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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 제2차 세계대전기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계 미국인

Bawoo 2019. 4. 25. 22:46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저자 다카시 후지타니 | 역자 이경훈 | 푸른역사 | 2019.3.19.

[내용이 교양 수준으로 읽기엔 지나치게 깊고 방대하다. 연구자가 아니라면 간독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만 읽으면 될 것 같다. 아래 책소개 내용 .]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정의의 사도’ 미국-‘악의 화신’ 일본제국은 잊어라!
국가 운명을 건 총력전, 태평양전쟁 시기
싸우며 닮아간 미?일 인종주의에 대한 입체적 규명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제2차 세계대전기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계 미국인Race for Empire: Koreans as Japanese and Japanese as Americans during World War Ⅱ》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미국과 일본이 각각 일본계 미국인과 식민지 조선인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용했는지에 대한 정책 변화를 인종주의, 전시 프로파간다, 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 내셔널리즘, 젠더 등을 축으로 논의한다.
이 책이 포착하는 것은 인종주의와 인종주의 거부가 양립하면서 미국과 일본 양국은 인종주의의 성격이 변화, 남성중심주의적으로 연동되는 초국가적인 장면 등 유사한 역사적 궤적을 보였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학 및 국가학의 경계,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미국과 일본에 대한 기존의 평가, 전시와 전후의 상식적인 구분 등을 넘어서는 성과를 일구어냈다. 따라서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도 세계사와 연동된 더욱 넓은 지평 속에서 고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 다카시 후지타니
1953년 미국 시카고 출생.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토론토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천황제를 글로벌한 근대성 내부의 다른 내셔널리즘과 비교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국민국가, 정치, 서벌턴, 젠더 등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 그리고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저서와 논문으로는 《화려한 군주Splendid monarchy: power and pageantry in modern Japan》(1996), Perilous Memories: The Asia-Pacific War(s)(공저, 2001), “Japanese Civilization in the Modern World ⅩⅥ: Nation State and Empire”(공저, 2002), 《日本はどこへ行くのか》(공저, 2003), 《한국 영화의 미학과 역사적 상상력》(공저, 2006) 등이 있다.

역자 : 이경훈
1962년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오빠의 탄생》(2003), 《대합실의 추억》(2007), 《역사의 일요일, 역사 이후의 일요일》(2018)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도해 목록
한국어판 머리말
영자 표기와 이름에 대해
자주 사용되는 약어들

서문_소수민족 병사들과 식민지 병사들, 그리고 거부의 정치학

1부 ‘거친 인종주의’에서 ‘친절한 인종주의’로
01_죽일 권리, 살게 할 권리: 일본인으로서의 조선인
02_“아주 유용하며 아주 위험하다”: 삶, 죽음, 인종의 글로벌 정치

2부 ‘미국인’으로서의 일본인
03_선택의 주체, (부)자유의 미로
04_논리와 역논리들, 그리고 반격행위
05_영화 〈고 포 브로크〉: 통전기의 아메리칸 히어로 만들기

3부 ‘일본인’으로서의 조선인
06_국가 동원
07_민족, 피, 자기 결정
08_식민지와 국가의 젠더, 성, 가족 정치학

에필로그_〈네 사람의 지원병〉

옮긴이 후기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두 식민주의적 제국(국가)이 인종화된 식민 주체와 소수자를 다루는 방법을 아주 유사하게 조정했다는 것이며, 이는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물질적이고 이념적인 필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과 일본의 총력전 체제가 공히 인종주의를 부인하고 거부하면서, 경멸당하는 인구들을 그 국가 공동체 안에 포섭하는 전략을 향해 결정적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는 총력전을 운영하며 나치 체제가 취했던 인구 관리의 해결책과 대조된다. 나치는 영토를 공격적으로 확장했으며, 배타적으로 분절되고 생물학적으로 상상된 ‘인종적인 복지국가’에 게르만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포섭시켰다. 그리고 이는 독일제국의 지리적 경계 내부와 외부에 사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구를 멸종시키면서 그들을 강제 노동자로 사용하는 일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40~41쪽).

두 나라 정부가 이 유색인 병사들을 모집한 목적 중 하나는 그들이 인종적 평등을 신봉함을 세계에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차별적인 정책들을 철폐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조처를 취함으로써 인종주의에 저항한다는 증거를 선취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극상, 탈영, 징병 기피, 군대 내의 인종이나 민족 갈등 등이 발생해 군의 효율성과 선전 계획이 위태로워질 것이다(59쪽).

