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스크랩] 시조 속 감각을 찾아 나서다 [문학 속 우리말]

Bawoo 2018. 2. 27. 09:03

.




[문학 속 우리말]

시조 속 감각을 찾아 나서다


최홍원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1. 시조와 감각의 어색한 만남


아래 현대시 한 편을 살피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하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 고재종, <첫사랑> 전문



눈과 꽃을 통해 인간의 첫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시이다.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기 위해 눈은 수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겨우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해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다고 한다. 이를 “싸그락 싸그락” 나뭇가지를 두드려 보는 것으로, 그리고 “난분분 난분분 춤추”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여기서 “싸그락”과 “난분분(亂紛紛)”은 눈이 닿는 소리와 흩날리는 모습을 우리의 귀와 눈으로 생생하게 전해 준다. 이처럼 첫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눈과 나뭇가지를 불러 들이고, 이들을 ‘싸그락’과 ‘난분분’으로 연결 짓고 있는 것이다.


시가 본래 추상이 아닌,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양식이라 한다면, 감각적 형상화는 작가의 생각, 관념과 구체적 사물이 만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시에서 본다면, 첫사랑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눈의 모습과 소리로 그려 내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사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경험을 형상화하는 것이 시의 중요한 과제라 할 때, 외적, 내적 감관에 가해진 자극에 따라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른 감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포착하여 표현하는 것은 시의 본질적인 진술 방법이다. 사물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되는 것이다. ‘싸그락’과 ‘난분분’의 등장도 이러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시의 본질이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건만, 시조 갈래에서 감각의 문제는 낯설기만 하다. 자연과의 합일이나 도덕적 수양을 다룬 강호가도의 목소리에서, 혹은 사회를 향한 전언을 담고 있는 교훈 시조의 내용에서
보건대, 감각이 개입하고 관여할 여지가 적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시조에서 감각을 찾아 나서기에 앞서, 탐색의 목적과 방향부터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지점이다. 시조와 감각, 그들의 공통분모는 어떠한 모습일까?



2. 시조와 감각의 엇갈림, 분명 있었지만 가려져 있었다


감각은 오관에 가해진 자극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다섯 가지를 가리킨다. 이러한 감각이 모여서 축적되고 종합되는 과정을 거쳐 대상에 대하여 특정한 마음의 상태가 일어나는데,
이를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감정은 상당 부분 감각과 결부되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처럼 감각이 본질적으로 인간 욕망으로 대표되는 감정과 관련을 갖는다는 점은 시조에서 감각이 억압된 까닭을 설명하는 통로가 된다.


시조가 상당 부분 성리학이라는 기축 이념과 사대부라는 특정 계층과 맞물려 있었던 만큼, 작품 세계 또한 이치를 궁구하고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당시 성리학적 수양론이 시가에서의 감정 분출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다는 역사적 배경을 조금만 들추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의 세계가 성정론과 맞물려 있었던 탓에, 자연은 감각적 인식의 대상이기보다는 우주의 오묘한 이치가 담긴 선험적 대상에 가까웠고, 그런 만큼 도체적 자연과의 합일이 중요한 과제로 요청되어 왔다.
자연은 인간의 주관적 감각을 통해 인지해야 할 대상이기에 앞서 이미 선험적인 이치와 도체의 존재로서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감각과 이해보다는 수양과 체화가 더욱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정론과 도체적 자연 등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상황에서 시조가 감정을 다루는 데 제약이 있었고, 이에 따라 감각을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감정을 다루더라도 그저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나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와 같이 감정 노출을 절제했던 탓에, 감각이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 시조 갈래가 사회적 문제를 대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소통의 매개가 되었던 점은 감각보다는 사유가 강조된 다른 요인이 된다.


