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금속활자 ‘직지’에는 스님들의 자비·연민이 깃들어 있었네 |
|
소설가 김미수, <소설직지> 통해 편찬·인쇄 의미 밝혀 “난국에서 종교지도자가 담당해야할 역할 제시한 팩션” |
|
“마음이 정화되는 참 좋은 소설! 간만에 읽어본 대작,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지도자와 백성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하는 길을 제시하고 고민하게 하는 소설! 울컥울컥하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읽은 만나기 어려운 소설!”
최근 출간된 한 소설 <소설직지>(문예바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이다. 독자들의 반응만 보면 이 소설이 엄청나게 유명한 대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저명한 대가의 소설도, 잘나가는 외국소설을 번역한 소설도 아니다. 아직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소설이 좋아서, 또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아니 이후 세대에게까지 삶의 중요한 가치와 메시지를 소설을 통해 던져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늦깎이 소설가가 된 한 여성 소설가의 작품이다.
구도소설 <소설직지>를 펴낸 소설가 김미수 씨.
소설가 김미수 씨. 이제 막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지난 2010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한 탄탄한 실력의 소유자다. 불자이기도 한 그가 직지, 즉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의 참 가치와 의미를 새기게 하는 장편 <소설직지>를 펴냈다.
이 소설은 한국소설가협회와 청주시가 공동주관하는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이기도 하다. <소설직지>는 구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의 ‘구도소설’적 성격도 갖고 있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 진정한 구원은 무엇인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세상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설직지>는 왜구의 침입으로 가족을 잃고 출가한 주인공 석찬의 이야기다. 그는 이후 스승을 떠나게 되고, 기녀 화선과 사랑에 빠지면서 승려 생활에 큰 갈등을 겪는다. 또 왜구에게 도륙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원의 영향으로 타락해가는 승려들을 보면서 불교에 대해 깊이 회의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고, 도탄에 빠진 백성에게 제대로 된 불심을 심어주기로 결심한다. 이후 석찬은 흥덕사에서 설법을 하며 직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원의 횡포로 국운은 기울고, 왜구가 들끓는 고려 말의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피해자가 된 석찬과 석찬의 어머니, 그리고 기녀 화선의 이야기, 동시에 왜구에게 무차별하게 도륙당하고 혼란한 정치의 희생물이 되어야 했던 백성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석찬은 고려 말 왜구에게 가족을 잃고 백운선사의 제자가 되지만 끝내 스승을 떠난다. 그는 기녀 화선과 사랑에 빠지고 왜구에게 도륙 당하는 백성과 타락한 승려를 보면서 크게 방황한다. 자신이 승복을 벗어버린다면, 또 기생 화선이 기녀의 옷을 입지 않는다면 여느 선남선녀처럼 마음껏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등…. 석찬의 방황은 진정한 구원을 향한 또 하나의 질주에 다름 아니다. 또한 구원이란 결코 승복 안에 있지 않다는 준엄한 선언이기도 하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기고 신돈은 내 부형을 무참히 죽였소. 무소유나 탁발수행의 계율을 두고도 사찰은 커지고 사유지는 넓어지고 있소. 음욕을 버려야할 승려가 여자를 취하고 고기를 먹고 있소. 계율 밖의 승려가 승려요?”
기녀 화선을 감시하는 호위무사 유숭은 승려를 살해하고 사찰을 불태우는 것이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질투와 탐욕에 사로잡힌 유숭의 말이지만, 말의 내용은 시공을 넘어 오늘의 타락한 승단을 향한 준엄한 질책으로 들린다.
이럴 때, 제정신을 가진 승려는, 또 불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작가 김미수는 이 점에 천착한다. 왜 그 시기에 백운 선사는 직지를 편찬했고, 그의 제자 석찬은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했을까. 왜? 왜? 이것은 소설가 김미수가 이 소설을 집필하는 1년여의 시간동안 줄곧 놓치지 않았던 화두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격변기에, 백운 선사는 풍전등화의 고려와 불교계를 바라보면서 왜 하필 <직지>를 편찬하였는가? 석찬이 왜구의 칼 앞에서 2년 동안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한 참 가치는 무엇인가? 또 진무가 죽음을 각오하고 <직지>를 찾으려고 중국을 떠도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직지>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직지의 진정한 가치를 백운 선사와 석찬, 그리고 고려말 당시의 상황을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웅변하고 있다.
소설가 김미수는 강원도 인제의 만해마을에서 1년 간 들었던 이 화두를 드디어 깨뜨린다. 마치 병속의 새가 훌훌 해탈의 기쁨을 창공에 세차게 부리를 꽂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깨침은 직지의 편찬 및 인쇄의 배경에 대한 가슴 저린 동감이요, 감사함으로 그려진다. <소설직지>는 바로 소설가 김미수가 화두를 타파한 증득의 결과물인 셈이다.
집필의 정진 과정 속에 그는 백운 선사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마침내 백운화상이 될 수 있었다. 또 석찬이 될 수 있었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현대인에게, 또 전혀 중생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중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보살행의 실천에 떨쳐 일어나라는 준엄한 명령에 다름 아니다.
<소설직지>는 이렇듯 진정한 구원을 찾아 길에서 길로 떠도는 현대인의 초상이 담긴 소설이다. 201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소설가로 그동안 단편소설 <미로>, 단편집 <불구하고 사랑> 등을 펴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던 김미수 작가에게 이번 <소설직지>는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편의 뛰어난 불교소설의 탄생을 맞이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불교적 소재의 소설을 구도의 정신으로 써내려가는 역량을 갖춘 작가가 등장했다는 것도 작지 않은 기쁨이다.
제1회 직지문학상 대상 <소설직지>를 심사했던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는 “이 작품은 역사적인 제재의 성격을 구체화하는 데에 소설적으로 무리 없는 결구(結構)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사실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통해 동원하고 있는 허구적 요소들이 매우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어서 상당한 응집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었다. 무엇보다 ‘직지’의 숨은 뜻을 해석하는 작가의 역사의식이 폭 넓은 문화사적 기반 위에서 확립된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음을 밝혀 둔다. 이 작품이 우리 문단에 역사소설의 한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크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설가 김미수는 “여명에 시작하여 해지기 전까지 밝은 창밖을 내다보며 <소설직지>를 썼다. 참 다행이다. ‘대담하게 똑바로 보라’는 루쉰의 말을 소설을 쓰는 동안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김미수 작가는 처음부터 ‘직지’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료를 찾고 읽고 공부하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직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시작됐다. 직지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인 동기에 대해 김미수 작가는 “우선 불자로서 직지심경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고, 충청도 지역 일간지인 <동양일보>에서 직지 축제에 칼럼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직지 축제에 참여하면서 직지라는 소재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때 직지를 소설로 옮겨볼 필요성이 있겠다 싶었는데 마침 ‘직지 문학상’이 제정돼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석찬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소설의 상당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작가는 당시 석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석찬이 되었다. 석찬과 같은 감정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석찬에 대입시키다보니, 직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기까지 석찬의 방황과 갈등, 그리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직지를 편찬하고자 하는 백운 선사의 결심 등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천안 광덕사 신도이기도 한 김미수 작가는 집필 기간 동안 틈나는 대로 좌선을 하며 에너지를 얻었다. 물론 그의 화두는 ‘직지’였다. 지난해에는 딸이 동국대 불교학과에 13학번으로 입학한 덕에 관련 자료를 동국대 도서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권의 <소설직지>가 탄생하기까지 이처럼 많은 인연들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400쪽, 12,000원[이학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