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살인
[읽은 소감]
이 작품을 쓴 김별아 작가는 과거 역사 기록에서 글 쓰는 소재를 찾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닌데 작가의 작품 '미실'의 글 쓴 솜씨에 매료되어 '불의 꽃'을 읽은 다음에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제목의 특이성에 이끌려 다른 안 읽은 작품보다 먼저 읽기로 결정했던 건데 읽어내느라 무척 애먹었다. 앞의 두 작품이 가독성 면에서도 뛰어난 데 반해 이 작품은 그렇지 않기 때문. 이유는 생소한 낱말들이 많이 등장해서인데 그만큼 작가가 문장마다마다에 들이는 공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기는 했다.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구월'이 계절이 아닌 사람 이름이라는 것도 작품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고. 읽는 재미보다는 글쓰기나 역사적 사실, 우리말 공부 참고서로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 한 편의 작품을 써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 가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책소개
이 모두가 우연일 수도 치밀한 계획일 수도 있었다
석양이 내릴 무렵 도성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효종 즉위년(1649년), 조선 사회를 뒤흔든 괴이한 사건의 실체
1649년 음력 10월,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다. 석양이 내릴 무렵의 오후, 도성 한복판에서 살인이 벌어진 것.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인 사인(死因)은 묘연하고, 동행하던 무관(武官)은 입을 열지 않는다. 본래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던 이 기이한 사건은 당대 미제를 해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형조 좌랑 전방유의 손에 맡겨진 뒤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베스트셀러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별아 작가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뒷골목의 살인 사건에 작가 특유의 세밀한 상상을 더해 소설화한 열네 번째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을 출간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태 속에서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결과에 다다를 수 있을까. 전체를 꿰뚫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이 작품은 사건의 주범과 그를 돕는 조력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건 이면의 진실을 좇는 이의 시선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조선왕조실록』 효종 1년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 당했다’는 내용에서 출발한 역사적 상상력은 『승정원일기』에 언급된 39개의 기사를 거치며 작가에게 ‘구월의 살인은 살인 사건이되 단순한 살인 사건 이상의 무엇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10년에 처음 등장하는 반사회 조직 ‘검계(劍契)’의 흔적 역시 사건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읽어내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 소설은 기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으로 되살아난 역사 속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건은 한 개인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뒤 복수를 향한 열망만으로 이어가던 삶의 끝에서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강(晝講)에서 조정의 대신들이 주목하는 것은 ‘왜 죽였는가’가 아닌 ‘살인자의 신분은 무엇인가’였다. 겉으로는 조정의 기강을 외치지만 이는 호란 이후 흔들리던 신분 사회를 공고히 다지려는 욕망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해득실을 위해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산 사람의 말 대신 죽은 자의 말에 귀 기울여온 전방유만이 유일하게 진실에 다가가고자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검험을 거듭할수록 살인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사건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알게 되지만 뒤늦게 깨달은 진실은 선문답을 나눈 뒤 홀연히 사라져버린 사내처럼 위태롭고 희미하다.
역사 속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해온 김별아 작가의 작업은 『구월의 살인』에 이르러 다시 시작된다. 추리 기법을 가미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것도 물론이지만 오직 개인의 안위와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품고 끝까지 걸어가는 범인과 진실을 향한 의심을 놓지 않는 추적자가 그리는 ...묵직한 궤적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일깨워줄 것이다.
저자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데뷔 초 글쓰기 방식과 소재에 다양한 시도를 모색한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소설집'꿈의 부족'등으로 호평을 받았고, 2005년 장편소설'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무명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독자들과 새롭게 만났다. 역사의 행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운'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열애'와, 한발 더 나아가 한 개인을 통해 시대를 읽는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은 역사를 토대로 발휘되는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소설과 또 달리 '고백을 통한 공감'이라는 영역을 구축한 산문집으로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족판타지'('식구'개정판),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등이 있다. 그녀는 아이와 그녀의 사랑이, 그가 중심이 되어 이루고 있는 가족 관계가,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확장된 관계로서의 가족이 인류애와 박애주의로 연대하는 것을 꿈꾼다.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그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를 넘어선 가족의 참모습이다.
목차
서(序)
죽은 자의 말
바다의 도장
처음의 풍경
수사
뜨겁고 독하고 맑은
도깨비 자식
비밀과 거짓말
대군궁의 궁노
고통을 묻다
호홀지간
금을 얻다
십자 모양 칼자국
검은 강 붉은 놀
관노와 사노
살을 먹이다
지박령의 비밀
꽃의 순서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범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자가 있고, 게다가 그가 무관이라고? 그런데 어찌 강도들이 여주의 촌사람만 칼로 찔러 죽였단 말인가?”
“지금 대감마님께옵서 하신 말씀이 바로 저희 형제가 품은 의문입니다. 귀인과 비인(鄙人)이 한시에 품은 의문을 어찌 형조의 관원들만 무시하고 지나쳤는지 그 연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만취해 곤드라져 봉변을 면했다지만 김원위는 그때의 정황을 묻는 저희를 피하며 만나주지 아니하니, 속일을 명명백백히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삼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판서가 대기시켰던 사인교를 불렀다. 다음 달 초면 그는 사은사로 국경을 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물밀어 드는 피로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이립한 참의와 정랑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건을 원점으로부터 다시 엄밀하게 수사하도록 하라!”