한 예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노라’는 시조가 자신의 생각과 태도,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갈래였음을 보여 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또한 시조는 절제된 언어와 표현 속에 함축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을 본질로 한다는 점도 감각을 통한 화려한 수사와는 멀어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건대, 시조에서 감각은 절제되고, 때로는 억압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조에서 감각을 탐색하려는 글의 목적과 의도부터 회의적, 부정적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시조에서 감각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시조 또한 시의 세계이며, 시조에서도 독특한 감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눈풀풀 蝶尋紅(접심홍)이요 술 튱튱 蟻浮白(의부백)을
거문고 당당 노니 두룸이 둥둥 츔을 츈다
兒㝆(아희)야 柴門(시문)에  즛즈니 벗 오시나 보아라
- ≪가곡원류(국악원본)≫



화자의 풍류와 흥취에 온갖 대상들이 동원되어 등장하는 사설시조의 한 작품이다. 눈, 나비, 꽃, 술, 개미, 거문고, 두루미가 등장하고, 종장에서는 개와 벗마저 더해지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주흥(酒興)을 노래한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눈은 ‘풀풀’ 날리고, 술은 ‘튱튱’하다. 이뿐 아니라,

눈이 날리고 술이 맑지 못한 것을 각각 나비가 날고, 개미가 떠 있는 것으로 중첩하여 묘사하고 있다. 중장에서도 거문고는 ‘당당’ 소리를 내고, 두루미는 ‘둥둥’ 춤을 춘다. 거기에 개는 가만히 있지 않고 짖는 것으로 감각을 더한다. 단순히 의성어와 의태어를 찾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초장에서 흩날리고 떠있는 형상에 중장의 ‘당당’, ‘둥둥’이 더해져서 더 들뜨게 되고, 노래와 춤이 이어지면서 읽는 우리마저 덩달아 들뜨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처럼 시조에서 감각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다른 가치와 명제에 압도되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시조 속 감각을 새롭게 찾아나서는 일은 또 다른 설렘과 기대를 품게 만든다.



3. 시조의 출발, 감각의 시작: 감정을 이끌어 내는 감각의 힘


앞서 살핀 작품이 사설시조였던 만큼, 탐색은 평시조 작품에서 출발하기로 하자. 아래 이조년의 시조 작품은 감각이 시조의 발생 당시부터 중요한 장치이자 표현의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梨花(이화)에 月白(월백)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ㅣ야 아라마
多情(다정)도 病(병)인 냥여  못 드러 노라.
- ≪청구영언(진본)≫



오늘날 전해지는 고시조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는 연구자가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런데 화자의 다정(多情)과 그로 인해 잠 못 드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쉽게 보아 넘기기에는 초, 중장에
등장하는 여러 대상들의 존재가 예사롭지 않다. 배꽃, 달빛, 은하수의 흰빛과 같은 시각적 재현에, 소쩍새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더해져서 아름다우면서도 시린 봄밤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화자의 다정의 원인이며,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새삼 궁금하지 않다. 은은함과 처연함이 조합되어 만들어 내는 감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리라. 실제로 이 작품을 두고서 우국의 심정에서부터 애정을 넘어 봄밤의 애상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백색의 이미지와 소쩍새의 소리가 더해지면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감각의 세계와 그 효과이다. 이들 속에서 ‘서성거리고 배회하다가 결국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글썽거리어 가슴속 깊은 곳에 북받쳐 오르는 하소연이 탄식이 되고 시’1)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각이 빛나는 소재들로 말미암아 여러 정서가 환기되고, 화자의 감정에 자극과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백색 계열의 색채 이미지가 비애, 고독, 추억, 향수 등 주로 애상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불러오는 효과를 갖고 있으며, 특히 공간적으로 먼 곳을, 시간적으로 옛 과거를 환기한다는 설명2)은 감각과 정서의 이러한 관련성을 뒷받침해 준다.


눈 내리는 밤의 감회를 노래한 아래의 현대시를 보면, 백색의 이미지, 그리고 애상감의 감정은 그때 거기의 이조년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 <설야> 부분



밤에 눈이 쌓이며 사위가 고요해지는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립고 서글픈 애상적 정서에 빠지게 되는 데에는, 백색의 이미지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는 시각의 청각화,
공감각적 이미지와 같은 어렵고 낯선 설명을 잠시 치워 두고 보면, 눈이 내리는 고요한 소리조차 모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환상적인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1) 이희승(1949), <시조감상 일수>, ≪학풍≫ 제2권 제1호.
2) 김유중(2000), ≪김광균≫, 건국대출판부, 93쪽.



