타나나 드보르자크보다 훨씬 민족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는 의식적으로 서유럽 음악을 기피했다. 대신 민속음악을 부지런히 수집하고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자기 음악의 뿌리로 삼았다. 그는 음악의 뿌리를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의 자연스러운 억양 속에서 찾았으며, '말하는 멜로디'를 '인간의 영혼으로 가는 창문'이라고 표현했다.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는 〈질투(Jealousy)〉, 〈할파르 선생(Teacher Halfar JW VI―33)〉, 〈마리치카 막도노바(Maryčka Magdonová JW IV―34)〉, 〈깃털 이불〉, 〈방랑하는 광인(The Wandering Madman JW IV―43)〉 등이 있다.
카밀라와의 관계 때문인지 야나체크는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이런 종류의 작품으로는 〈현악 4중주 제1번 '크로이처'(String Quartet No.1 JW VII―8 'After Tolstoy's The Kreutzer Sonata')〉, 〈현악 4중주 제2번 '비밀 편지'〉, 어린 소녀와 사랑에 빠져 도망간 어느 늙은 농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칸타타 〈사라진 자의 일기(The Diary of one Who Disappeared)〉, 카밀라가 우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 등이 있다. 이 중 〈현악 4중주 제1번 '크로이처'〉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 1923년에 작곡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한 남자가 결국 아내를 죽인다는 것인데, 야나체크는 남편에 의해 짓밟히고 살해당한 아내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 여기서 네 대의 현악기는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가 소통의 한계를 절감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조적인 성격의 작은 단락들이 파편처럼 등장하면서도 정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연결성을 잃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야나체크는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진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하다. 리스트의 피아노곡 같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지 않는다. 열 개의 피아노 소품을 모아 놓은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On the Overgrown Path JW 8―17)〉도 그런 작품이다. 야나체크의 자서전과 같은 이 곡은 1901년부터 1908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고향 후크발디의 풍경,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다 끝내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한 슬픔을 〈우리들의 저녁〉, 〈날아가 버린 잎새〉, 〈함께 가자〉, 〈프리덱의 마돈나〉, 〈제비처럼 재잘거리다〉, 〈그건 아니야!〉, 〈밤 인사〉, 〈엄청난 고통〉, 〈그 자리에〉, 〈올빼미는 날아가지 않았어〉라는 제목의 소품에 담아 냈다. 한 편의 시와 같은 서정성과 섬세함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피아노 작품이다.
작곡가로서 야나체크의 창작력은 1926년에 작곡한 〈신포니에타(Sinfonietta JW VI―18)〉에서 절정에 이른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곡은 체코의 피세크 공원에서 연주하는 군악대의 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독창적인 사운드, 강력한 음악 언어, 풍부한 감정이 담긴 곡으로 20세기에 쓰인 가장 뛰어난 오케스트라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포함한 통상적인 관현악단 외에 트럼펫 아홉 대와 테너 튜바, 베이스 트럼펫 각 두 대씩으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를 따로 편성해 1악장과 5악장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옛날이야기〉, 관현악을 위한 〈타라스 불바〉, 〈블라니크 발라드〉, 오페라 〈영리한 암여우〉, 〈마크로풀로스 사건〉, 합창곡 〈체코의 깃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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