나는 그러한 문화생산자들이 단지 일본의 식민 담론에 응답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조선인들을 이미 완성된 일본의 담론에 대한 수동적인 수용자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협력자’라는 약한 말로는 일본의 국가적/식민주의적 담론의 윤곽을 이루는 데에 그렇게도 활발히 관계했던 주체들을 지칭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의 안정적인 위치를 위해 일본 내셔널리즘의 보편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포용적인 차원을 최대한 확장시키면서 그 담론 생산에 참여했다. 미국 국내의 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전시 및 전쟁 직후에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미국의 내셔널리즘에 대항하면서 국가 공동체의 외부보다는 그 내부에서 나타났다(75쪽).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각자 자신들이 예외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두 나라의 유사성을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계속 ‘미국학’이나 ‘일본학’ 등과 같이 국민국가에 초점을 맞춘 규범적인 지식 형태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포개지고 얽힌 장들로 그러한 지식 형태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시종일관 그러한 틀 너머를 바라보면서 상호 관여하며 서로 겹쳐진 국민국가들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79쪽).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을 전쟁영웅으로 만드는 일은 할리우드와 학자들이 가세하면서 전후에도 계속되었다. 통전기 전체에 걸쳐 일본계 미국인들 및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고 생산하는 정치학은 미국 내의 인종관리 정치학뿐 아니라 미국이 전 세계, 특히 아시아 유색인종과 맺은... 관계와 지속적으로 연동되어 왔다. 내가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리고 이 장에서 더 자세히 밝히겠지만, 우선 전쟁에서 이기고 그 후 계획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유색인 동맹국들을 획득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일본계 미국인들은 모범적인 병사이자 미국인으로 쉽사리 복권되었다. 이런 이미지들의 생산은 전후에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특히 냉전 시기에도 계속되었다(360쪽).

냉전 근대화론이 미국의 제국주의와 연결된 것이었음은 냉전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폭로되었다. 그러나 열전 시기부터 싹튼 미국의 아시아 헤게모니 쟁취 계획과 냉전 근대화론 사이의 통전기 연관성을 논한 연구는 이보다 훨씬 적다. 독자들은 2장에서 상당히 길게 분석된 1942년 9월의 메모에서 라이샤워가 이미 한 가지 계획을 제시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 계획에 의해 미국은 도쿄에 ‘괴뢰 정부’를 세우는 한편, 인종주의를 비난하는 국가로 스스로를 내세움으로써 평화를 쟁취할 것이었다(394쪽).

일본계 미국인이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담론이 공적인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일을 설명해 주는 부차적인 요인은 국내의 상황을 넘어선 곳에서 찾아야 한다. ‘거의 백인이지만 완전한 백인은 아닌’ 우수한 소수자로서 일본계 미국인들을 평가한 것은 일본을 일종의 명예직 백인 국가로 구성했던 논리 및 그 역사적 시점과 일치한다. 우리가 보아 왔던 것처럼, 이미 1942년 여름이나 가을쯤에는 에드윈 라이샤워 같은 조언자들뿐 아니라 몇몇 민간과 군의 관료들도 일본을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쟁취 투쟁의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둘러싼 앞뒤의 시기를 지나면서 이 개념은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들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했으며, 이는 전후와 냉전기에 가속화되었다(393쪽).

그러한 담론은 젠더화된 위계로써 남자들끼리 여자들을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이 여자 교환과 더불어, 젠더화된 관계를 통해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는 일은 〈너와 나〉의 핵심 주제다(585쪽).

이광수의 미완 소설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말로〉는 원래 1940년에 식민지 잡지 《녹기》에 5회에 걸쳐 연재된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은 〈너와 나〉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다. 히나츠의 영화 대본 및 이 책에서 논의된 다른 텍스트들처럼, 이 소설의 플롯은 천황과 국가를 위한 군 복무와 내선일체, 그리고 젠더화된 유대를 통한 민족적 차이의 초월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 〈너와 나〉와 마찬가지로, 민족을 넘어선 사랑과 우정이 식민지와 제국의 융합 수단이자 그 상징으로 작용한다(590쪽).

일본의 식민주의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자에서 광신자로 쵸 카쿠츄(장혁주)가 전향한 것은, 그가 일본 여성에 대한 비판자에서 찬미자로 변모한 일 및 여성이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비전이 축소되는 일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조선인 남성들이 일본 내셔널리즘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그는 점점 더 조선인 여성들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전전과 전시의 필요에 따라 내셔널리즘 및 식민주의를 젠더, 인종, 민족, 계급과 서로 얽히게 했었음을 밝히는 일은 지나간 과거와 관련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와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그러한 시도는 탈식민주의적인 세계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식민주의적이고 내셔널한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질문을 심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603쪽).