나아가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이 과거를 떠올리며 얘기를 꺼내는 것도, 모두 달빛의 백색 이미지와 메밀꽃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감상적인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이상에서 보면 감각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감각에 대한 관심을 대상의 기발한 표현에서 나의 마음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나의 정서, 태도, 감정을 끄집어내거나, 혹은 이에서 비롯되는 표현의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4. 사대부 시조의 감각 세계: 우리에게도 감각은 중요하오


일반적으로 감각과 멀어 보이는 사대부 시조를 통해 감각의 모습을 살펴 보기로 하자.



구버 千尋綠水(천심녹수) 도라보니 萬疊靑山(만첩청산)

十丈紅塵(십장홍진)이 언매나 롓고
江湖(강호)애 月白(월백)거든 더옥 無心(無心)하얘라
- ≪어부단가(판본)≫



강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속세와의 단절과 은거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는 <어부가>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세속에 대한 혐오와 단절감을 그려 내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된다. 이를 위해 ‘천심녹수(千尋綠水)’, ‘만첩청산(萬疊靑山)’이 등장하고, 그와 반대되는 속세는 ‘십장홍진(十丈紅塵)’으로 제시된다.

깊고 깊은 물과 첩첩이 서 있는 푸른 산들이 열 길이나 되는 자욱한 붉은 먼지와 대비하여 강호와 속세, 두 세계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녹(綠), 청(靑), 홍(紅)의 색채도 인상적이거니와 천(千), 만(萬), 십(十)이라는 숫자까지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일반적이고 해묵은 관용적 표현으로 넘겨 버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종장의 월백까지 만나게 되면, 강호의 즐거움을 피력하는 것 못지않게 감각의 문제에도 섬세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속세와의 차단을 위해 굳이 천심의 푸른 물과 만첩의 푸른 산이 필요했을까? 그만큼 속세의 침입이 크고 위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같은 큰 장벽의 필요성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미련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비록 감각이 표면적으로 물, 산, 세속을 향하고 있지만, 깊고 깊은 물과 첩첩이 서 있는 푸른 산이 동원된 바탕에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굳건히 하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제5수에서 튀어나오는 세속 세계에 대한 미련이 이러한 심증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어부가>의 감각 세계에
서 우리는 마음과 감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5. 기녀 시조의 감각 세계: 감각으로 마음을 달래다


시조의 감각이 대상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녀 시조의 감각 세계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지하다시피 기녀시조는 앞서 사대부 시조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만큼, 이러한 진솔한 감정의 표현에 감각이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시조에서 감각 하면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아래 황진이 시조가 아닐까 싶다.



冬至(동지)ㅅ 기나진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 ≪청구영언(진본)≫



비유나 이미지 등 시적 자질에서, 그리고 발상과 표현 면에서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높은 평가에는 특별하면서도 현란한 감각의 표현 또한 빠지지 않는다. 사실 시간 자체는 어떤 모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인 시간을 마치 물리적인 실체인 양 자르고 펴는 가공의 상상력과 감각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다. 시간을 두고서 한 허리를 베어 내기도 하고, 서리서리 넣었다가 다시 굽이굽이
펴기도 한다. ‘서리서리’는 실 같은 것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감아서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을 가리키는데, 임이 왔을 때 막힘이나 걸림 없이 술술 풀어내기 위한 기다림의 태도를 함축한다.

