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8중주(OCTET)

Ignaz Josef Pleyel- Octet in B flat major

Bawoo 2018. 12. 12. 21:28


 Ignaz Josef Pleyel.


 Octet in B flat major

I. Allegro 00:00
II. Adagio amoroso 05:09
III. Menuetto - Trio 08:35
IV. Allegro 11:18

Consortium Classicum
Dieter Klöcker, clarinet and director


이그나스 요제프 플레옐(Ignace Joseph Pleyel)은 1757년 오스트리아 루페르슈탈(Ruppersthal)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처음에는 빈에서 반할(Johann Baptist Vanhall,1739-1813)에게 음악공부를 하다가,1772년 에르되디 (Ladislaus Erdődy,1746-1786)백작의 후원으로 아이젠슈타트 (Eisenstadt)에 가서 제프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이곳에서 5년 동안 음악을 배웠다. 후에 플레옐은 그들이 친밀한 관계였다고 말했으며 하이든의 인형극 오페라 <불타버린 집 Das abgebrannte Haus>(1776?)의 서곡(아니면 적어도 서곡의 1·2악장)이 실제로는 플레옐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하이든이 그를 상당히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첫번째 직책은 아마도 프레스부르크에서 에르되디 백작의 악장이었던 듯한데 백작에게 플레옐은 자신의 현악4중주 작품 1(1782~83)을 헌정했다. 1784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성당의 부악장이 되었으며 1789년 악장이 죽자, 그 자리를 계승했다. 1789년 그는 일련의 공공연주회를 기획하고 지휘했으며,그 연주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회를 가졌다. 스트라스부르 시기는 음악적으로 플레옐에게 가장 생산적이었던 때였으며,그가 작곡했던 작품 대부분이 1787-1795년에 작곡되었다. 그런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널리 알려졌다.



프랑스 혁명으로 종교적·음악적 삶에 지장을 받게 되자 1791년 스트라스부르를 떠나 런던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그의 연주회는 많은 청중들을 끌어들였으며 그의 작품들,특히 <Symphonies Concertantes>와 현악4중주들은 비평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특히 런던에서는 스승인 하이든의 뒤를 이어서 잘로몬 콘서트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1795년초 파리에 정착해서 메종플레옐(Maison Pleyel)음악출판사를 설립했다. 이 출판사가 운영되었던 39년 동안 루이지 보케리니,베토벤,무치오 클레멘티,얀 라디슬라프 두세크,하이든의 작품들을 포함한 약 4,000여 곡이 출판되었다. 플레옐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와 교향곡을 시작으로 최초의 축소판 악보를 출판했다. 1813년 모든 사업에서 물러나려고 시도했지만 메종플레옐사(社)는 1834년 파리의 여러 음악 출판업자들에게 원판과 인쇄된 작품들을 팔고 완전히 출판을 중단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807년 피아노 제조회사인 플레옐사(社)가 파리에서 설립되어 사업적으로는 계속 번창했다. 1815년 플레옐의 장남인 카미유(Camille Pleyel,1788~1855)가 회사의 합법적 동업자가 됨으로써 회사의 이름을 '이냐스플레옐에피스에네'로 했다. 유능한 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감수성이 뛰어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던 카미유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절친한 친구였으며,쇼팽은 플레옐 회관(Salle Pleyel:파리의 콘서트홀)에서 그의 파리 데뷔 연주회와 고별 연주회를 가졌다.(후에 쇼팽은 1839년에 제작된 플레옐 그랜드 피아노를 소유했음). 1855년에 카미유가 죽자 그의 사위인 오귀스트 볼프(1821~87)가 뒤를 이었으며 회사의 이름도 플레옐 볼프사가 되었다. 볼프가 죽은 후에는 그의 사위인 귀스타브 리용(1857~1936)이 회사를 이끌었고 그는 다시 회사의 이름을 플레옐리용사로 바꾸었다. 이 회사는 19세기말 크로매틱 하프의 개발로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서 플레옐은 주로 기악곡을 열중했으며 교향곡, 협주교향곡, 협주곡, 이중주 와 7중주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던 시기는 1783-1789년까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이때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도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