 

 

출판사서평

 

지역학 넘어서기, 미국 제국과 일본 제국의 유사성

이 책은 초국가적인 비교 연구를 통해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나라인 반면, 일본은 파시스트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가였다는 ‘상식’을 깨뜨린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두 나라의 역사가 한 가지 모습으로 수렴되는 것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순간에 발생한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이는 현대의 아시아 태평양에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최고도로 만나는 지점이자 그 공통의 성격이기도 하다.”(78쪽)
지은이는 두 나라 내부의 인종화된 소수자 주체들에 대한 담론 및 이들에 대한 현실적 대우가 근본적으로 비교 가능하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고안하고 시행한 일본계 미국인과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정책을 다양한 형태의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고찰한다. 정부의 공식문서는 물론 수용소의 소식지, 일본계 미군이나 조선 출신 ‘지원병’의 증언, 문학 텍스트 및 영화(〈고 포 브로크〉, 〈망루의 결사대〉 등)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소수 ‘인종’에 대한 주류의 시선을 꼼꼼히 분석한다.

‘거친 인종주의’에서 ‘친절한 인종주의’로, 소수 민족에 대한 군 동원과 협력

 

지은이는 노동력과 전력을 시급히 확충해야 했으며,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적국의 프로파간다에도 대항해야 했던 전시의 조건 속에서 두 나라의 정책은 배제와 죽임의 권력을 행사하던 ‘거친 인종주의vulgar racism’에서 삶을 안내하는 포용적이고 ‘친절한 인종주의polite racism’로 급격히 변모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논한다. 즉, 전쟁과 더불어, ‘미국인으로서의 일본인’과 ‘일본인으로서의 조선인’을 만들어 외부를 향해 내세우려는 경쟁을 촉발했다. 그리고 그 경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군대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두 나라는 글로벌한 무대에서 인종주의를 거부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으며, 군대의 인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들을 병사로 모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절박한 문제로 인해 두 나라는 군대 안팎에 실제로 존재했던 차별에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군대의 인력 문제는 전반적인 인적 자원의 필요와 더불어 민간과 군의 노동력 부족에 대한 공포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고려되었다.”(58쪽)
따라서 이 책은 일본계 미국인과 식민지 조선인의 국민으로서의 주체성과 ‘자기 결정self determination’을 ‘자결自決’, 즉 죽음과 연관시키면서,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되어 유럽 전선에 투입된 100대대 및 442연대의 사례와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지원병 모집 및 징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는 인종주의의 성격이 변화하는 전반적인 상황을 인식할 때만이 ‘내선일체’를 받아들인 이광수나, 그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 부대가 자살 대대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마이크 마사오카Mike Masaoka의... 협력을 억압과 강제의 결과로만 볼 경우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요컨대 이 사람들은 ‘친절한 인종주의’의 포용적인 차원을 최대한 확장시키기 위해 당국의 담론 생산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설득력 있게 규명해낸다.

통전적 관점과 모범적인 소수자 담론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전시와 전후를 통전적通戰的인 관점으로 고찰한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일본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자 주일 미국대사이기도 했던 라이샤워Reischauer의 〈일본에 대한 정책 비망록〉(1942)을 인용해-이 책의 주요 성과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쟁이 끝나기 오래 전부터 일본 천황을 하나의 ‘괴뢰puppet’로서 전후 일본에 유지시키려는 계획이 수립되었음을 보여준다. “라이샤워 자신이 지적했던 것처럼, 그는 ‘우리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이 계획을 제출했다.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황색과 갈색’의 국민들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길을 따르도록 영향을 끼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암호적인 말이었다.”(394쪽)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의 군사 동원은 전쟁기의 필요성을 충족하는 정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 아시아인들에 대한 글로벌한 관리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고 고찰한다.
따라서 전시외국인수용소에서 벗어나 미국 군인으로서 전공을 세운 일본계 미국인들은 미국 내의 우수한 소수자들이 되었으며, 이는 일본을 “명예직 백인국가”로서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쟁취 투쟁의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생각하는 일과 짝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헤게모니 전략은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난 한국에도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지은이는 본다.

식민지 조선의 경험을 이해하는 새로운 프레임

이와 함께 지은이는 미국의 전시 영화와 더불어 이광수, 장혁주, 허영,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등이 만들어낸 식민지 조선의 영화와 소설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 그 결과 이 텍스트들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젠더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이것들이 남성들의 젠더화된 유대를 통해 민족적 차이를 극복함으로써 가부장적인 일본 국가에 귀속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고찰한다. “전쟁이 끝난 후 국가 및 국가 내의 소수 인종에 대한 담론은 인종적인 위계를 전복하지 않는 한 소수 인종의 문화적 차이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영화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는 그 변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고찰해 왔던 것처럼, 초기에 일본계 미국인들은 전쟁 수행에 용맹하게 참여한 점에 대한 찬양과 함께 병사와 시민으로 재현되었다.”(391쪽)
이렇게 내셔널리즘과 식민주의가 젠더, 인종, 민족, 계급과 얽혀 있는 양상이 탈식민주의적인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은이의 설명은 일제강점기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하여 그 지평을 세계사적으로 넓혀준다.