화자의 그리움을 굽이굽이 풀어내어 사랑으로 승화시킬 준비 상태인 셈이다.3) 그리고 ‘굽이굽이’ 펴내는 것은 끝이 없는 영원한 시간을 함축한다. 잘라 놓은 밤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서리서리’ 쌓아 놓았다가 임이 왔을 때 ‘굽이굽이’ 펼침으로써, 한없이 길어진 그리움을 끝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변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동짓달 기나긴 밤’과 ‘어론님 오신 날 밤’이 각각 임의 부재와 현존에 따른 부정적 시간과 긍정적 시간으로 대비적으로 인식되는데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도 중요한 것은, 시간을 감각적으로 재단하지만 이러한 감각적 재단이 표현의 참신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의 부재라는 현실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는 점이다. 임과 떨어져 있는 현재의
문제 상황은 임과 만남으로써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임이 부재한 동짓달 긴 밤을 잘라 내어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임과 재회한 봄밤에 붙여서 최대한 길게 늘이겠다는 말로
해결을 시도한다. 이처럼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인식을 전환하고 조정하는 것은 갈등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또 다른 문학의 존재 가치와 효용을 찾게 된다. 이러한 문학적 대응과 심리적 위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 조정이 요청되는데, 이때 감각이 이를 실현하는 매개이자 장치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3) 손종흠(2001), ≪고전시가 미학 강의≫, 앨피, 83쪽.



6. 사설시조의 감각 세계: 감각이 시조 세계를 휩쓸다


사설시조에 이르면 감각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한다. 사대부 시조에서 자연과 나의 관계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것이 기녀 시조에 이르면 진솔한 감정의 발산으로 촉발되었다가, 마침내 사설시조에서는 억압된 욕망이 분출하면서 감각은 나와 대상의 관계를 포착하여 표현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전면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정감과 욕망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달음에 뛰어나가는 행동만 하더라도, 버선과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워렁충창” 뛰어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4) 반가운 마음과 숨 가쁜 동작이 연결되면서 욕망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수동적 기다림과 소극적 수용을 넘어서는 적극적 몸짓이 감각을 날개로 삼아 한없이 펼쳐진다.


4) 2004학년도 중등교사 임용 후보자 선발 시험에서 이 부분을 해석하는 문제가 출제된 사실은, 이 장면이 얼마나 특별하면서도 인상적인 것인지를 방증하는 예가 될 수 있다.



6.1. 보색 효과를 위한 감각의 활용



달바 울고 잔듸 잔듸 쇽닙 난다
三年(삼년) 믁은 말가죡은 오용지용 우짓듸 老處女(노처녀)의 擧動(거동) 보쇼

함박 죡박 드더지며 역졍여 는 말이 바다의도 셤이 잇고 콩팟헤도 눈이 잇지 봄 리 오나와 同牢宴(동뢰연)를 보기를 밤마다 여 뵈

두어라 月老(월로) 因緣(인연)인지 일락락 여라
- ≪시가, 박씨본≫



표면적으로 보면 여기서의 감각은 철저히 대상 지향적이다. 봄기운에 달바자는 바싹 말라 “쨍쨍” 소리를 내고, 잔디는 새파란 속잎을 펼치고 있다.
봄날의 생명력은 삼 년 묵은 말가죽마저 “오용지용” 울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도약한다. 따뜻한 봄기운이 청각으로, 시각으로, 다시 청각으로 넘나들면서 ‘과장된 생명성’5)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대상을 서술하는 가운데 동원되는 이러한 감각은 분명 ‘나’가 아닌, 대상의 형용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곧이어 등장하는 노처녀의 거동과 그녀의 푸념은 이러한 생명성과 대비되어 변함없이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바다에는 섬이 있어서, 그리고 작은 콩팥에도 씨눈이 있어서 외롭지 않고 싹을 틔어 또
다른 생명을 키울 수 있건만, 자신은 동뢰연의 허망한 꿈만 꾸는 데 그치는 상황이 생명력이 충만한 자연과 보색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조에서도 겉으로 대상을 향했던 감각이 사실은 늙어 가면서 생명력을 잃어 가는 노처녀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노처녀의 심정을 부각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자신과 대비되는 충족된 세계를 보고 자기의 결핍을 확인하는 발상은 우리 고전 시가에서 널리 발견되는 것으로, ‘반면 투사를 통한 자아 인식’, 쉬운 말로 ‘거울 보기 효과’로 설명되기도 했다.6)


