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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이야기- 인디언 옐로]삶의 향기- 인디언 옐로, 노란색의 혁명

Bawoo 2018. 5. 15. 21:47



빗물에 반짝이는 노란색이 눈을 환하게 했다. 따다가 입에 넣으면 향긋한 즙이 식도를 적실 것만 같았다. 작업실 앞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에 한 송이 민들레가 피었다. 톱니 같은 노란 이파리들이 꽃 대롱 끝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봄이 몰래 오듯이 민들레도 내 관심 밖에서 여름을 나려 했었나 보다. 이 작은 발밑의 존재로 나의 무정하고 무딘 마음을 나무라 본다.
 
노랑은 어린 아이의 우비와 장화의 색이면서도 거기에 광채가 더해지면 새롭고 고귀한 황제의 색이 되기도 한다. 괴테는 노랑이 ‘가장 빛에 가까운 색’이라고 했다. 내가 찾는 색은 꿀처럼 진하지만 기름지지 않은 영롱한 노랑이었다. 나는 수십 년간 팔레트의 운용방식과 습관을 바꾸면서 새로운 노랑을 찾아다녔다. 팔레트는 화가에게는 일종의 문법이다. 문법을 바꾸는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다.
 
오랜 시도 끝에 내가 얻게 된 색이 인디언 옐로다. 색의 선택과 혼합의 무수한 실험을 통해 촉촉하면서 윤이 나는 노란색을 얻게 되었다. 여태 사용해왔던 퍼머넌트 옐로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노란 색조를 캔버스 위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디언 옐로 덕분에 사물과 빛을 보는 눈도 변했다. 가히 혁명적이다.
 
인디언 옐로는 15세기 인도의 벵골 지역에서 처음 발명된 색이다. 이 색은 소의 오줌에서 추출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동방무역을 독점할 때 인디언 옐로는 유럽에 알려졌다. 당시 네덜란드의 화가인 베르메르가 그린 ‘우유 따르는 하녀’는 환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 그림에서 여인의 웃옷, 광주리에 담긴 빵과 과일은 창가의 빛에 노출된 모습이다. 여기에 갓 인도에서 수입한 노란 안료로 만든 물감이 사용되었다. 이들은 화사함을 잃지 않은 채 주변의 어두움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인디언 옐로의 투명하고 진한 농도가 여실히 나타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캔버스에 유채, 1658~60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캔버스에 유채, 1658~60

인디언 옐로가 유럽에 전해지기 전인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보면 노란색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의 그림은 화사하지 못하다.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대상을 실감 나게 묘사했음에도 회갈색조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은 심각하고 근엄해 보인다. 유럽인들의 그림에 화사한 봄이 오기까지는 2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인디언 옐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빛깔이 아니다. 소의 오줌에서 누런 색 가루를 농축하고 그것을 다시 구슬 모양으로 빚어 포장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공정이 필요했다. 더욱이 인디언 옐로는 건강한 소가 아니라 병든 소의 오줌에서 추출된다. 사람들은 이 색을 얻기 위해 소에게 여린 망고 잎과 물만 먹였다. 소들은 시름시름 앓게 되고 방광에 결석을 키우는 통증에 시달렸다. 그만큼 비용과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인디언 옐로는 매우 잔인한 색이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진 황금빛 노랑 구슬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갈수록 유럽의 미술은 점점 화려해졌고 빛났다. 17세기의 바로크에서 18세기의 로코코, 19세기의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미술에서뿐만 아니라 생활환경에서도 현란한 색채로 뒤덮였다. 심지어 황금빛으로 가득 찬 고흐의 캔버스 상당수는 망고 잎과 물만 먹은 그 인도 소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
 
결국 1920년경 소의 오줌을 농축하는 물감 생산을 금지했다. 그 이후 여러 업체가 대체 안료의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온전한 인디언 옐로의 질(質)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색을 복원해내는 합성물은 1990년대에야 되어 겨우 완성되고 보급되기 시작했다. 창문 앞 민들레를 내다본다. 그리고 내 팔레트 위의 인디언 옐로도 내려다본다. 민들레가 아스팔트 사이로 힘겹게 노란 꽃을 피워 올렸듯이 팔레트 위의 인디언 옐로도 알 수 없는 개발자들의 분투와 여러 시대에 걸친 땀의 축척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세상의 빛나는 것들은 고맙고 애틋하다. [화가 전수경]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인디언 옐로, 노란색의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