-「서(序)」 중에서
전방유는 어려서부터 그리 결기 있는 성정이 아니었다. 나무 타기 같은 흔한 놀이는 물론 나무칼 한번 잡아본 적 없었다. 다섯 살에 『논어』를 읽었으나 여덟 살까지 야뇨증을 앓았고, 열 살에도 밤에 한뎃뒷간을 혼자 가지 못했다. 귀신이 무서웠고 마누라도 무서웠고 자식들도 열다섯 살이 넘어가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형조의 거칠고 사나운 선임들과 동료들에게 행여나 맞서 대거리할 수 있었겠는가?
전방유는 일 년 하고도 절반을 꼬박 얼뜨기 좌랑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형조의 외돌토리였기에 느닷없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까마득히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죽은 사람과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체를 보았다든가 재로 덮어 봉인한 시신을 꺼냈다든가 하는 표현은 적합지 않다. 그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먹고 마시고 웃고 화내며 살아있었던 한때의 사람을.
-「죽은 자의 말」 중에서
돌이켜보건대 계집은 특별한 기술을 썼다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공격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저울로 가늠질할 수 없는 바람의 요사였다.
윤 선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련한 초저녁 달빛 아래서 뜯어보니 계집은 생각보다 앳되고 호릿하였다.
“더 이상의 시험은 없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거칠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계집은 성큼 발을 내딛어 윤 선달을 향해 다가왔다. 협기든 객기든 쓸개자루가 크기로 소문난 윤 선달이 일순 움찔했다. 계집의 몸에선 분내도 땀내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내 같은 것이 진하게 풍겨났다. 계집이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이 말했다.
“원수를 갚으려 하오. 도와주시오!”
-「바다의 도장」 중에서
“나리! 이것 좀 보십시오!”
오작의 흥분한 목소리가 홀로 탄식하는 전방유의 귓전을 때렸다. 재미든 흥미든 호기심이든 정의감이든, 연유야 어쨌거나 그들은 죽은 자의 말을 끝내 듣고자 하는 마지막 산 자였...다.
“이 모양은……!”
전방유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강도라고요? 어느 강도가 이런 솜씨를 돈푼을 뺏는 데 쓴답니까?”
“왜 그러는가?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느냐?”
오작이 눈을 희번덕이고 율생은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오작을 다그쳤다.
“시형도를 다시 그려라. 시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꼼꼼히 살펴 칼자국을 헤아리고, 팔목과 손바닥의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 하나하나의 길이와 너비와 둘레와 빛깔과 부어오른 정도를 세세히 기록하라!”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자상은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었다.
-「수사」 중에서
“성상의 교지가 아래의 정황을 헤아려 살피지 못하신 듯합니다.”
사헌부 집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돋웠다. 이대로라면 대군을 비호하는 임금의 의지에 밀려 사건은 미제가 되어버릴 터였다.
“대낮에 도성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어찌 여인이 홀로 벌일 수 있겠습니까? 듣기로 궁노들은 여럿이서 도당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무관인 간증조차 친구가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두려워 겁을 낼 뿐 감히 구하려 들지 못한 것입니다. 잔악한 범인에게 아무리 무리를 캐묻는대도 순순히 사실을 토설할 리 있겠습니까? 대군궁의 수노에게 듣고자 하는 것은 수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단지 그로 하여금 고발케 하여 살인을 공모한 죄인을 얻고자 할 따름입니다!”
간곡히 그리고 강경히 주청해도 임금은 끝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형장으로 돌아갔다.
-「대군궁의 궁노」 중에서
출판사서평
사실과 진실을 모두 아는 이는
오직 그 기묘한 범인뿐이었다
베스트셀러 『미실』의 작가 김별아 신작 장편소설
줄거리
어둠이 내리기 전 한양의 거리, 도성 한복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자가 있음에도 사건은 강도의 소행으로 어설피 결론이 났고 피해자의 자식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형조 판서의 가마에 뛰어들기에 이른다. 석연치 않은 정황에 원점으로 돌아간 살인 사건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정평이 나 있던 전방유의 손에 맡겨진 뒤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띤다.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자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을 간파한 전방유는 왼쪽 가슴 아래에 십자[十] 모양의 기이한 상흔을 발견한다. 그는 범인의 수법이 예사 솜씨가 아님을 깨닫고 사건이 벌어진 그날 피해자가 걸었을 길을 되짚어보며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 마침내 입을 연 목격자의 진술, 피해자 자식들의 심증, 핏자국이 어려있는 쇠자루칼까지 모든 증거는 단 한 사람을 지목하지만 어쩐지 전방유는 진실이 먼발치에서 잡힐 듯 말 듯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는데…….
등장인물 소개
전방유 전도유망했던 소년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거듭 과거에 낙방하여 뒤늦게 문음을 통해 형조의 좌랑이 된다. 거칠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형조 일에서 빼어난 소질을 발견하고 미제로 남았던 사건들을 처리해 나간다.
김태길 탐욕스러운 성격으로 이익이라면 인륜도 무시하는 처세로 ‘각다귀’로 불리는 여주의 토호. 길거리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구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속량을 통한 면천을 꿈꾸었으나 주인인 김태길의 변덕으로 연인이 억울하고 잔혹한 죽음을 당하며 좌절을 겪는다.
노장 계의 수장. 본래 궐 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자신의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술도장을 운영하며 저마다 복수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구성된 계의 자금을 댄다.
윤 선달 노장의 오른팔이자 계의 일원. 주인 양반에게 겁간을 당해 자신을 낳고 애티증을 앓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며 계에 몸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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