일찍이 <황조가>에서부터 <동동>의 4월령, <만전춘별사>의 2연, <관등가>뿐만 아니라 현대시 주요한의 <불노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발상을 자주 만나 볼 수 있다. 여기서 감각은 이러한 조화롭고 충족된 세계를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어, 결핍된 자신과의 보색 대비를 심화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감각이 향하는 궁극적인 방향은 대상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향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5) 김흥규(2015), ≪사설시조의 세계≫, 세창출판사, 113쪽.

6) 류수열(2008), ≪고전시가 교육의 구도≫, 역락.



6.2. 비교 대상의 묘사를 통한 간접화된 표현



가슴에 궁글 둥시러케 고 왼기를 눈 길게 너슷너슷 와
그 궁게 그  너코 두 놈이 두 긋 마조 자바 이리로 훌른 져리로 훌젹
훌근훌젹  저긔 나남 즉 대되 그 아모로나 견듸려니와
아마도 님 외오 살라 면 그 그리 못리라
- ≪청구영언(진본)≫



앞서 시조의 감각이 달바자, 잔디, 말가죽을 향했다면, 여기서는 시작부터 곧바로 자신의 신체를 향하고 있다. 가슴에 구멍을 뚫고 그것마저 부족하여 그 속에 왼새끼를 끼어 양쪽에서 밀고 당긴다고 한다. 설정 자체도 고통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세부적인 장치는 이러한 고통을 더욱 배가하고 있다. 새끼는 통상적 방식과 달리 거꾸로 꼬아 만든 왼새끼라 투박하고 거친 데다가, 그것마저도 눈 사이의 간격을 크게 ‘너슷너슷’ 꼬아 더욱 울퉁불퉁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투박하고 거칠며 억센 새끼를 가슴에 넣어 이리저리 ‘슬근훌쩍’ 잡아당기면 그것이 비벼 대는 자극과 고통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친다. 극한의 신체적 고통이 이보다 더 핍진하게 묘사될 수 있을까 생각될 만큼, 초, 중장에 걸쳐 육체적 감각이 최상급으로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비록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감각을 통해 생생한 전율을 환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감각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핍진하게 묘사되었던 이와 같은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정작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장에서 임 떠나고 혼자 사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외로운 자신의 심정을 감각으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비교군이 되는 대상을 향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별의 아픔을 드러내는 과제 앞에서 자신의 심정 그 자체를 감각으로 포착하기보다는, 오히려 비교가 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각을 통해 초, 중장에서 비교 대상을 장황하게 묘사하고, 종장에 이르러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사설시조의 장형화 문법과도 맞아떨어져 많은 작품이 이러한 구조를 나타낸다. 아래 작품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해 본다.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뫼헤 매게 친 가토릐 안과,
大川(대천) 바다 한가온대 一千石(일천석) 시른 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돗대도 것고 치도 지고,

람 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섯계 자진 날에,

갈 길은 千里萬里(천리만리) 나믄듸 四面(사면)이 거머어득 져뭇 天地寂寞(천지적막) 가치노을 듸,

水賊(수적) 만난 都沙工(도사공)의 안과,
엇그제 님 여흰 내 안히야 엇다가 을 리오.
- ≪청구영언(진본)≫



초장에서는 까투리의 급박한 처지를 건조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시상을 일으키고 있지만, 매에게 숨 가쁘게 쫓기는 까투리의 다급한 날갯짓과 거친 숨소리만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중장에서 도사공의 상황과 심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다 한가운데, 꺾어진 돛대, 거센 바람과 물결, 안개와 어둠이 뒤덮인 저녁 무렵에 흉포한 해적까지 맞닥뜨린 상황이 제시된다.
여러 감각이 넘나들면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데 모자람이 없다. 듣는 우리마저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급박한 처지를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임을 여윈 심정에는 비할 바 없다는 종장의 진술에 있다. 여기서도 임과 이별한 고통을 그 자체로 묘사하지 않고 비교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형용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질은 이별의 아픔에 대해 동일한 발상으로 노래하고 있는 현대 대중가요와 비교할 때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

