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광시,변주,서곡]

[스크랩] 베버, 오베론 서곡(Overture of Oberon)

Bawoo 2014. 1. 29. 17:07

  

베버, 오베론 서곡

 Overture of Oberon

 Weber 1786∼1826

 

 

1826년, 40세 때의 작품이며, 기괴한 이야기에 의한 3막 오페라이다. 동화 나라의 마왕 오베론이 아내 티타니아와 싸움을 벌인 끝에, 서로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화해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즉, 어떤 고난이나 유혹에도 이겨낼 수 있는 상대를 발견할 때까지는 화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파란을 거쳐 왕은 그런 여자를, 왕비는 그런 남자를 발견하고 다정스럽게 화해한다는 줄거리이다.
베버의 뇌리에 스쳤던 요염하고 아름다운 환상이 모두 이 서곡에 들어 있다고 할 만큼 놀랍도록 뛰어난 서곡이다.

 

베버 오페라 [오베론] 역시 베버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가 시도한 음악극의 길을 미리 보여준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베버 자신은 [오베론]을 작곡하는 동안 유치한 대본을 비롯한 여러 난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탄의 사수]로 인기가 높아진 베버는 영국으로부터 [오베론]의 작곡을 의뢰받게 되었지만, 이 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영국의 대본작가와의 공동 작업을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작곡료를 받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인내심을 갖고 작업을 계속해 영감에 찬 오페라 [오베론]을 15개월 만에 완성해냈습니다. [오베론]에선 특히 극적인 효과와 회화적인 자연 묘사, 그리고 색채적인 관현악과 대담한 반음계가 돋보입니다. 비록 오페라가 공연되는 일은 드물지만 콘서트에서 종종 연주되는 오페라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 [오베론]에서도 두 가지 대비되는 세계가 공존합니다. 바로 ‘요정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입니다. 베버는 오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서곡에서도 이 두 세계를 각기 독특한 음향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서곡을 여는 호른 소리는 마치 마법의 뿔피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이윽고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이에 화답하며 신비로운 요정 세계의 환상을 그려냅니다. 다시 호른과 바이올린의 문답이 이어진 후 목관악기들이 요정의 날갯짓과 같은 재빠른 음형을 연주하고 현악기가 이를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Overture of Oberon
Daniel Barenboim, Cond /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Carl Maria von Weber: Ouverture d'Oberon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Conductor: Myung Whun Chung

 

O

베버의 고향 오이틴
 
베버는 독일의 북단 덴마크의 국경에 가까운 오이틴에서 태어났다.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북구적인 자연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 프란츠 안톤은 침착하지 못하여 직업을 자주 바꾸었다.
한때는 극단을 조직하기도 했으므로 베버의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소지는 태어나면서부터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1783년에 본처를 잃고 30세나 연하인 게노페파와 재혼, 1786년 12월 18일에 낳은 첫아들이 칼 마리아이다. 모짜르트의 부인 콘스탄쩨 베버는 베버의 작은 아버지의 딸이다.
오이틴의 류베카시트라세에는 베버가 태어난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빵집이 되어 있으며, 이 도시에는 이 대작곡가의 기념상이나 음악제를 위한 야외극장이 있다

탄의 사수 Der Freischütz》 성공으로 베버는 빈의 케른트나투르 극장으로부터 이같은 양식의 새 오페라의 의뢰를 받게되어 《유리안테 서곡 "Euryanthe" Overture》이 작곡됩니다만 1823년 10월 빈에서의 초연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실패로 실의에 빠진데다가 가슴과 후두가 결핵에 침범 당하여 의사로부터 요양의 명을 받은 베버에게 런던과 파리로부터 다시 오페라 작곡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조건이 좋은 런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위촉에 응하여, 1825년에서 1826년에 걸쳐 마지막 오페라《오베론 Oberon》을 작곡하였습니다. 1825년 12월 베를린에서 《유리안테 서곡 "Euryanthe" Overture》를 지휘하였습니다. 결핵에 걸린 베버는 이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826년 4월 12일 베버는 런던에서 《오베론 Oberon》의 초연을 지휘하였는데, 그대로 병이 악화되어 런던에 도착할 때부터 베버를 접대한 조지 스마트 경의 집에서 6월 4일부터 5일 밤 사이,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참으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객지 런던에 묻힌 그의 유해는 1844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드레스덴에서 베버의 자리를 계승하고 있던 바그너(Wagner, Wilhelm Richard, 1813 ~ 1883)의 노력으로 드레스덴에 옮겨졌다고 전합니다.

베버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 거장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베토벤보다는 16년 뒤, 슈베르트보다는 11년 먼저 태어났지만 세상을 떠난 날은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빨라서 베토벤보다 1년 먼저, 슈베르트보다 2년 먼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처 : 클래식 사랑 그리고 인생
글쓴이 : 클래식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