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글 모음♣ /경제, 사회

[중앙시평] 착한 식당과 좋은 경제정책

Bawoo 2017. 7. 27. 07:31



저성장·양극화로 이중고
소득 재분배 정책 필요하나
국력과 생활 수준 높이려면
경제성장과 혁신 중요하다



좋은 식당은 감동을 준다. 좋은 재료를 쓰고 위생적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요리한 음식을 값싸게 내놓은 식당들이 언론에서 소개될 때마다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러나 과거에 인기 있던 한 TV 프로그램에선 단지 수입산 재료를 쓰거나 조미료를 첨가한 식당을 ‘나쁜 식당’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프로듀서가 자의적 기준으로 식당을 선악으로 나눌 수 있는지, 식당이 꼭 ‘착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가까운 싼 백반집이 나에게 좋은 식당일 수 있고. 비싸도 맛있어서 고객이 많이 몰리는 식당이 훌륭한 식당일 수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1960년 1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 2만7000달러가 넘었다. 이와 같은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루면서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도 평등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은 계속 하락했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은퇴한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소득 분배가 악화됐다. 한국 경제의 과제가 저성장·양극화의 이중고(二重苦)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된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경제 분야 국정목표를 ‘더불어 잘사는 경제’, 즉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로 세웠다. 또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려 저성장과 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이 시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해 좋은 경제정책들이 나오고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일부에서 분배의 평등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상대적 불평등을 확대한 경제성장은 가치가 없는 성장으로 폄하하는 것은 염려스럽다. ‘착한 성장’을 앞으로 추구하겠다고 하면서 과거의 한국 경제성장을 ‘나쁜 성장’으로 간주하는 것도 우려된다. 한국 경제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상대적으로 미흡하긴 했지만, ‘나쁜 성장’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성장은 모든 국민 개인을 당장 행복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국가의 우선적 정책 목표여야만 한다. 성장은 생산 능력과 국력을 키울 뿐 아니라 개인의 생활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인다. 예를 들어 60년에 필리핀은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미국 달러 기준)가 한국의 1.7배인 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저성장으로 지금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5분의 1,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에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인 G7과 중국·인도·브라질에 이어 세계 11위 경제 규모의 강대국이 되었다.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갖는 외교·군사·문화의 힘은 모두 경제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은 91년 한국과 비슷했지만 30년 넘게 성장을 계속해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지역·계층 간 소득 분배가 악화됐지만 누구도 13억 넘는 인구를 절대빈곤에서 구한 경제성장을 ‘나쁜 성장’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또 다른 효과는 기술 발전으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하는 것이다. 고속버스·지하철과 같은 교통의 발전, 냉장고, 휴대전화, 인터넷, 심지어 두루마기 화장지 같은 새로운 기술의 혜택은 생활의 편리함을 통해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심화, 상대적 빈곤 악화, 일자리 기회 불평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80년대 이후 많은 국가에서 소득과 부의 분배가 악화됐음을 보여주고 높은 자본수익률과 부의 세습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다른 연구들은 소득 격차가 심해진 중요한 원인으로 숙련 노동자에게 유리한 기술 발전, 국제 무역과 분업의 확대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소득 분배의 개선도 원인에 따라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
 
조세제도 개혁과 복지 지출의 점진적 확대로 결과의 공평한 분배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경제성장과 혁신 정책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호하고 생산성과 기술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한다. 수출산업의 구조 조정, 혁신 중소기업 지원, 과학기술 인력 양성,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개혁이 모두 중요하다. 서비스업의 규제 개혁으로 좋은 일자리와 창업 기회를 늘려야 한다.
 
만일 분배의 공정성만 중요시하고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을 소홀히 한다면 한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고 저성장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보듯이 한번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는 재도약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경제가 이룬 모든 성과의 바탕에서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착한 식당’이라고 해도 손님이 오지 않는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착한 식당과 좋은 경제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