…(중략)…

…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거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 줘 날 좀 치료해 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 난 가슴이 …

…(이하 생략)"
- 작사‧작곡 방시혁, 노래 백지영



이별의 아픔이 마치 가슴에 총을 맞은 것과 같다는 설정으로 이별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구멍 난 가슴”은 앞의 <가슴에 궁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상황과 표현 방식의 구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감각에 대한 인식 면에서는 차이가 발견된다. 현대 가요는 여전히 이별의 심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구멍 난 가슴에 추억이 흘러내리는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감각이 자신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데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시조는 내가 아닌 비교되는 대상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窓(창) 내고쟈 窓(창)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窓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에 암돌져귀 수돌져귀 목걸새 크나
큰 쟝도리로  바가 이 내 가슴에 窓(창)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 제면 여다져 볼가 노라
- ≪청구영언(진본)≫



답답한 심회를 가슴에 창을 내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슨 연유에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숨이 막힐 듯 답답한 마음을 자신의 가슴에 창을 달고 그 창을 여닫으면서 해소하겠다고 한다. 여기서도 감각, 특히 촉각은 시의 세계를 이끄는 주요한 장치가 된다.
일반적으로 창은 외부의 소리가 들려오는 청각적 매개물인데, 이 시조에서는 특별히 닫힘과 열림의 기능을 갖춘 장치로 육체의 일부를 절개하고 설치하는 과정 자체를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 촉각적 매개물7)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창을 달기 위해 “크나큰 장도리”로 돌쩌귀와 배목걸쇠를 “뚝딱” 박는 데서 촉각의 감각은 더욱 두드러지게 각인된다.


표면적으로 이 시조는 앞선 작품과 달리, 심리적 우울을 달래기 위해 비교 대상 없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감각적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자신의 심정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포착하기보다는, 가슴을 절개하여 창문을 내는 과정과 필요한 도구들-여러 장지문과 부속품, 연장-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야단스러운 수다로 풀어내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문을 내는 과정에서의 고통이 절절하게 묘사되는 가운데도, 답답해진 가슴을 풀 수 있다면 충분히 견뎌 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감각은 육체를 후벼 내는 행위를 향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일 수없고, 답답한 나의 마음을 상대적으로 부각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또한 비교되는 대상을 형상화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나의 마음을 부각하는, 간접화된 방식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7) 이형대(2016), <사설시조와 감각적 이미지>, ≪한국문학교육학회 제74회 학술대회 자료집≫, 한국문학교육학회, 24쪽.



7.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감각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전봉건, <피아노> 전문


피아노 소리가 마치 눈에 보이는 듯 그려진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청각의 소리가 물고기와 같은 시각적 이미지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는 물고기가 바다, 특히 시퍼런 칼날의 파도로 이어지고 있다. 귀에 들리는 소리를 마치 눈에 보이듯 그려 내고 있다.


이처럼 감각은 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동감과 현장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감각은 물질적 대상과 몸이 자극과 감응의 관계로 만나는 것으로, 아직 마음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자극에 감응하는 단계를 가리킨다.8)
그만큼 그것을 촉발하는 대상을 필연적으로 가지며, 이에 따라 시에서는 흔히 세계나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실현되기 쉽다. 피아노 건반 소리가 마치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와 같이 찰나의
순간으로 포착되어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감각적 재현을 통해 대상의 형상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상당 부분 대상 지향적이고, 일시적이며,때로는 부분적이다.


현대시에 견주어 본다면, 시조의 감각은 보잘것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시조에서 감각은 대상에 대한 감응 차원을 넘어서서 철저히 나의 마음을 지향하는 특질을 보인다. 표면적으로 대상의 각인을 통해 형용을 묘사하거나 그에 대한 인상을 서술하는 경우조차, 감각의 방향은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하여 나의 마음을 끄집어낸다. 대상을 향하더라도 그것이 주체의 내면에 환류되어 정서와 태도를 이끌어 낸다. 때로는 나의 정서와 태도를 형상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변의 대상이 감각화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감각은 외부 대상의 지각과 수용보다는 감정과 정서를 환기하고 구체화하는 장치에 가깝다. 시조 속 감각은 고양된 순간의 정서를 그대로 노출하기보다는, 정서를 객관화하는 간접화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동안 감각이 주로 기교나 시 작법 차원으로, 때로는 시론의 주요 이론으로 만났지만, 사실 감각은 나의 심리와 정서, 태도를 에둘러 드러내는 표현의 관습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시에서 감각의 문제는 촉발된
대상이나 지각된 감관의 종류로 따지기보다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시조 속 감각 세계의 탐색과 그 여정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문학적 의미가 될 것이다.


8) 최봉영(2003), <감각>, ≪우리말 철학사전 3≫, 지식산업사, 14쪽.




새국어생활

국립국어원



==================================================





님이 오마 거늘


작자 미상


님이 오마 거늘 저녁밥을 일 지어 먹고

中門(중문) 나서 大門(대문) 나가 地方(지방) 우희 치라 안자 以手(이수)로 加額(가액)고 오가 가가 건넌 山(산) 라보니 거머흿들 셔 잇거 져야 님이로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듸 른듸 희지 말고 위렁충창 건너가셔 情(정)엣말 려 고 겻눈을 흘긧 보니 上年(상년) 七月(칠월) 사흔날 가벅긴 주추리 삼대 드리도 날 소겨다.

모쳐라 밤일싀 망졍 힝혀 낫이런들  우일 번괘라.


<진본 청구영언(珍本 靑丘永言)>



■ 시어 및 시구 풀이

일 : 일찍

지방(地方) : 문지방

이수(以手)로 : 손으로

가액(加額)하고 : 이마를 가리고

거머횟들 : 검은 빛과 흰 빛이 뒤섞인 모양

곰븨님븨 : 엎치락뒤치락. 연거푸 계속하여

쳔방지방 : 허둥거리는 모습

즌 듸 : 진 곳

위렁충창 : 급히 달리는 발소리

정(情)엣말 : 정이 든 말

상년(上年) : 작년

삼대 : 삼의 줄기. 마경(麻莖)

모쳐라 : 그만 두어라

우일 : 웃길

 

■ 전문 풀이

님이 오겠다고 하기에 저녁 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을 나와서 대문으로 나가, 문지방 위에 올라가서, 손을 이마에 대고 임이 오는가 하여 건너산을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서 있기에 저것이 틀림없는 임이로구나.


버선을 벗어 품에 품고 신을 벗어 손에 쥐고, 엎치락뒤치락 허둥거리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퉁탕 건너가서, 정이 넘치는 말을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7월 3일 날 껍질을 벗긴 주추리 삼대(씨를 받는라고 그냥 밭머리에 세워 둔 삼의 줄기)가 알뜰하게도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기에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다면 남 웃길 뻔했구나.

 

■ 핵심 정리

* 갈래 : 사설시조

* 성격 : 해학적, 과장적

* 주제 :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 이해와 감상

그리워하는 임을 어서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해학적으로 잘 표현한 시조이다. 임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어 하는 행동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임을 그리는 초조한 마음에서 허둥대던 작자는 스스로 자기 행동에 대해 겸연쩍어하고 있다.

초장에서는 밥을 일찍 지어 먹고 임을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이 그려져 있으며, 중장에서는 이 초조한 마음이 행동으로 구상화되어 나타났으나, 이에 대한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겸연쩍어하는 마음을 종장에 그려, 전체적으로 임을 애타게 그리는 여성의 섬세하고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 권진희국어학원


 

---------------------



설야(雪夜) / 김광균(金光均)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